[서울 말고] 우리 시대에

한겨레 2021. 10. 2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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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 번역서에 <우리 시대에> 가 있다.

원제는 '인 아워 타임'(In Our Time)이다.

한국에서는 <문학은 자유다> 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수전 손택의 유고집 원제목은 '앳 더 세임 타임'(At the same time)이다.

헤밍웨이에서 시작해 손택을 경유해 리파드로 구현된 전시의 제목이 <우리 시대에_앳 더 세임 타임>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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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제주도 제주시 연동 제주도립미술관. 제주/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이나연ㅣ제주도립미술관장

절판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 번역서에 <우리 시대에>가 있다. 원제는 ‘인 아워 타임’(In Our Time)이다. 한국에서는 <문학은 자유다>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수전 손택의 유고집 원제목은 ‘앳 더 세임 타임’(At the same time)이다. 말년의 원고와 강연을 모은 책에는 평론가이자 소설가였던 손택의 사고가 압축적으로 들어 있다. ‘앳 더 세임 타임’은 손택의 마지막 강연 제목이었다. 직역하자면 ‘동시에’라는 뜻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뜻을 갖는다. 이 책에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

“소설가들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공간적·시간적으로 축소할 권리를 바탕으로 한 윤리적 임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소설가의 자리에 작가, 기획자, 기업가를 넣어도 무방해 보인다. 무엇이든 창작을 하거나 새 조직을 만드는 이들에게 모두 적용되는 말 같아서다. 미술평론가 루시 리파드가 2012년에 작가들에게 제시한 지시문도 비슷한 맥락에 놓인 문장처럼 보인다. “시각적으로 눈에 띄며, 사회적으로 급진적인, 개념적으로나 문맥상으로 민감하고 지속 가능하며, (예술 장소 밖) 공공의 영역에 포함되고, 그 어떤 생물체도 다치게 하지 않는 일―즉, 세상을 바꿀 만한 어떤 일을 하십시오. 행운을 빕니다!”

헤밍웨이에서 시작해 손택을 경유해 리파드로 구현된 전시의 제목이 <우리 시대에_앳 더 세임 타임>이다. 지난 10월12일에 시작했고 내년 1월9일까지 제주도립미술관에서 내내 관객들을 기다린다. 이 전시는 미술관을 하나의 작은 제주로 만들어보겠다는 의지에서 시작한다. 동시대 제주라는 섬의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공간적·시각적으로 축소하는 윤리적 임무를, 시각적으로 눈에 띄며 개념적으로나 문맥상으로 민감하고 지속 가능한 어떤 일을 수행해본 것이다.

일단 제주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에게 인공과 자연이라는 대립적 개념을 품는 작품을 의뢰했다. 그리고 작업 방식은 다양한 층위의 협업의 과정을 거치고, 대규모 작업은 그를 위한 새로운 팀이 꾸려져서 구현되길 바랐다. 사실 모든 전시는 작가의 이름을 대표적으로 내세우긴 하지만 수많은 이들의 손을 거치며 다양한 아이디어가 종합돼 나오는 결과물이다. 작가보다는 그런 작업의 ‘과정’이 조금 더 드러날 수 있길 바랐다. 예를 들어 미술관 중정에는 시각예술가들의 언어로 제주의 곶자왈이 재현되길 바란다는 미술관의 뜻이 전달되고, 생태예술을 하는 예술가들이 모여 미술관과 같은 고도의 제주식생을 연구해 식물을 옮겨 심고 곶자왈에 가까운 작품을 관객들에게 제시한다. 미술관 로비에서는 인테리어 디자인과 시공과 기획의 어느 지점에서 관객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할 수 있으면서도 시각적인 재미를 주는 휴식공간이 탄생한다. 에코 오롯은 500여명의 도민이 100여회에 가까운 워크숍에 직접 참여해 한땀한땀 산호를 뜨개질로 떠서 모아둔 뜨개산호군락을 소개한다. 제주산호뜨개 프로젝트를 볼 때마다 위에 언급한 손택과 리파드의 문장이 선명하게 떠오르곤 한다. 또 하나의 시도는 제주도 밖에 설치된 야외미술품을 미디어아트로 변용해 미술관 안으로 들여놓은 것인데, 이는 비대면으로 전격 전환된 세계유산축전 아트프로젝트엔 귀한 대안이 되었다. 작가 20명이 아름다운 세계자연유산 구간에 설치한 야외조각품들은, 자칫하면 관객과 만날 기회를 가질 수 없을 뻔했다. 이렇게 한 개인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여러명의 고민이 모인 크고 작은 프로젝트들이 내어주는 결과물들이 미술관 곳곳에 포진한다.

표현 방식과 전시 방식은 모두 다르지만, 이 시대를 함께, 동시에 지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시각적으로 다채롭게 구현됐다. 미술관은 작은 제주가 되고, 온라인에는 또 다른 제주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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