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간호사가 없는 나라에서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입력 2021. 10. 24. 15:40 수정 2021. 10. 2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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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곧 ‘위드 코로나’가 시작된다고 한다. “확진자 억제에서 중환자 치료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럴 준비는 되었는가?

중환자실 상황은 늘 비상이다. 평소에도 종합병원 간호사 한 명이 3~5명의 중환자를 감당한다. 주요 선진국에서 간호사 한 명이 많아야 2명을 담당하는 것과 큰 차이다. 이런 한국에서 한 명이 위중해져 간호사들이 몰리면 다른 많은 환자들은 방치되는 위험한 상황이 쉽게 벌어진다. 간호사가 담당하는 환자가 한 명 늘어날수록 사망률과 합병증이 늘어난다는 연구결과들은 이 나라에서 매일 간호사들이 겪어야 하는 아슬아슬한 일상의 건조한 표현일 뿐이다.

그나마 중환자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일반 병동은 간호사 한 명이 15~20명을, 많게는 40명 넘게 돌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의 6~8명과 비할 바 아니다. 그래서 코로나19 중환자가 늘어나면 일반 중환자실 문을 닫고, 코로나19 전담병상은 인력이 없어 운영되지 못하는 일이 계속되는 것이다. 병상은 갑자기 만들 수 있어도 숙련 간호사는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따라서 정부가 최근 코로나19 병상 간호인력 배치기준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확진자가 늘어났을 때 간호사가 채워지리라 보장할 수는 없다. 평소 간호사가 있어야 할 곳에 간호사가 없다는 본질적 문제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사실 간호사 부족은 코로나19 이전부터도 수없이 제기되었다. 그때마다 정부는 간호대학 정원 확대라는 잘못된 응답을 되풀이해왔다. 하지만 간호사 배출이 늘어도 환자 곁의 간호사는 늘지 않았다. 2019년 기준 인구당 간호대 졸업자 수는 OECD 평균보다 1.3배나 많지만 면허 소지자의 단 절반만 병원에서 일한다. 병원이 ‘고용’을 하지 않는다는 간단한 이유 때문이다.

95% 민간병원들이 인건비 절감에 혈안이 되어 있어서다. 지난 수십년간 의료가 시장에 방치되면서 병원은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돈벌이 공장이 되었다. 이 공장은 컨베이어벨트에 환자를 욱여넣고 적은 수의 간호노동자를 쥐어짜 과잉진료로 돈을 벌며 규모경쟁을 한 끝에 외국의 2~3배에 달하는 병상을 갖게 되었다. 병상은 많고 간호사는 적으니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신규 간호사 절반이 1년 안에 사직하고 남은 간호사들도 고통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해왔다.

시장의료체계가 낳은 이 문제를 시장주의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병원이 간호사를 더 고용하면 재정적 보장을 하는 ‘간호등급제’를 20년 넘게 시행해왔지만, 간호관리료를 받는 것보다 인건비를 절감하는 것이 더 이익이 되는 병원들을 강제하는 효과가 없었다.

결국 병원이 인력을 늘릴 의지가 없는 나라에서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은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다. 의료기기나 의약품이 안전하지 않거나 효과가 없으면 병원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된다. 그런데 최소 인력도 갖추지 않아 환자를 위험하게 만드는 병원들은 왜 문제 없이 버젓이 운영되는가?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는 재정 소요도 없고 오직 정부가 민간병원의 과도한 이윤추구를 통제할 정치적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선택지이다. 지금도 수도권 대학병원들은 남는 돈을 주체하지 못하고 분원 설립 러시에 뛰어들어 5년 안에 5000병상을 늘릴 예정이다. 이 돈으로 간호사를 뽑고 처우를 개선하라는 것이다. 이는 미국과 호주에서도 시행되는 검증된 제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시민사회의 제안을 오랫동안 외면해왔다.

우려되는 것은 당장의 방역완화뿐만이 아니다. 3년에서 5년마다 반복될 신종 감염병, 그리고 폭염, 한파, 홍수, 산불 같은 기후재난이 일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간호사가 병원을 떠나는 나라에서 이 상시적 재난 시대를 살아갈 수 있을까?

‘빅5’라 불리는 병원에서 일하는 한 중환자실 6년차 간호사는 ‘동기들은 다 그만뒀다’고 말하며 씁쓸해 했다. 신규 간호사들로 채워지는 병원이 걱정스럽고, 자신마저 그만두면 안 될 것 같다는 마음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이런 간호사들이 아직 남아 있기에 우리 삶은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명감만으로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묵묵히 참고 견디는 것을 넘어 함께 모여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나선 간호사들의 목소리가 반가운 이유이다.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법제화하는 내용을 담은 ‘간호인권법’ 청원이 진행되고 있다. 이들이 마지막 끈을 놓아버리기 전에, 이제 우리가 함께 나서야 한다. (bit.ly/간호사지키기법)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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