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4년 금속활자 '갑인자' 확정?..두 국립박물관 온도차

박상현 2021. 10. 24.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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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소장품 평가 '신중'..고궁박물관, 인사동 유물 '추정' 표현 삭제
작년까지 조선 전기 한자 금속활자 전무.."연구 본격화할 시점"
국립중앙박물관이 공개한 갑인자 '추정' 금속활자 [국립중앙박물관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 세종 연간인 1434년 제작한 금속활자인 '갑인자'(甲寅字)를 대하는 국립박물관 두 곳의 태도가 사뭇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글자가 깨끗하고 바르며 일하기의 쉬움이 예전에 비해 갑절이나 됐다"고 기록된 갑인자는 그동안 실물 자료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올가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이 잇따라 갑인자로 보이는 금속활자를 연구하고 관련 전시를 추진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달 30일 소장품 중 갑인자로 '추정'되는 활자 152점을 모아 공개했고, 국립고궁박물관은 지난 6월 인사동에서 나온 유물 가운데 48점을 갑인자로 '확정'해 내달 초 전시하기로 했다.

갑인자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고, 두 국립박물관의 온도차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6월 29일 언론에 공개된 인사동 출토 금속활자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조선 전기 금속활자 희귀…공인된 한자 활자는 없어

구리를 비롯해 여러 금속으로 만든 '금속활자'는 올해 매우 큰 관심을 받았다.

24일 문화재계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관련 유물인 고려시대 서적 '직지심체요철'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고, 조선시대 초기에 간행한 금속활자본이 상당수 현존한다.

하지만 책과 활자는 별개의 문화재다. 지난해까지 고려시대 금속활자로 공인된 유물은 남북한 통틀어 10점이 되지 않았고, 임진왜란 이전에 제작된 조선 전기 금속활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2006년 공개한 한글 활자 약 30점이 전부라고 알려졌다.

국립중앙박물관 한글 활자는 1455년 무렵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크기가 작은 소자(小字)다. 이 활자들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금속활자 약 50만 점 중 일부로, 자료 정리 과정에서 1461년에 찍은 '능엄경언해'와 글자 모양이 동일하고 성분이 조선 후기 활자와 유의미하게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 전기 금속활자에 목말라 있던 학계의 갈증을 풀어준 대사건은 지난 6월 서울 도심 한복판 인사동에서 벌어졌다. 탑골공원 인근에서 이뤄진 발굴조사 도중 15∼16세기에 제작한 것으로 짐작되는 다양한 종류의 금속활자 1천632점이 항아리에 담긴 채 무더기로 발견된 것이다.

당시 세간의 이목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15세기 유물과 제작 시기가 같을 것으로 판단되는 최고(最古) 한글 금속활자에 쏠렸지만, 학계에서는 오히려 한자 활자를 주목했다.

조선은 1403년 계미년에 만든 '계미자'(癸未字)를 시작으로 여러 금속활자를 주조했다. 그런데 인사동 출토 유물 중에는 갑인자와 1455년 활자인 '을해자'(乙亥字) 등으로 보이는 활자도 있었다.

만일 갑인자로 공식 확인되면 기존 한글 금속활자보다 제작 시기가 20년 남짓 이른 조선 최고의 금속활자 실물이자 서양에서 금속활자를 발명한 구텐베르크 관련 유물보다 10여 년 앞서는 획기적 자료가 된다.

6월 29일 언론에 공개된 인사동 출토 금속활자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신중함 vs 속도전…갑인자를 보는 다른 시각

인사동 발굴 소식이 전해지고 3개월쯤 지난 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품 중에서 갑인자로 추정되는 한자 금속활자 152점을 찾아내 전시한다고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는 금속활자는 대개 조선왕실에서 사용하다 인계됐다. 그러나 갑인자 추정 활자는 조선총독부가 1930년대 구매해 입수 시기와 경위가 달랐다. 유물 등록 명칭은 단순히 '청동활자'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활자들이 인사동 출토 활자와 닮았다는 점 등에 착안해 분석한 뒤 "갑인자로 추정할 수 있는 상당한 근거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갑인자로 단정하지 않고, 신중한 태도를 보인 셈이다.

갑인자 추정 근거는 1436년에 찍은 '근사록'(近思錄)·'자치통감'(資治通鑑) 글자와 크기·서체가 일치하고, 33점을 대상으로 성분 분석을 한 결과 구리·주석·납 함량이 1455년 무렵 만든 한글 금속활자 소장품과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갑인자 추정 활자는 뒷면이 입 구(口)자 모양이거나 십자형 홈이 있지만, 조선 후기 활자는 둥근 조각칼로 긁어낸 듯한 직선 형태 홈이 있다"며 "조선 중기 이후 갑인자와 글자체가 같은 활자가 여러 차례 만들어지기도 했으나, 크기가 다르고 높이도 낮다"고 말했다.

반면 국립고궁박물관은 내달 3일 개막하는 인사동 금속활자 전시에서 소자 48자를 갑인자로 분류해 공개하기로 했다. 출토된 지 반년 정도 된 유물에서 '추정'이라는 꼬리표를 떼기로 한 것이다.

국립고궁박물관 관계자는 "1436년 '근사록' 글씨와 활자 서체가 시각적으로 거의 완벽히 같았다"며 "현재 활용할 수 있는 여러 연구 방법을 고려했을 때 갑인자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고, 인사동 유물에서 갑인자가 더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성분 분석은 유물을 파괴하지 않는 방식으로 하면 결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하지 않았다"며 "출토 유물을 연구한다는 이유로 늦게 공개하기보다는 연구자와 국민이 빨리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같이 신속한 결정은 문화재청이 2017년 고려시대 금속활자라는 주장이 제기된 이른바 '증도가자'의 보물 지정 여부를 확정할 때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평가된다.

국립중앙박물관, 갑인자 추정 금속활자 전시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대·캐나다에도 조선 전기 활자 가능성…"종합 연구 필요"

학계에서는 이제 조선 전기 금속활자 연구를 본격화할 시점이 됐다고 본다.

익명을 요구한 서지학계 관계자는 "국립고궁박물관이 갑인자라고 못 박기 전에 더 많은 학자를 연구에 참여시켰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50년 전 무령왕릉 발굴에서 보듯 졸속 작업은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발굴조사 직후 유물을 조사한 학자들 중심으로 후속 연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는 서울대와 캐나다 로열온타리오박물관에도 갑인자와 형태가 유사한 금속활자가 있다는 의견이 있어 연구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계 관계자는 "인사동 금속활자는 발굴조사를 통해 발견돼 진품일 확률이 매우 높은 유물인 만큼 이를 기준으로 각지에 있는 조선 전기 추정 금속활자를 종합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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