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전세금 돌려받았지만..씁쓸한 소송 그 이후[코주부]
(편집자주)지난 2주에 걸쳐 보내드린 뉴스레터 '내용증명 처음 보내본 썰', '인생 첫 전자소송 해 본 썰'에 대해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은 관심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이 자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해주셨으며 어떤 분들은 내용증명이나 전자소송 하는 법을 자세하게 알려줘 도움이 됐다는 글도 보내주셨습니다. 물론 '좋게 합의로 끝내면 될 일을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에 분란을 조장하는 글' 등의 비판해 주신 분도 있으셨구요.
사실 이 사건을 복기하기 위해 당시의 자료를 하나하나 들춰 보는 게 마음 편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힘들었던 그 때를 본능적으로 기억하기 싫었던 듯 합니다. 그럼에도 그 때 경험을 글로 전달하면 분명 도움이 될 사람도 있을 듯해서 정리한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다는 말에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이번 <코주부 레터>에서는 임차권 등기명령 신청을 완료하고 나서 집주인한테서 갑자기 연락이 온 뒤의 상황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전 뉴스레터에서 빠뜨리고 넘어갔던 경험에 기반한 몇 가지 '팁'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전세보증금 받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집주인과 무조건 싸우라는 글도 아니구요. 합의가 가장 좋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세입자 혼자서라도 할 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그럼 '좌충우돌 전세보증금 반환기' 그 마지막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법원에서 등기국에 기입등기 촉탁서를 발송하기 전까지 적지 않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5월 3일 집주인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통화를 하고 싶다"고. 임차권 등기 명령 신청을 하겠다고 3월쯤 통보했고, 지급명령에도 꿈적 않던 집주인이 갑자기 전화 통화를 하자고 하니 의아했습니다. 그동안 법원에서 임차권 등기 결정정본을 집주인에게 수차례 송달했지만 번번히 '폐문부재' '주소불명' 등의 이유로 전달되지 못하기도 했고요.
2년 전 일이라 통화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그 뒤 집주인과 문자로 대화한 것을 두고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임차권 등기를 진행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이었을 듯합니다.
집주인과 통화 후 문자로 '보증금 1억9,000만원 및 반환 지연에 따른 이자 일할 계산 후 전체 금액을 반환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왜 지연이자를 포함시켰냐구요? "분명히 보증금만 받지 너도 돈에 눈이 멀었구나"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집주인이 보증금을 제 때 반환하지 않아 대출을 받았고, 지급명령, 임차권 등기 명령 신청 등에 소요된 비용까지 받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급명령 결정문에도 지연 이자를 내라는 내용이 있기도 했구요. 물론 제 입장이었구요. 집주인이 동의를 하지 못한다면 협의를 해야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문자를 보냈었습니다.
바로 연락이 올 줄 알았는데 또 집주인은 연락이 없었습니다. 하아~ 그러면서 또 나흘이 흘렀습니다. 5월 7일 집주인이 전셋집 매물을 맡긴 공인중개사무소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습니다. 집주인이 돈이 없다며 당장 보증금 전체를 반환하지 못한다고 하네요. 일부(1억원) 변제 후 나머지(9,000만원)는 이후에 갚겠다는데 동의하냐는 내용이었습니다. 1회에도 썼지만 일부 변제도 저희는 받아들일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대출 받은 돈이야 이자를 내면서 버티면 됐지만 지인들에게서 빌린 돈은 무한정 상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빌릴 때 "한 두 달 안에 이자까지 포함해서 갚겠다"고 말하기도 했고요.
아내와 상의하고 변호사 친구와 얘기를 한 뒤 문자를 보냈습니다. 이렇게요.
1. 일억원을 먼저 입금해 줄 날짜와 함께 나머지 원금 및 지연이자 반환일을 정해줄 것. 2. 지연이자는 완전 반납일 기준으로 일할 계산 3. 위의 내용을 공증할 것 4. 공증이 완료되면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취하하겠음.
변호사 친구가 잔금 반환일을 명시하고 꼭 공증을 받아두라고 하더군요. 1억원을 먼저 갚고 나머지 금액 반환을 차일피일 미룰 수 있다면서. 만약에 반환이 계속 지연되고 이를 못 참고 세입자가 지급명령 등을 다시 진행할 경우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하고, 아울러 집주인이 이미 반환 의사를 밝힌 만큼 법원에서도 무조건 세입자 손을 들어주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이유에섭니다. 그 때를 위해서라도 합의한 내용에 공증을 받아두면 나중에라도 법적인 효력이 생긴다고 하더군요.
급하게 연락하던 것과 달리 문자를 보낸 후 또 하루 동안 연락이 없더군요. 답변을 달라고 문자를 다시 보냈습니다. 그리고 또 하루가 지나 이런 내용의 문자가 왔습니다. "전세계약 잔금 여입여부를 불안해 하는 건 당연하다. 임차권 등기해서 권리보전하라." 잔금 반환일을 확정해주지 못하고, 공증도 못하니 그냥 임차권 등기 설정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1억원을 먼저 갚을테니 잔금은 줄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과 다름이 없었구요. 집주인과의 합의가 무산되고 법원의 사건 진행 상황을 살펴봤더니 드디어 법원이 등기국에 임차권 등기를 등록해달라고 촉탁서를 발송했더군요. 이제 민사소송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아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나홀로 민사소송'을 하기 위해 자료를 뒤적이고 있었죠. 마지막 연락을 한 지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집주인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돈을 돌려 주겠답니다. 으잉? 갑자기? "방금 전까지 돈 없으시다면서요"라고 물었더니 "대출도 받고" 이러면서 명확한 답을 하지 않네요. 사실 그 말에 더 화가 나더군요. 충분히 보증금을 반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 지금까지 이렇게 미뤄왔는지 당최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한창 갈등이 심할 때 제가 "대출이라도 받아서 주셔야죠"라고 했을 때 "대출받을 여력도 없다"고 하셨으니까요. 결국 자신은 보증금을 돌려주면서 아무런 손해를 부담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밖에 읽히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따지고 물으면 '싸우자'는 얘기밖에 안되니 그냥 계좌번호를 보내줬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안 일인데, 임차권 등기 설정이 진행 중이니 신규 세입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매물을 보고 간 희망 세입자가 임차권 등기가 걸려있으면 계약을 못한다고 해서 부랴부랴 제게 돈을 줄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그렇게 2019년 절반 가까이를 괴롭히던 전세보증금 문제는 우여곡절 끝에 해결된 줄 알았는데···하아~
집주인이 보증금 반환 의사를 밝히긴 했지만 역시나 마지막까지 보증금을 받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보내준 계좌번호에 입금하기만 하면 되는데 제가 세입자 본인임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며 본인이 가능한 시간에 맞춰서 전세계약서를 들고 와서 중개사무소에서 직접 만나자고 요구하더군요. 일하던 중간에 헐레벌떡 집에 들러서 전세계약서를 챙겨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집주인은 와있지 않더군요.(허허허) 게다가 제 돈을 계약에 따라 돌려 받겠다는 것일 뿐이었지만 집주인 대신 나온 공인중개사에게는 "젊은 사람들이 돈 가지고 빡빡하게 구는 거 아니다"라는 훈계를 듣고 나서야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 임차권 등기를 취하해줬습니다.
취하는 소송을 제기하는 것보다 더 쉽습니다. 전자소송 사이트에 가서 서류제출→민사서류(소취하서)를 클릭한 뒤 사건번호를 입력하면 됩니다. 그리고 소취하서에 더 필요한 내용은 이렇게 법원에서 또 다시 보정명령을 보내줍니다.
길었네요. 전 이렇게 해서 집주인에게 결국엔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었지만 뒷맛은 조금은 씁쓸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수많은 세입자분들은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않는, 그리고 아예 '먹튀'하는 집주인에게 고통을 받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도가 확 바뀌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그럴테지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보증금 반환 과정에서 꼭 알아둬야 할 것들을 정리해보겠습니다.
1. 무조건 전셋집은 등기부등본이 깨끗한 물건을 찾아야 합니다. 은행 담보 같은 게 잡혀있거나 가압류 등 기록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물건은 무조건 '스킵'하세요. 그런 물건은 나중에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어디서 어떻게 다른 채권자가 등장할 지 모릅니다.
2. 집주인이 제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것 같다고 판단되시면 미리 필요한 자금을 어떻게든 마련해 두시기를 권합니다. 돈이 없어 보증금을 받아 잔금을 치르는 상황에서 뭔 소리냐고 하실지도 모르지만, 지인 찬스를 쓰시거나 마통을 뚫거나 해서 어떻게든 마련해 둬야 장기전으로 갈 수 있습니다. 안개만 먹고서 싸울 수는 없으니까요. 대부분 세입자들이 집주인과의 분쟁에서 양보를 할 수밖에 없는, 울며 겨자먹기로 이사를 가지 못하고 눌러 앉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자금계획에 대한 '플랜B'가 없기 때문에 버티는 집주인에게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대부분 임대보증금 미반환 소송은 세입자가 이긴다고 합니다. 임대차계약서라는 증거가 떡 하니 있으니까요. 여기에 2개월 전 재계약 의사가 없음을 통보한 증거만 있으면 됩니다. 그리고 소송까지 가서 결정되면 반환이 지연된 기간에 대한 법정이자(연 15%)까지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옵니다. 신용대출을 받더라도 법정이자보다는 쌀 겁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대응을 시작했구요. 그리고 지인에게 돈을 빌린다면 이율이 포함된 차용증은 꼭 쓰세요.
4. 전세권 등기 설정을 하라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전세권은 세입자가 다른 채권자보다 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다는 대항력을 얻기 위한 수단이지 지연되는 보증금을 반환 받는 수단은 아닙니다.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임차권 등기를 대신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전세권은 집주인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동의를 해주는 집주인은 거의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5. 전세보증금 반환 문제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최선이더군요. 이것보다 좋은 방법?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올해 8월 18일부터 '등록임대사업자'는 의무적으로 임대인(집주인)이 보험에 가입해야 합니다. 하지만 임대사업자가 아닌 경우에는 의무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이라면 임차인(세입자)이 보험료를 부담해야 합니다. 요즘 보증보험이 확산되는 추세인 만큼 계약 전 집주인에게 보증보험에 대한 공동부담 얘기를 꺼내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물론 잘 안 해주겠죠. 해주면 좋은 거고 안 해주면 흠...계약 전 집주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 수 있었다는 성과가...쿨럭~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보험 상품은 대표적으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SGI서울보증에서 취급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와 여기를 눌러보세요. 이 글에서는 가장 중요한(!) 보험료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계약기간 2년, 보증금 2억5,000만원짜리 빌라에 대한 보험료 시뮬레이션인데요. HUG가 훨씬 싸네요. HUG는 한달에 1만2,000원 정도만 내면 되고 SGI는 4만5,000원 정도입니다. HUG는 부채비율((선순위채권금액+전세보증금)÷주택가액)이 80% 초과면 요율이 더 올라가고, SGI는 해당 집의 LTV에 따라 요율을 깎아주기도 합니다. LTV가 60% 이하면 기준 요율에서 20%를 할인해주고 50%이하면 30%를 할인해 주는 식입니다. HUG는 또 한부모 가정 등 사회배려계층에 대해서는 보증료를 할인해 주기도 합니다. 신혼부부(신청인 소득이 연간 4,000만원 이하일 경우)도 할인 받을 구석이 있어요. HUG 보험 상품을 이용하면 큰 부담이 되지는 않을 듯하구요. SGI는 살짝 부담이 가는 보험료네요.
보험 가입에 필요한 서류는 SGI에서는 △공인중개업소를 통하고 확정일자를 받은 임대차계약서 △임차목적물의 부동산등기부등본(전입신고 이후 발급 분) △임차인의 주민등록등(초)본 △임대차사실확인서 및 전입세대열람원(단독, 다가구 주택 및 주택 일부 임차 시 징구)를 요구하고 있어요. HUG는 좀 더 많아요. 신청서 등을 제외하고 공통으로 △주민등록등본 및 신분증 사본 △확정일자부 전세계약서 사본 △전세보증금 수령 및 지급 확인서류 △부동산등기부등본 및 전입세대열람내역 △다가구·빌라·단독주택인 경우 건축물 대장이 추가로 필요하네요.
2018년부터 집주인의 동의가 없어도 임차인이 보험에 가입할 수 있으니 가입해두실 것을 권해드립니다.(※HUG 광고 절대 아님). 저 역시 다시 전세를 살게된다면 무조건 보험에 가입할 겁니다. 일어날지 아닐지도 모르는 일에 보험료를 내야 하는 게 아깝긴 하지만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상품이 등록임대사업자에게는 의무화가 돼 있지만 전체 전세 계약으로 확대하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말 많은 계약갱신청구권보다 훨씬 세입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구요.
3주에 걸쳐 연재한 '나홀로 전세보증금 반환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런 일은 안 당하는 게 좋겠지만 혹시라도 피할 수 없게 된다면 <코주부 레터>를 열어 다시 한 번 보고 참고라도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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