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제주문화](21) 제주어는 왜 낯설고 어려울까요?

변지철 2021. 10. 2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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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건너온 옛말의 보고' 제주어 제주 이해하는 첫걸음
"제주어가 사라지는 것은 제주가 사라지는 것..보존해야"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주국제공항에서 출구를 빠져나오는 사람들을 보라. 얼굴이나 머리모양, 입고 있는 옷 등으로 제주 사람을 구별할 수 있을까. 모두 엇비슷해 그 사람이 그 사람 같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서도 제주어로 말하는 사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제주어로 말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제주 사람이다. 바꿔 말하면 제주 사람이 쓰는 말이 곧 제주어다.」

'제주어 길라잡이' [제주학연구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제주학연구센터에서 발간한 제주학총서 '제주어 길라잡이' 첫 장에 나오는 제주어에 대한 설명이다.

위 설명은 제주 사람과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구별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안에도 지역에 따라 문화와 언어에 차이가 나듯 서로를 더 잘 이해해보자는 취지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제주를, 그리고 제주 사람을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선 제주의 역사, 문화도 중요하지만, 제주어를 우선 알아볼 필요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제주어는 어려워

몇 해 전 제주지방경찰청에서는 이색적인 교육 풍경이 연출됐다.

교육 내용은 범인을 잡기 위한 수사 기법이나 신종 범죄 수법 등이 아니라 다름 아닌 '제주어'였다.

물 좋고 경치 좋은 제주에서 근무하겠다며 타지역에서 제주로 전입한 경찰들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제주어를 배우느라 열을 올렸다.

각종 신고 접수, 민원 처리, 치안 현장 등 일선에서 업무를 할 때 마치 외국어처럼 느껴지는 제주어를 이해하지 못해 겪는 어려움과 해프닝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은 제주도 내 주요 행정·사법 기관 등에서도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이다.

전입 공무원과 사투리를 쓰는 장년층 또는 노년층 민원인들 사이에서 대화가 안 돼 소위 '불통' 행정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왕왕 일어난다.

동국여지승람 [연합뉴스 자료사진]

수백 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시대 인문지리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1481)에는 이러한 설명이 나온다.

당시 저자는 제주말을 '이어간삽'(俚語艱澁)이라고 표현했다. '촌백성의 말이 어렵다'는 뜻이다.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원진의 '탐라지'(耽羅誌, 1653)에도 '지방 말이 간삽하다. 촌백성의 말이 간삽하고 앞이 높고 뒤가 낮다'며 다르게 쓰이는 몇 가지 어휘를 예로 들기도 했다.

과거에도 제주 사람들이 쓰는 어휘를 이해하지 못해 제주어를 '간삽하다'(어렵다)라고 평했던 것이다.

제주어에는 섬이라는 특수한 자연환경 속에서 생겨난 독특한 어휘들이 제주 사람들의 삶 속에 그대로 이어 내려왔을 뿐만 아니라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언어 등 옛말이 상당 부분 남아 있다.

제주어가 가진 독특한 특징이다.

바다와 출륙금지령이 가른 언어 '제주어'

제주어 학자들은 제주도를 옛말이 많이 남아 있는 '언어의 섬'이라고 표현한다.

제주와 육지 사이를 가로막는 바다가 새로운 말이 제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고, 반대로 일단 들어온 말을 오랫동안 쓰이도록 유지시켰다는 것이다.

또 조선시대 약 200년간 제주를 철저히 외부와 격리해 놓았던 '출륙금지령'으로 인해 제주 사람들은 섬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기 힘들었다.

육지와 제주를 가른 바다 (제주=연합뉴스) 제주시 이호동 뒤편으로 남해안의 섬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때문에 새로 생겨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언어의 변화가 제주에선 극히 제한된 교류 속에 더디게 이뤄졌다.

수십 년, 수백 년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그 차이는 더욱 벌어졌다.

옛날 한양에서 사라진 말을 제주에서는 여전히 쓰고 있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들면, 제주 올레길로 잘 알려진 '올레'란 말이다.

'올레'는 '집 대문에서 마을 입구(또는 큰길)까지 이어지는 아주 좁은 골목'을 뜻하는 제주어다.

이 말이 순전히 제주에서만 쓰이는 말이었을까.

학자들은 제주어 '올레'의 어원을 우리나라 옛말인 '오래'라고 설명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이 개설한 개방형 사전 '우리말샘'을 보면 '오래'는 대문이란 뜻이다. 이후 시간이 흘러 '거리에서 대문으로 통하는 좁은 길'이란 뜻도 덧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육지에선 현재 쓰이지 않는 말이지만, 과거 이 말이 들어온 제주에서는 지금까지도 쓰이고 있다.

제주어연구소 이사장인 강영봉 제주대 명예교수는 "훈몽자회(訓蒙字會)의 門(문) 항목 설명을 보면, 밖에 있는 문을 우리말에서는 오래문이라 했다"며 "올레는 문을 뜻하는 순우리말인 오래 또는 오래문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강 원장은 "실제로 제주도는 대문이 없어서 구불구불 이어지는 올레가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도록 하는 문의 기능을 했다"고 말했다.

중세국어의 흔적을 간직한 제주어의 가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거리에 설치된 훈민정음 모형 [연합뉴스 자료사진]

위기의 제주어

표준어규정 제1장 제1항은 표준어를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언뜻 보면 마치 지역어가 교양 없는 사람들이 쓰는 말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지역어도 누대에 걸쳐 전승된 우리 모두의 문화유산임에도 해당 지역민에게 문화적 박탈감을 준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제주어다.

제주어는 서울 중심의 언어정책과 인위적이고 강제적인 표준어 규정으로 인해 현대 들어 많은 위기를 겪었다.

매스컴의 발달로 인해 지역민들이 표준어에 노출되고, 표준어를 쓰도록 하는 사회적 환경 탓에 제주어는 해가 갈수록 위축됐다.

또 다른 형태의 위기도 있었다.

2000년대 초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육성하면서 영어를 제주의 제2의 공용어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던 것.

제주어 구술 채록 보고서 [연합뉴스 자료사진]

즉각 전국적으로 찬반 논란이 뜨겁게 펼쳐졌다.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 제주 영어 공용어화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고, 찬반 토론에서도 제주어가 말살되고 제주문화의 정체성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수년간 관련 논의가 이어지면서 영어 공용화론은 '제주에 영어마을을 만들자', '제주도를 동아시아의 국제 교육산업의 메카로 만들자'는 논의로 이어졌고 결국 대정읍에 영어교육도시가 생겨나기에 이르렀다.

어느새 제주어는 언제 사라질지 모를 소멸 위기 언어가 됐다.

2010년 12월 유네스코는 제주어를 '아주 심각한 위기에 처한 언어'로 분류했다.

유네스코는 사라지는 언어 가운데 제주어가 소멸 위기의 언어 가운데 4단계인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criticcally endangered language)라고 발표했다. 5단계 '소멸 언어'에 근접했다는 것이다.

이때를 전후해 제주어에 대한 위기의식이 확산하면서 제주는 국내 다른 지역과 달리 지역어 보전에 대한 조례인 '제주어 보전과 육성 조례'(2007년)를 만들고, 독자적인 표기법인 '제주어 표기법'(2014년)을 제정·고시했다.

하지만 여전히 제주어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있다.

제주학연구센터 센터장인 김순자 박사는 "제주어가 사라지는 것은 제주가 사라지는 것, 제주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라며 "제주의 정체성을 정신문화를 지키고 이어나가기 위해서라도 소중히 아끼고 보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어를 활용한 문양 디자인 [연합뉴스 자료사진]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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