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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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눈에 보이는 활동은 없었죠. 충분한 휴식기를 가졌나요?
사실 질문지를 받고 골똘히 생각해봤어요. 휴식기를 가지면서 특별히 한 게 없더라고요. <도시남녀의 사랑법>을 끝마치고 거의 집 밖을 안 나갔어요. 보고 싶었던 영화나 드라마 몰아보고 가족이랑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무엇을 몰아봤어요?
<중경삼림> <화양연화>가 기억나네요. 왕가위 감독님 작품을 다시 보고 싶더라고요. 시트콤도 봤어요. <순풍 산부인과>랑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생각해보니 휴식기에 새벽 드라이브를 자주 갔어요.
직접 몰았어요?
네.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 틀고 목적지 없이 그냥 달렸어요. 내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새벽엔 도로에 차가 없잖아요. 그래서 좋아요. 달린다고 했지만 사실 시속 50으로 가거든요.(웃음) 남산도 갔고요, 비 오는 날 한강에 차 세워놓고 클래식 들으며 감성에 젖고 그랬죠.
운전 좋아해요?
예전엔 안 좋아했는데, 작품 끝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거예요. 누굴 만날 수도 없으니까. 그래서 한두 번 시도했더니 생각보다 쾌감 있는 거예요.
“윤여정 선배님께서 ‘나 67살이 처음이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이 정말와 닿아요. 연륜이 있으신데도 말이죠.”
새벽 드라이브 말고 또 빠진 게 있어요?
스우파! <스트릿 우먼 파이터> 댄서분들 멋있어서 정신을 못 차리겠어요. 봤던 회를 또 볼 정도로 중독됐어요. 유튜브에 그룹별·리더별로 모아놓은 직캠 영상들이 있어요. 다 챙겨봤어요. 행복한 덕질 중이죠.
모든 크루의 성격이 다른 게 매력인 것 같아요.
맞아요! 배우라는 직업도 몸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직업이긴 하지만 대사가 있잖아요. 근데 댄서분들은 대사 없이 오직 몸으로만 표현하시니까 더 멋있더라고요.
지원 씨가 연기해온 캐릭터들도 모두 성향이 달라요. 새로운 캐릭터를 접할 때 어려운 점은 없어요?
너무 다른 인물이니까 쉽지 않아요. 시작은 항상 그 인물과 거리를 두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촬영하면서 점차 가까워지려 하죠. 감독님과 다른 배우분들도 계셔서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거든요. 역할에 대한 감도 좁혀나갈 수 있고요.
10년 활동을 넘겼어요. 서른 살도 맞이했고요. 20대 때보다 수월해졌어요?
스무 살 때는 정말 멋있는 30대를 맞이할 거라 기대했어요. 자연스럽고 능수능란할 거라 믿었죠. 하지만 막상 30대에 들어서 보니 아니었던 거죠. 서른 살이 되니 새로운 어려움이 생기고, 어떤 것에 능숙해지면 다른 어려움이 나타나더라고요. 그래서 수월해진 느낌은 아직 못 받고 있어요. 대신 예전보다 더 즐기고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여유가 생겼어요.
맞아요. 매번 변수가 생겨요. 이번 달은 잘해야지 마음먹어도 다음 달 되면 또 어렵고.
그 기분이에요! 심지어 갈수록 허들이 높아지잖아요. 예전에 <꽃보다 누나>에서 윤여정 선배님께서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나 67살이 처음이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이 정말 와 닿아요. 연륜이 있으신데도 말이죠. 그러니 우린 너무 잘하고 있는 거예요.(웃음)
그 허들을 뛰어넘기 위한 방법은 뭘까요?
혼자 고민을 많이 해요. 어떤 캐릭터를 만났을 때 이만큼 노력했으니 다음 캐릭터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더 어려워요. 정말 답이 없을 땐 물구나무를 서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민해요.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는 건 너무 힘들잖아요. 빨리 해결하고 싶어 스치는 생각들을 일기에 써보기도 하고, 집에서 다트를 던지기도 하며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아요. 산책하거나 모든 수를 썼는데도 해결이 안 되잖아요? 촬영 현장 가면 그 문제들이 한방에 해결돼요. 감독님, 호흡 맞추는 배우분들과 대화하면 문제가 싹 사라져요. 신기하죠.
자기와 닮은 캐릭터와 반대 성향의 캐릭터 중 편한 건요?
배우분들끼리 모이면 이런 이야기 자주 하거든요. 어떤 게 편하냐고. 각자 다르더라고요. 저는 오히려 저와 반대 성향에 가까운 역할을 만나면 더 재밌게 연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비슷한 성향이면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캐릭터에 대입하게 돼 한계가 생겨요. 반면 반대 성향의 캐릭터는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라 생각되니까 스스로 상상력을 발휘하기 쉽죠.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캐릭터는 어떤 특성을 가져요?
이것도 고민을 해봤는데, 내면의 불씨가 있는 캐릭터? 욕망 가득한 캐릭터를 봤을 때 매력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그 욕망이라는 게 사랑이 될 수도 있고 집착, 성공, 간절함이 될 수도 있죠.
야망 있는 캐릭터는 모험을 즐기잖아요. 지원 씨는 모험 좋아해요?
제가 오늘 고추맛 초콜릿을 가져왔어요. 약간 매콤한 초콜릿 맛이에요. 한번 드셔보세요.(웃음) 고추맛 초콜릿은 선뜻 시도하지만 모험 정신이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 도전을 즐기는 타입도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안전 제일주의로 살아왔어요. 그런데 인터뷰하면 ‘다양한 캐릭터를 다양하게 시도했다’는 말씀 많이 하시더라고요. 다양한 캐릭터를 시도한다는 게 모험이 될 수도 있지만, 모험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안전지대보다 약간 넓은 정도만 벗어난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작품들과의 연이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아요.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었다기보다는 당시에 내 마음이 많이 갔던 작품에 임했던 거죠.
20대 때는 어땠어요?
책임감이 컸죠. 열정적으로 살았던 시기예요. 모든 20대가 각자의 열정으로 달려나가는 시기니까. 적당히 고난을 겪고 적당히 극복하고 적당히 즐거웠어요.
전반적으로 큰 역경이나 고난 없이 순탄하게 걸어오신 것 같아요. 그게 가장 좋은 삶이죠.
힘든 일을 잘 극복하는 걸 회복 탄성이라고 하더라고요. 회복 탄성이 좋은 사람은 힘든 일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데요. 제가 그런 타입인 것 같아요.
스트레스 많이 안 받으시죠?
받아도 금방 극복해요. 스트레스에 파고들지 않아요. 매몰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지배될까 봐.
친구들 만나면 뭐하고 놀아요?
아마 우리 모임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 없을걸요? 철학적인 얘기하는 거 좋아해요. 삶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누는데 사실 철학적인 내용은 30퍼센트밖에 없어요. 나머지 70퍼센트는 ‘화장품 뭐 쓰냐, 립 꺼내봐라’ 이런 이야기죠.(웃음) 가끔은 친구가 삶을 어떻게 대하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지더라고요. 그 사람에 대해 깊게 알아가는 게 재밌어요. 요즘은 잘 모이지 못하지만 예전엔 이런 대화 자주 했죠.
그런 대화에서 새로운 영감이나 에너지를 얻는 것 같아요.
맞아요. 작품 들어가면 드라마에 대해 전혀 모르는 친구들에게 1인극처럼 내용을 막 설명해줘요. 그럼 친구들이 툭 던지는 한마디가 머리에 확 꽂힐 때가 있어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식이나 캐릭터의 의도를 말할 때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는데!
캐릭터를 흡수하면 본인의 성향이나 본질에 변화가 생기기도 하나요?
그럴 때도 있어요. 캐릭터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변화가 생겨요. 마음이 따뜻하고 배려 깊은 캐릭터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그렇게 변하고 깨달음도 얻어요. 연기를 떠나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작품 속 캐릭터의 영향을 받기도 하잖아요. 그런 상황과 결이 비슷하지만, 확실히 연기하면서 그 인물로 살아보니까 더 큰 변화가 찾아와요.
듣던 중 갑자기 깨달은 게 딕션이 정말 좋아요.
가끔 친구들도 물어봐요. 직장 다니는 친구들이 프레젠테이션할 때 또박또박 말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고. 빨대를 입에 물고 말하면 도움이 돼요. 빨대를 물고 화난 듯이 말하면 발음이 더 정확해지더라고요. <태양의 후예> 윤명주나 <상속자들> 유라헬 같은 경우는 발음을 절도 있게 해야 멋있는 역할이라 그때 연습했어요.
지원 씨는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나요?
사랑하긴 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살았어요. 자신보다는 주변 상황에 더 맞추려는 성격이었어요. 열아홉, 스무 살에 일을 시작해서 자신을 돌아볼 시간도 없었고요. 근데 일 시작하고 많은 분들께 사랑을 받으면서 깨달은 것 같아요. 내가 나를 사랑해야 그분들의 마음도 감사하게 받을 수 있다는 걸요. 그때부터 스스로를 사랑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게 제일 어려워요. 자신이 가진 취약하고 부족한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모습까지도 사랑하는 방법을 연습하고 있어요. 선배님들 영향도 있었어요.
어떤 영향을 받았어요?
선배님들이 제게 “네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이야기해볼래? 너의 장점을 얘기해봐”라고 늘 말씀해주셨거든요.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어요. 나이가 들어가고 경험치가 생길수록 그 말씀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게 됐죠.
본인의 어떤 점을 가장 사랑해요?
조심스러움? 조심스러운 성격은 정말 고치고 싶으면서도 사랑하려고 애써요. 그런 성향 덕분에 조금이나마 순탄한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것 같고,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김지원은 어떤 사람인 것 같나요?
그게 너무 어려운 거죠. 그 질문에는 자신도 항상 꼬리에 꼬리를 물며 답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해답을 아직 못 찾았어요.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걸 원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어려워요. <쌈, 마이웨이>의 최애라처럼 밝은 사람인 것 같고,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의 김지원처럼 질풍노도의 사춘기 같기도 하고요. <태양의 후예> 윤명주의 욕망이나 목표가 생겼을 때 투철하게 달려나가는 면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네요.(웃음)
‘비포 시리즈’ 요즘도 자주 봐요?
그럼요. 그냥 틀어놔도 좋은 영화죠. 세 편이 각각 시간을 두고 공개됐잖아요. 그 세 편 속의 인물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나이 들어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주는 게 와 닿았어요. 그리고 저 애니메이션도 정말 좋아해요. <드래곤 길들이기> 너무 재밌잖아요. 진짜 감동적인 영화예요. <주먹왕 랄프>도요! 주인공 랄프는 비록 악역이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사랑하려 노력해요. ‘나 자신을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귀엽게 풀어준 영화니까 안 보셨다면 꼭 봐주세요.
최근 고민이 있다면요?
새 작품 촬영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죠. 어떻게 잘 표현해낼 수 있을지요. 또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게 될 것 같은데 그 다른 모습을 어떻게 하면 잘 보여드릴 수 있을까. 그리고 이건 고민이라기보단 소망에 가깝겠네요. 이전에는 몰랐는데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던 때가 정말 좋았다는 걸 느꼈어요. 현장에서 긴 시간을 촬영하는데도 스태프분들과 얼굴 보고 얘기할 수가 없어요. 빨리 나아지길 바라고 있어요. 간절히.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고민한 적 있어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으론 편안한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드라마에 몰입해서 즐기실 수 있도록 만드는 편한 배우가 되고 싶고, 노력해야죠.
마지막으로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 해주세요.
지금 이 순간에 해주고 싶은 말이요? 아, 뭐 있지! 오늘 너무 즐거웠고요, 인터뷰도 친구와 수다 떠는 듯해서 즐겁게 집에 들어갈 수 있겠다. 지원아, 집 가서 아이스 민트 초코 라테 한 잔 마시고 영화 한 편 보고 자자!
EDITOR : 정소진 | PHOTOGRAPHY : 최용빈 | STYLIST : 이윤미(brand L) | HAIR : 백흥권 | MAKE-UP : 최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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