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잇감 될게 뻔한데.." 개미들 분노에도 공매도 포기 못하는 이유 [한경우의 케이스스터디]

한경우 2021. 10. 2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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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도 개미도 때리는 '공매도'
앞으론 어떻게 될까
민주당 "외국인·기관 대주 상환기한 60일로"
홍준표 "폐지해야", 유승민 "차단장치 도입"
당국 "언젠간 가야 할 전면 재개..글로벌 스탠더드"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회장이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공매도 재개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코스피200·코스닥150 지수 편입종목이 조정된 뒤에 거래가 재개되는 게 더 낫겠습니다. 지수 편입종목의 정기변경일 전에 매매거래가 재개됐다가 지수에 편입되면 공매도 세력의 먹잇감이 될 게 뻔해요.”

매매거래가 정지된 종목을 보유하고 있는 한 개인투자자의 말입니다. 매매거래가 정지된 종목을 보유 중이라면 하루 빨리 거래가 재개되기를 바랄 텐데, 공매도에 대한 개인투자자의 공포가 얼마나 심한지 보여줍니다.

공매도는 주식 가격 하락이 예상될 때 다른 투자자가 보유한 주식을 빌려서 팔고, 주가가 떨어지면 되사서 갚아 차익을 챙기는 매매방식입니다. 예상대로 주가가 하락하지 않고 오르면 비싼 값에 사서 갚아야 하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로 경제 충격으로 글로벌 증시가 급락하자 세계 각국은 공매도 거래를 일시적으로 금지시켰습니다. 한국 금융당국 역시 작년 3월 공매도 거래를 금지시켰다가, 우여곡절 끝에 올해 5월3일 부분적으로 재개했습니다. 현재 공매도 거래를 할 수 있는 종목은 코스피200·코스닥150 지수에 편입된 종목으로 제한돼 있습니다.

당초 작년 3월 공매도 거래를 일시적으로 금지시키면서 금융당국은 6개월 뒤 공매도 거래를 재개할 계획이었습니다. 실제 한국과 비슷한 시기에 공매도 거래를 일시적으로 금지시킨 다른 나라들 중 상당수는 6개월여만에 공매도 거래를 재개했습니다. 감염병 확산 사태로 멈춰선 경제가 망가지는 걸 막기 위해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이 금융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하자,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증시가 빠르게 회복되기도 했죠.

하지만 한국 금융당국은 작년 9월과 올해 3월 두 차례나 공매도 거래 재개를 연기합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무차입공매도(주식을 빌리지 않은 상태에서 없는 주식을 공매도하는 불법 거래)와 같은 불법공매도에 대한 처벌 강화 등 제도를 개선한다는 명목이었습니다.

실제 두 차례 공매도 거래 재개가 연기되는 동안 ▲불법 공매도에 대한 과징금 및 형사처벌 도입 ▲증권사·거래소의 불법 공매도 이중 적발 시스템 구축 ▲개인 대주제도 전면 개편 ▲시장조성자 공매도 규모를 기존의 절반 이하로 축소 등의 제도 개선이 이뤄졌습니다.

한국거래소 공매도 모니터링 센터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공매도 자체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개인투자자들의 목소리도 공매도 거래 재개를 미루는 데 한 몫을 했습니다. 특히 작년 3월19일 저점을 찍은 뒤 증시가 회복하는 과정에서 개인투자자들이 대거 증시에 유입돼, 이들의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금융투자협회에 집계된 9월말 기준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수는 3000만개를 넘어섰습니다. 작년 12월 2000만개를 돌파한지 9개월만에 1000만개 넘게 늘어난 겁니다. 한 사람이 여러 개의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금융투자업계는 국내 개인투자자 수를 1000만명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부터 증시가 조정을 받자 공매도에 대해 개인투자자들이 내는 성토의 목소리가 또 다시 거세지고 있습니다.

 외인·기관 규제, 폐지…공매도 때리기 경쟁 불붙은 정치권

여론이 형성되자 정치권도 공매도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내년 3월 치러질 대선을 앞두고 대권주자들은 개인투자자의 민심을 얻기 위해 공매도 제도 관련 공약을 잇따라 내놓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 국면에서 가장 먼저 외국인·기관의 공매도 거래에 제한을 걸자는 목소리를 낸 후보는 정세균 전 국무총리였습니다. 그는 지난 6월28일 더불어민주당 이광재 의원과 한국거래소를 방문해 “기관에 허용된 공매도 차입 (주식) 상환 만기를 6개월로 제한하겠다”는 공약을 내놨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와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8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단일화 선언을 하고 있다. 정 전 총리는 이날 기관의 공매도 대주 상환 기간을 제한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사진=뉴스1


정 전 총리는 민주당 경선에서 중도사퇴했지만, 그의 외국인·기관의 공매도 대주 상환기간 제한 공약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당 김한정 의원이 이어받은 모양새입니다. 특히 김한정 의원은 외국인과 기관의 대주 상환기간 제한을 60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지난 7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공매도 제도가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시장 과열을 막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실제 공매도 상위 종목을 보면 개인투자자 매수가 몰리는 종목”이라며 “외국인이 이들 종목을 집중 공매도 하는 이유는 결국 개인투자자의 손해를 통해 이득을 얻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아직 증시 관련 공약을 내놓지 않은 상태입니다. 성남시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과 관련한 공방 때문에 바쁘기도 하잖아요. 다만 공매도에 우호적이지는 않을 겁니다. 변호사 시절부터 주식 투자에 잔뼈가 굵었던 이 지사는 2017년 대선국면의 민주당 경선 후보로 나섰을 때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은 종목에 대한 공매도 제한 ▲공매도 기간·물량의 사전 예고 등의 제도를 제안한 바 있습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홍준표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가 “공매도 폐지”를 외칩니다. 그는 지난 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주식 공매도 제도는 대부분 기관투자가들만 이용하는 주식 외상 거래제도”라며 “동학개미들에겐 불리할 수밖에 없는 잘못된 주식 거래제도”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더구나 주식시장의 폭락을 더더욱 부추기는 역기능도 한다”고 덧붙였죠.

국민의힘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홍 의원과 경쟁하고 있는 유승민 전 의원은 공매도 폐지에는 회의적입니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홍 후보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백번 공감한다”면서도 “자본시장이 완전히 개방된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면 우리 증시는 국제적으로 고립된다. 외국인들이 떠나고 주식시장이 더 나빠지면 개미들 피해가 더 커진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면서 불법 공매도의 처벌 강화와 일정한 상황이 발생하면 공매도를 자동 금지하는 차단장치인 ‘공매도 서킷 브레이커’ 도입을 제안했습니다.

 금융위원장 “언젠가 가야 할 공매도 전면재개”

공매도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금융당국과 증권업계의 분위기는 다릅니다. 오히려 한술 더 떠 현재 부분적으로만 재개된 공매도를 전면 재개하자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자본시장 업계·유관기관과의 간담회를 가진 뒤 기자들과 만나 “공매도 전면재개는 언젠가는 가야할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업계의 공매도 전면 재개 요구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이틀 뒤인 이달 2일 발간된 한국금융연구원의 금융브리프에도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공매도 거래를 완전 재허용할 때가 됐다는 주장의 보고서가 실렸습니다.

송민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20년 공매도 금지 및 2021년 부분적 해제 조치의 영향 분석과 시서점’ 보고서를 통해 "작년 공매도 금지 조치 이후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아미후드 척도(거래금액 대비 가격 변동 절대값 평균)와 변동성 척도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상승했다"며 "이는 공매도 금지로 유동성은 악화하고 변동성은 확대됐다는 의미"라고 말했습니다. 공매도 거래가 부분 재개된 뒤 변동성이 확대된 데 대해서는 “이례적”이라며 “주식 시장 가격 조정기에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라고 설명했고요. 대신 유동성은 공매도 거래 부분 재개 뒤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당국·업계는 왜 포기하지 못할까…“글로벌 스탠더드”

금융당국과 증권업계가 공매도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글로벌 스탠더드’ 때문입니다. 공매도 부분 재개가 결정된 지난 2월 금융위 임시회의를 마친 뒤 은성수 당시 금융위원장은 “국제적으로 연결된 우리 자본시장 환경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인 공매도를 완전 금지 또는 무기한 금지하기는 어렵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금융당국의 공매도 제도 운영 방향은 외국인·기관 투자자에게 규제를 걸기보다, 개인투자자의 접근성을 확대하는 쪽이었습니다.

5월3일 공매도 거래를 부분 재개하면서 개인들이 주식을 빌리는 창구를 정비했습니다. 이후 개인의 대주 상환기한이 60일로, 사실상 무제한 공매도 포지션을 유지할 수 있는 외국인·기관에 비해 불리하다는 불만이 제기됐습니다. 이에 금융당국은 다음달부터 개인의 대주 상환기간을 90일로 늘리고 만기 연장도 가능하도록 해 사실상 개인도 무제한적으로 공매도 포지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내놨습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공매도에 대한 개인투자자의 반발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편입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공매도를 폐지하면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이 더 요원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은 한국 증권업계의 오랜 숙원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벤치마크 지수를 운영하는 MSCI로부터 선진국이라고 인정받으면 한국 증시에 안정적인 외국인투자자의 자금이 더 유입될 것이란 기대 때문입니다. 이미 FTSE는 한국 증시를 선진국지수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공매도 제도에 대해서는 한 뜻인 금융당국과 증권업계가 MSCI 선진국지수 편입 문제에서는 있어서는 태도가 다른 점도 재미있습니다.

MSCI 측은 한국에 대해 ‘역외 원화 거래 시장’을 열지 않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우리가 잠 잘 시간에 거래가 이뤄지는 미국·유럽의 외환시장에서 원화가 계속 거래될 수 있도록 하라는 겁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구(IMF)로부터 굴욕적인 구제금융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1997년 외환위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우리 정부는 역외 외환 시장 개방에 부정적입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증권업계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경제 체력은 선진국인 한국이 MSCI 신흥국지수에 편입돼 있기 때문에, 세계 경제에 돌발 악재가 생기면 외국인들이 신흥국 중 유동성이 풍부한 한국 증시에서부터 돈을 빼간다는 말도 나옵니다.

한국 증시가 상승세에 있던 올해 상반기까지 증권가에서 가장 많이 활용한 말 중 하나가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입니다. 자신만 뒤처지는 데 대한 두려움을 뜻하는 말입니다.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벼락거지’가 된 이들에게 주식투자를 대안으로 제시했던 거죠.

공매도 관련 취재를 할 때마다 증권업계 관계자들로부터 듣는 이야기가 “주식 투자로 손실을 본 개인투자자들이 화가 난 것 같다”는 겁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력의 차이를 무시하고 결과적 평등을 만들어 내야 하냐는 전문가도 있었습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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