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임신은 왜 이렇게 고단한가
십개월의 미래
<십개월의 미래>는 보는 사람에 따라 그 감상이 달라지는 영화다. 어떤 이는 “올해 가장 많이 웃은 영화”라고 말하고, 또 어떤 이는 “올해 최고의 공포영화”라고 평한다. 그렇다면 영화의 장르는? 블랙코미디다. 영화는 저출산으로 나라가 망할 거라고 법석을 떨지만 정작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을 지원하고 지지할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은 한국 사회의 현실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영화에 대한 반응이 다양한 건 이 나라에서 여성의 임신과 출산이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경험된다는 증거일 것이다.
주인공 미래(최성은)는 규모도 작고 체계도 없는 스타트업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오랫동안 몰두했던 일이 드디어 성과로 이어지려는 순간, 미래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낳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 내 마음 나도 몰라 혼란스러운데 남자 친구 윤호(서영주)는 확신에 차서 “당연히 낳아야지!”라고 외친다. 미래의 마음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시간은 착착착착 흘러만 간다. 결국 부모님들 귀에까지 소식이 들어가면서, 임신중지냐 유지냐의 선택은 이제 미래만의 일이 아닌 ‘모두의 일’이 된다.
미래의 미래에 경보음이 울린다
영화의 시작, 미래는 옥상에 누워 푸른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고 있다. “우리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믿는 미래는 지금 당장의 안정에 기대기보다는 미래 가능성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무슨 일이든 조직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아버지에게 미래는 그저 ‘뜬구름’ 잡는 골칫덩어리일 뿐이지만, 그에게는 ‘포부’라는 것이 있다. 이내 미래의 망중한을 깨며 ‘폭염’을 알리는 재난 문자가 들어온다. 무더운 여름에 또 하나의 재난이 닥쳐와 미래의 발목을 끌어당기리라 암시라도 하듯, 재난 문자의 경보음은 불안하게 공기를 흔든다. 아니나 다를까. 이후에 갑자기 시작된 임신 과정은 너무나도 고된 일이다.
임신이 재난이 되는 건 임신 그 자체의 속성 때문만은 아니다. 문명사회에서는 지진이나 폭우 같은 천재(天災)가 곧 안전 불감증이 초래한 인재(人災)로 이어지듯이, 이미 몸과 마음에 상당한 변화를 겪어야만 하는 임신은 여전히 부계혈통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남성중심 사회가 펼쳐놓은 난감한 조건들 속에서 점점 인재가 되어간다. 특히 영화는 낙태가 여전히 범죄이던 가까운 과거를 배경으로 하는데, 이런 시대에는 여성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들이 계속 무시된다. 임신중절이 ‘떳떳한’ 선택지가 아닌 상황에서 의사들은 “임신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라”는 무의미한 조언을 하거나, 임신중절 시술에 지나치게 비싼 비용을 요구한다.
느닷없는 임신에 ‘낳느냐 마느냐’
강요된 모성, 부계 중심 결혼제 등
임신을 ‘재난’으로 만드는 것들
이와 함께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짐이자 민폐로 보는 사회의 태도가 미래를 옥죈다. 미래는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좀 더 도전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 그간의 고생이 바탕이 되어 회사는 중국에서 투자를 받게 된다. 문제는 회사가 통째로 상하이로 옮겨야 하고, 그렇게 일을 시작하는 시기가 미래의 출산 예정일과 딱 맞물려 있다는 것. 미래는 고민에 빠진다. 남자친구는 가긴 어딜 가느냐며 펄쩍펄쩍 뛴다. 미래가 실직을 하면 딱히 생계를 유지할 뾰족한 수단도 없으면서 “너는 엄마잖아!”라고 말하며 미래에게 모성을 요구하고, 응당 희생할 것이라 기대한다.
직장 상사는 짧은 출산휴가만 쓰면 된다는 미래에게 “이 프로젝트에서 빠지라”고 말한다. 설상가상으로 “너는 왜 (임신을 해가지고 나로 하여금 너를 해고할 수밖에 없게 만듦으로써) 나를 나쁜 놈으로 만드냐”고 윽박을 지르기까지 한다. 미래가 해온 일의 과실을 가로채는 데는 민첩하면서도, 그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동료로 존중하는 것에는 둔감한 상사의 모습이란,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존재하며, 분노스럽지만 내일도 설치고 돌아다닐 얼굴이다. 이렇게 여성에게 일 아니면 육아,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사회가 미래의 임신을 재난으로 만든다. 물론, 미래가 임신과 함께 어쩔 수 없이 걸어 들어가야 하는 결혼제도의 끔찍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공사를 넘나들며 사람들에게 두루 시달리는 와중에 미래의 상황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카오스, 하지만 널 기다리고 있어”
여성의 임신이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십개월의 미래>가 특별한 건 그것을 ‘소재’가 아닌 ‘주제’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배가 쑤욱 나온 임신부의 신체는 종종 스크린에 등장하지만, 임신이라는 과정의 성격은 그저 ‘입덧’ 하나로 그려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마치 입덧이야말로 임신의 가장 힘든 부분이라는 듯이.) 그렇게 임신은 대체로 그다음 사건을 초래하는 하나의 계기일 뿐, 임신 그 자체는 오랫동안 카메라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그런 작품들에서 여자는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바로 ‘어머니’로 완성된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영화는 ‘십개월’의 시간에 주목하고, 영화 속에서도 끊임없이 미래가 지금 몇주차를 지나고 있는지 알려주면서 임신이란 단절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여성의 인생, 그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지속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여자 역시 ‘그렇게 어머니가 되어가는 과정’을 겪는다고 말한다. 마치 남자들이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가’듯이. “이런 세상에 사람 하나 더 만드는 게 범죄”라고 생각했던 미래. 그래서 자신의 아이에게 ‘카오스’라는 태명을 붙여주었던 미래는 그 시간 속에서 비로소 “하지만 카오스, 널 기다리고 있어, 곧 만나자”라고 인사를 건네게 된다.
영화는 자연의 영역, 본능의 영역, 그렇게 언어 외부의 영역으로 추방되어, 미래의 표현대로 하자면 “이름이 없는 곳”이 되어버린 임신과 출산에 이름을 붙이려는 노력이다. 그 이름은 국가처럼 보아서도(“저출산이 심각하다”), 종교처럼 보아서도(“축복입니다”), 남자처럼 보아서도(“내 아를 낳아도”) 제대로 찾을 수 없다. 그 이름은 영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사람들의 구체적인 경험 안에서 형성될 것이며, 그것도 하나의 이름이 아닌 여러 이름의 조합 속에서 비로소 ‘이름들’로서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평론가,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저자
개봉 영화 비평을 격주로 씁니다. 영화는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고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시작됩니다. 관객들의 마음에서, 대화에서, 그리고 글을 통해서. 영화담은 그 시간들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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