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베또롱 엄부랑숲 지나 시오름 오르니 백록담이 코앞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최현태 2021. 10. 23. 15: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멍 오멍 쉬멍..숲에서 길을 묻다
편백·삼나무 피톤치드 샤워하며 시오름 올라
상효원엔 여심 자극하는 핑크뮬리·산파첸스 활짝
고살리숲길·이승이오름·진수내서 언택트 힐링
서귀포 치유의 숲 엄부랑숲길
이렇게 맑은데 비라니. 울창한 숲 힘들게 비집고 들어선 햇살 따라 갑자기 비 오신다. 이파리를 가만히 두드리며 떨어지는 빗소리에 새들도 잠시 지저귐을 멈췄다. 고요한 숲속 오솔길에 울려 퍼지는 것은 내 발자국 소리뿐. 잠시 지나가는 여우비일 테니 그냥 맞고 걸으며 지친 마음 씻어볼까. 거대한 삼나무 사이로 정령 가득 깃든 신비스러운 서귀포 치유의 숲, 엄부랑숲길에 섰다.
노고록 무장애숲길
가멍오멍숲길
◆가멍오멍쉬멍 가베또롱 엄부랑숲 걸어볼까
제주의 많은 숲들 가봤지만 서귀포 치유의 숲이 으뜸이다. 초록 이끼를 품은 아름드리나무들이 빽빽한 숲을 이뤄 이름 그대로 그냥 걷는 것만으로 몸과 마음이 힐링된다. 워낙 거대한 숲이라 정상 시오름까지 다녀오려면 넉넉하게 3~4시간은 잡아야 한다. 서귀포시 산림휴양관리소 홈페이지 탐방예약으로 여행이 시작된다. 하루 입장객을 600명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예약은 필수. 입장료 1000원, 주차비 2000원인데 경차나 친환경차는 반값으로 깎아준다. 제주도민은 입장료가 무료라 거의 매일 오는 이들도 많단다.
치유의 숲 안내도
숲길은 모두 15㎞에 달하고 11개 코스로 이러저리 연결된다. 고민할 필요 없다. 메인로드인 가멍오멍숲길을 따라 엄부랑숲 방면으로 완만한 산책길을 계속 오르면 된다. 자세한 안내를 받고 싶다면 방문자센터 앞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만나는 해설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원하는 목적지를 얘기하면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시오름까지 간다고 하자 해설사는 오늘은 해가 뜨거우니 가멍오멍숲길보다 그늘진 숲으로만 다니는 샛길 오멍숲길을 따라가다 가베또롱길을 거쳐 엄부랑숲길로 가는 것이 좋겠단다.
가멍오멍숲길
가베또롱숲길
제주어로 지은 길 이름들이 아주 재미있다. 왼쪽 샛길은 오멍숲길, 오른쪽 샛길은 가멍숲길로 가멍은 ‘가는’, 오멍은 ‘오는’이란 뜻이다. 가베또롱은 ‘가볍게’, 엄부랑은 ‘엄청나게’란다. 매표소를 출발하자 제주 화산송이가 깔린 가멍오멍숲길이 등장하는데 힐링센터까지 큰 길로 이어진다. 날씨도 쾌청하니 ‘가베또롱’길을 나선다.
오멍숲길에는 이끼를 두른 조록나무들로 가득하다. 제주 초가 기둥에 쓰일 정도로 아주 단단한 나무로, 지름 1m를 넘게 훌쩍 자란다. 예상보다 경사가 좀 있어 20여분 걷자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힌다. 그때 등장하는 쉼팡. 쉼터의 제주어로 통나무 의자와 편백 의자가 드문드문 놓여 쉬어갈 수 있다. ‘제주의 샘’이라 불리며 빗물이 흘러들어 만들어진 용암굴인 숨골(풍혈)에서 나오는 서늘한 공기가 땀을 금세 식혀준다. 잠시 누워 숲속의 소리에 기울인 뒤 다시 힘을 내 걷는다.
오멍길 쉼팡
엄부랑숲길
30분 정도 오르면 가베또롱길이 좌우로 연결된다. 왼쪽으로 가면 치유의 숲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을 놓치니 오른쪽 가멍오멍숲길 대로로 다시 나가야 한다. 왼쪽 모퉁이를 돌자 “와” 하는 감탄이 쏟아진다. 엄청나게 크고 아름다운 엄부랑숲길의 시작이다. 어른 두 사람 정도는 될 것 같은 거대한 몸통의 나무들이 길 양쪽을 따라 언덕 위까지 수놓고 있다. 17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인 아름다운 생명상을 받았을 정도로 빼어난 풍경이다. 제주는 섬 전체가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지만 서귀포 치유의 숲이 특히 손꼽히는 이유를 알겠다.
엄부랑숲길돌담
엄부랑숲길
◆시오름 오르니 한라산 백록담이 코앞에
서귀포 치유의 숲은 해발고도 320~760m로 난대림과 온대림의 다양한 나무와 식물을 한 곳에 모두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특히 수령 60여년의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뤄 몸과 마음이 힐링되는 피톤치드를 잔뜩 뿜어낸다. 엄부랑숲길을 걷다 보면 오른쪽 숲속에 둥그렇고 넓게 펼쳐진 돌담도 만나는데, 100여년 전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으로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다른 숲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모양의 거대한 삼나무들이 널려 있어 신비로운 인생샷을 건지기 좋은 곳이다.
놀멍치유숲길 시오름 가는 길
시오름 백록담 전망
대로를 따라 엄부랑숲길을 관통한 뒤 힐링센터를 지나면 놀멍길을 만나며, 오른쪽으로 치유의 숲 정상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등산로가 시작된다. 입구에서 만난 마을 주민이 꼭 가보라고 추천한 시오름 가는 길이다. 빽빽한 삼나무와 편백나무 틈을 비집고 헉헉대며 30여분가량 오르자 시오름 정상이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풍경에 말문이 막힌다. 한라산 정상 백록담이 손에 닿을 듯 바로 눈앞에 펼쳐져 치유의 숲 여행의 절정을 장식한다. 시오름 가는 길은 좀 힘들어 인적이 드물 정도인데, 고생을 충분히 보상하고 남을 풍경이니 시오름을 빼먹지 않는 것이 치유의 숲 여행의 포인트.
쉬멍치유숲길
가멍숲길 쉼팡
‘시원한’ 산도록길과 쉬멍길, ‘산뜻한’ 벤조롱길을 거쳐 ‘있는 그대로’ 오고생이길을 따라 내려가니 다시 엄부랑숲길 집터를 만난다. 가멍오멍숲길을 따라 내려가다 신발 벗고 쉼팡 편백나무에 눕는다. 고단했는지 새소리 듣다 깜빡 잠에 빠진다. 진정한 치유의 숲이다.
서귀포 치유의 숲을 좀 더 알차게 즐기려면 두 가지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된다. 산림치유 프로그램은 산림치유지도사와 함께 약 3시간 동안 숲을 거닐며 나무 체조로 몸을 이완하고 명상으로 몸과 마음을 다스리며 차와 족욕을 즐길 수 있다. 마을힐링해설사가 동행하는 숲길힐링프로그램은 현지인의 생생한 해설을 들으며 숲길을 돌아보는데 5개 코스로 1시간30분~3시간가량 걸린다. 
상효원 핑크뮬리
상효원 산파첸스
◆상효원에 여심 자극하는 핑크뮬리·산파첸스 활짝
치유의 숲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상효원에는 가을꽃들이 활짝 피어 여심을 자극한다. 곶자왈 가는 길 왼쪽 계절정원은 수줍은 소녀의 뺨을 닮은 분홍색으로 가득 칠해졌다. 이맘때면 화사하게 피는 핑크뮬리다. 안으로 걸어들어가 셀피를 찍는 연인들 얼굴도 온통 핑크빛으로 물든다.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한 곶자왈을 지나 꽃의 정원으로 길을 잡으면 커다란 하트 포토존이 있는 연못 너머로 분홍꽃과 빨강꽃이 활짝 피었다.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 같은 서양봉선화 산파첸스 꽃밭이다. 실제 ‘만지지 마!’라는 독특한 꽃말을 지녔다. 봉선화 손톱에 물들이며 첫눈 올 때까지 지워지지 않길 간절히 바라던 추억들. 많은 이들에게 내 인생 첫 번째 매니큐어였을 것 같다. 봄에 튤립으로 시작하는 상효원은 여름에는 수국이 가득하고, 가을에는 메리골드, 겨울에는 동백꽃이 피는 사계절 아름다운 곳이다.
고살리숲길
고살리숲길
고살리숲길
남원읍 하례리 고살리숲길은 거의 알려지지 않아 때 묻지 않은 제주의 청정자연을 더욱 잘 느낄 수 있는 언택트 힐링 여행지다. 전체 구간은 2.1㎞이지만 속괴까지만 다녀오는 길은 왕복 30∼40분이면 충분하다. 입구부터 낙엽이 수북해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긴다. 이끼로 덮인 바위와 멋대로 휘어지며 자란 나무들이 제주만의 독특한 풍경을 완성한다. 특히 길 중간의 돌로 덮인 계곡은 마치 외계행성에 불시착한 느낌을 줘 진귀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해 갈고리처럼 사방으로 뻗으며 땅에 뿌리를 박은 나무들에서 고귀한 생명력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가뭄에도 늘 물이 고여 있다는 속괴의 바위에 앉자 건너편 절벽 위 운치 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산수화를 그린다.
이승이오름
이승이오름
이승이오름 해그문이소
신례천 생태탐방로를 따라가는 이승이(이승악)오름도 청청 제주의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입구에서 오른쪽길은 오름가는 길이고, 왼쪽은 해그문이소로 이어진다. ‘해그문이’는 나무가 울창하고 하천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 밝은 대낮에도 해를 볼수 없다는 뜻. 깎아지른 절벽 밑으로 검푸른 색을 띤 폭 20여m 크기의 깊은 소가 매우 신비롭다.
진수내
진수내 삼나무숲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진수내는 제주사람들도 거의 모르는 천혜의 비경이다. 바로 옆 유명한 커피전문점 블루보틀은 청춘들로 가득하지만 코앞에 절경이 있는지 몰라 아무도 찾지 않는다. 지도 앱에서 검색해도 안 나오는데 블루보틀 앞 천미천에 놓여 있다.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멍때리기에 최적의 여행지다. 현무암 반석에 앉아 울창한 삼나무숲과 푸른하늘이 물에 데칼코마니로 반사되는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천미천을 건너 삼나무숲길도 조용히 사색하기 좋다.

제주=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