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M] 1.8cm 밧줄에 목숨 건 '삼촌'들..15층 지붕 직접 올라갔더니

정상빈 2021. 10. 23.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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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 그리고 인천 연수구의 아파트..밧줄타던 20대 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

지난달 밧줄에 매달려 외벽 청소를 하던 20대 노동자들이 잇따라 떨어져 숨졌습니다.

사고 직후 쏟아져나온 기사들은 "작업자들이 보조밧줄을 매지 않았다"거나, "밧줄 보호대를 대지 않았다"고 원인을 지적했습니다.

작업 현장에선 원래 안전장비를 잘 하지 않는지, 그렇다면 왜 그러는지, 혹은 그럴 수밖에 없는 건지 답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현장에 가서 직접 듣고 보고 싶어졌습니다.

10곳 넘는 업체에 전화를 돌리고서야, '유리창 청소'를 하는 데에 와보라는 사장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7시, 10층 남짓한 아파트 옥상에 섰습니다.

서울 마포구 한 아파트에 커다란 방송 카메라에, 보조 카메라, 작업자분들 헬멧에 달아줄 소평 카메라까지 바리바리 짐을 챙겨 올라갔습니다.

작업자들이 옥상에 밧줄을 고정하고, 거기에 작업용 의자를 매단 뒤 6~7번 씩 오르내리며 청소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대부분 안전수칙을 잘 지키는 듯 보였습니다.

밧줄에 쓸리지 않게 보호대를 대고, 보조밧줄은 작업용 밧줄과 따로 묶어 설치했으며, 작업용 밧줄이 끊어져도 안전하도록 그 보조 밧줄을 몸에 연결했습니다.

강제사항인 '안전보건규칙'뿐만 아니라, 권고사항인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안전지침'마저 충실히 지켰습니다.

항상 그런 걸까?

현장에서 만난 작업자는 인터뷰에서 "건물이 날카롭거나, 옥상에서 오가는 사람들이 있으면 두 줄을 맨다.", "저층에서는 한 줄만 내리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평소에는 보조밧줄을 생략하기도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번엔 기자라고 말하지 않고, 직접 일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아찔한 옥상에서 몇 시간 동안 함께 일하다 보면 더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인터넷에 '로프공 모집'이라고 검색하자 사람을 구한다는 인력 공고가 여럿 보였습니다.

공고에 적혀있는 '무경험자 가능'이라는 문구를 보고 용기를 냈습니다.

그 중 한 곳의 업체 대표가 "언제든 현장에 찾아와 일을 해보라"고 하면서, 그 뒤에 결정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며칠 뒤 찾아간 아파트 외벽 페이트칠 현장.."석 달 배우면 밧줄 탄다"

외벽 도색작업이 한창인 15층짜리 아파트 건물의 옥상에서 일을 했습니다.

밧줄을 타는 작업자들은 서로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삼촌들이 다 타고 내려간 밧줄을 걷어 올리거나, 옮기고, 공중에 매달린 삼촌들에게 페인트 통을 전달하는 잡일을 맡았습니다.

이렇게 석 달에서 여섯달을 옆에서 일을 배우다 보면 밧줄을 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밧줄을 타는 건 별다른 교육이나 자격시험이 필요한 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밧줄을 내리는지, 어떻게 고정하고, 안전하게 내려오는지, 어깨너머로 배우다가 그냥 적당할 때 타기 시작하는 겁니다.

일에 익숙해지고 경력을 인정받으면 하루에 40만 원까지도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비수기라 일을 하지 않는 겨울을 빼고 열 달 동안만 바짝 일하면 일 억 원 넘게 벌 수 있다고 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벌이가 나쁘지 않아 '해볼만한 일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얼마 안 가 순진한 생각이었다는 걸 알게됐습니다.

아파트 옥상 지붕으로 쪽문을 통해 올라가자 현기증이 났습니다.

가파르게 경사진 옥상 지붕엔 밧줄이 어지럽게 놓여 있어 발을 떼기도 어려웠고, 가장자리엔 추락을 막아줄 난간도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줄을 직접 타려고 간 건 아니었지만, '발 한번 굴러떨어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 뒤로부턴 덜컥 겁이 나면서 빨리 일을 마치고만 싶었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작업자분들도 "적응하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밧줄에 보호대도 하지 않은 삼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밧줄의 지름은 1.8cm. 튼튼한 밧줄이라 약 3톤까지 견딜 수 있는데, 문제는 건물의 날카로운 부분에 게속 쓸리면 끊어질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안전지침'에서는 밧줄이 쓸려 끊어지지 않도록 가죽이나 고무 보호대를 덧대서, 끊어지지 않게 보호하라고 권장하고 있지만, 현장에선 잘 지켜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귀찮다', '(보호대를) 챙겨오지 않았다', '그냥 종이박스 같은 거 대면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보호대를 썩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진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아파트 옆 동에서 실리콘을 바르고 있던 작업자도 만나봤습니다.

안전모 대신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던 이 삼촌은, 아예 외줄을 타고 있었습니다.

밧줄 하나에 대롱대롱 매달려 좌우로 2~3미터 씩 오가면서 작업하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위험하진 않을까.

"보조밧줄을 달면 작업용 밧줄과 쉽게 엉키기 때문에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밧줄에 보호대를 대놔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만 했습니다.

'보조 밧줄 먼저 연결' 지침 안지키고, '달비계' 의자 앉은 뒤야 연결

기사에서는 밧줄 보호대와 보조밧줄의 없거나, 그리고 두 밧줄을 한 데 묶은 사례들만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안전지침'을 위반한 내용은 더 많았습니다.

작업자 대부분이 작업용 밧줄에 '달비계'라 불리는 의자를 매달고, 그 위에 앉은 뒤에야 보조 밧줄을 연결했습니다.

먼저 보조밧줄에 몸을 연결한 뒤 다른 작업들을 진행해야 하지만, 순서가 거꾸로 된 겁니다.

밧줄들을 굴뚝 같은 콘크리트 구조물에 연결할 때도 보호대를 대야 하지만 없었고, 밧줄을 고정한 곳 근처에 작업을 안내하는 표지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밧줄을 타기 전 단단히 묶였는지 다시 확인하는 작업자도 드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안 지키는 걸까?."지침 지키면 일이 늦어진다"

사실 '안전지침'은 강제사항이 아닙니다.

'보조밧줄 설치' 외에 다른 항목들은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안전지침'에 쓰여있는데, 강제사항이 아니어서 작업자들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지키지 않더라도 방법이 없는 겁니다.

삼촌들은 '자신들은 보면 위험한지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는 밧줄이 먹지(쓸리지) 않아서 괜찮다", "이 정도 높이에선 오래 작업을 하지 않아서 떨어질 일이 없다"며 경험과 감에 의지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면서 '시간과 돈'을 얘기했습니다.

약속한 기한 내에 작업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지침을 지키다 보면 일이 다른 사람들보다 늦어진 다는 겁니다.

한 작업자는 "안전줄을 하면 차이가 많이 난다, 한 번에 20~30분은 더 소요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수많은 밧줄 작업자 중에서 사고를 당해 숨진 사람은 3년 동안 34명.

모두 보조밧줄을 설치하지 않았거나, 설치했어도 자신의 몸에 연결하지 않았습니다.

고용노동부는 다음 달부터 밧줄보호대를 설치하고 보조밧줄을 몸에 연결했는지 관리 감독자가 반드시 확인하도록 '안전보건규칙'을 개정했습니다.

이제라도 제대로 지침이 지켜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연관기사][바로간다] 줄 하나에 목숨 건 사람들‥'외줄타기' 현장 체험해보니

(정상빈jsb@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309412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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