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 그린과 청년활동가의 만남 "기후 지키는 데 나이가 중요한가요?"

최우리 2021. 10. 23.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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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기획][한겨레S] 기획
기후지킴이 윤정숙·오지혁 대표 공동 인터뷰
‘60+기후행동’ 준비모임을 기획한 윤정숙 녹색연합 상임대표(오른쪽)와 청년기후긴급행동을 이끄는 오지혁 공동대표.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60대 활동가는 약속 시간보다 미리 도착해 사전에 보낸 질문에 적힌 답안지를 보며 인터뷰를 준비 중이었다. 힐끗 보니 종이에 적힌 몇몇 문장에는 줄이 쳐져 있었다. 20대 활동가는 약속 시간보다 15분 늦게 도착했다. 미리 기자에게 연락은 했다. 그는 인터뷰나 기자회견장에서 발언을 할 때 스마트폰에 메모만 한다고 했다.  공통 분모가 없을 것 같은 이들은 최근에야 서로를 알아봤다.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는 정부의 속도가 너무 느리기 때문에 더이상 침묵할 수 없고 누구라도 시급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윤정숙(63)녹색연합 상임대표와 오지혁(21) 청년기후긴급행동 공동대표는 한국 시민사회에서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이미 ‘네임드’(유명한) 활동가들이다. 윤 대표는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와 녹색연합 공동대표까지 35년 동안 한국 시민사회 운동을 이끌었다. 지난달 23일 출범한 ‘60+ 기후행동’ 준비모임을 기획한 이들 중 한 명이다. 여성·환경운동을 오래 했지만, 기후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최근이다. 

오 대표는 최근 한국 기후 운동 영역에서 주목받는 청년 활동가다. 지난 4월 기후위기의 ㄱ자도 언급하지 않는 기존 정치인들의 재보궐선거를 조롱하며 서울시장 ‘0번’ 후보로 등장한 ‘김공룡(청년기후긴급행동의 마스코트인 공룡 캐릭터)’의 대변인이자 친구다. 발랄하게 보이지만 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참여하는 두산중공업 반대 시위, 가덕도신공항법 국회 통과 반대 시위 등 묵직한 시위를 동료들과 기획했다.  

두 사람은 지난달 23일 ‘60+기후행동 준비모임’ 출범 기자회견장에서 오 대표가 지지발언을 하면서 남다른 인연이 됐다. 내년 초 정식 출범 예정인 60+기후행동은, 수동적인 노년을 거부하고 노년도 청소년·청년 기후운동가들처럼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 일어서자는 취지로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해 온 60대 이상 시니어 600여명과 성베네딕도회 올리베따노 수녀회 수녀 106명이 참여한다. 

 <한겨레>는 지난 5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윤 대표와 오 대표를 만났다. “(오 대표를 보며) 손주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한다”고 말하는 윤 대표와 “오래 운동해 온 세대에 대해 존경하지만 한계도 느껴진다”는 오 대표는 서로의 차이를 분명히 느끼지만, 서로의 존재를 든든해하고 있었다. 

기후에 희망 갖게 한 만남에 ‘심쿵’

―60+와 청년세대의 기후운동을 이끌고 있다. 서로의 세대를 처음 마주했을 때 첫 느낌 어땠나?

“2019년 9월24일 세계기후행동의 날 거리에서 처음 봤다. 심쿵했다. 그때 (청년들을 보고) 기성세대의 콘크리트 같은 가치관을 깨는 모습을 보며 ‘위기 속의 희망이 저것’이란 생각을 했다. 골판지에 문구 쓰고.(웃음) 절박한데 우리처럼 어둡게 표현하지 않고 자유롭고 밝은 느낌이었다.”(윤정숙)

“2019년 시민사회단체 300여곳이 참여하는 기후위기비상행동 연대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됐다. 그때 모습들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함께 활동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영광이었다. 배우기도 하지만 부딪히기도 하면서 한계점도 많이 보았다.”(오지혁)

―오 대표에게 60+ 출범 지지 발언을 왜 부탁했나. 오 대표는 어떻게 제안을 수락하게 됐나?

“젊은이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주길 원했다. 우리가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생각을 나누고 싶었다. 우리의 시작에 청년세대의 연대 발언이 필수였다. 관심과 지지 속에서 이 운동을 시작하고 싶었다. (오 대표가) 나와줄까 궁금했다. (오 대표를 보며) 우리 연락을 기다렸나?”(윤정숙)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다.(웃음) 그동안 같이 새로운 움직임을 만드는 게 적었다. 이날 발언에서는 기성세대에게 책임을 묻는 질타를 하기보다 오히려 기후운동에 함께한다는 의지를 보여줘서 다행이고, 같이 해보자는 메시지를 내고 싶었다. 해외에서도 나이 드신 분들이 연행되는 모습 등을 보며 우리 세대와는 다른 감동이 있다고 생각했다. 서로 표현할 수 있는 메시지가 다르지 않나. 함께 나서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러 갔다.”(오지혁)

지난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이벤트성 ‘기호 0번’ 후보로 나선 청년기후긴급행동의 ‘김공룡’ 후보.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기존 환경운동과 구분되는 최근 2~3년의 기후운동은 스웨덴의 10대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등 미래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과거를 반성하며 청소년과 청년을 뒤따른다는 60+의 출현은 전세계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이미 ‘그레이그린’(친환경실천·운동을 하는 노인)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독일 ‘미래를 위한 할머니’(Omas for Future)는 나무를 심고 팟캐스트를 통해 기후위기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한다. 최근 영국에서도 체포를 불사하고 추운 거리로 나온 노인들이 소개되기도 한다. 윤 대표는 “지난해 2월 초 중장년 세대들도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생각으로 10여명이 모임을 했다. 코로나19로 잠시 논의가 중단되었다가 올해 9월 줌 회의를 통해 준비모임 출범까지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60+ 출범 선언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반성’이었다. 이문재 시인이 초안을 작성했다는 선언문에는 절절한 반성이 담겼다.

“인류 문명이 벼랑 끝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데 그 누구도 멈추려 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 노년들이 전환의 대열에 동참하고자 한다. 우리가 저질러온 과오를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고자 한다.”

기후위기, ‘본방’이 시작됐다

―출범 선언문이 인상적이다.

“성장 신화와 국내총생산(GDP)으로 측정되는 우리 세대의 삶에 대한 자기 성찰, 책무감을 담아야 했다. 시작은 소수의, 가슴 뜨거운 운동가들이 했지만 개시 6일 만에 일반시민 600명 넘게 서명을 했다. 학원장, 전·현직 기업인, 현직 약사, 농민, 주부, 종교인 등 다수가 서명을 하면서 글을 남겼다. ‘기다리고 있었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잘 살지는 못한 것 같다’, ‘이제라도 젊은이들의 뜻대로 살겠다’, ‘용서를 구한다’, ‘내년에 60살이지만 그래도 서명할래요’ 등 소감과 각오를 보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윤정숙)

―열심히 산 시민들이 이렇게까지 반성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당연히 해야 한다. 우리는 (체제에) 저항했으니까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없다. 물질적 풍요를, 개발과 성장을 최고의 사회·개인적 가치로, 밤낮없이 성실하게 일하는 것의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다. 더 성찰하고 반성하면서 사회도 개인의 삶도 전환해야만 한다.”(윤정숙)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다고 보는가?

“양당 정치 체제를 바꾸거나 정책에 녹색의 가치 한 줄을 넣지 못했다. 자괴감이 많이 들었다. 정치인들 공약에 기후위기 ‘ㄱ자’도 없다는 기사들을 보면서 ‘무엇을 위해 이렇게 (운동)했던 걸까’ 생각이 들었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후대 사가들은 2020년은 기후위기 서막이 끝난 해로 볼 것’이라고 했다. 기후위기는 예고편이 아니라 이미 본방이 시작된 것이다. ‘4만달러 시대, 한반도 대운하’를 이야기하며 신자유주의 성장을 이야기한 게 10년 전이다. 그러나 우리의 반대 목소리는 작았고 위협적이지 않았다. 정치와 행정의 속살을 알수록 절망스럽다는 생각을 한다.”(윤정숙)

윤 “60+들이 후배, 서로 거울 돼야”
오 “나서줘 고맙단 말 하고 싶었다”

―한국 기후변화 대응의 아쉬운 점을 꼽아달라.

“탄소중립 선언은 했는데, 탄소중립을 얼마나 과감하게,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해야 하는지 감각이 전혀 없다는 느낌이다. 선언을 뒷받침할 장치가 없다. 위기감도 부족하고 예산도, 실행 의지도 부족하다. 식량·에너지 가격 변동이 무섭게 느껴지는데, 우리는 비켜갈 것이란 무지와 오만함인가. 시민들은 기후변화 문제를 심각하게 느끼는데도 정부가 움직이지 않는다.”(윤정숙)

“온실가스 다배출기업에 책임을 묻고 배출행위를 규제하는 대신에 의사결정 주체로 기업이 들어가 있다. 사회 대전환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는 논의가 이어지지 못하고, 기업의 신성장사업 확장에만 이용된다. 개인의 실천을 이야기하면서 시민 책임을 전가하고 캠페인만 한다. 그럴 때마다 ‘정부는 준비한 게 없구나,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모르는구나, 과거의 방식에 갇혀서 생각하는구나’ 하고 느낀다.”(오지혁)

“같이 담을 넘자”

―그래도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을 했다. 좋은 평가를 할 수는 없나?

“지난해 9월 국회가 기후위기 대응 결의안을 선언했을 때부터 의심했다. 미국 상원에서는 그린뉴딜 결의안이 통과가 안 됐다. 현재 한국 더불어민주당보다 적극적이었던 미국 민주당에서도 지지를 못 받고 공화당은 강하게 반대했는데 한국의 보수정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를 찬성한다는 게 너무 이상했다. ‘구속력 없는 결의안이니 역시 쉽게 하는구나’ 생각했다. 대통령이 탄소중립 선언한 것은 필요했다고 본다. 2050년이라는 지향을 분명히 하고 관료 사회가 그 방향으로 움직이게 됐다. 그러나 올해 초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통과가 여당 주도로 진행됐다. 4월 미국 기후정상회의에서는 각 국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상향하는데, 한국은 (세계적 흐름에 뒷북 치듯) 해외 석탄화력발전 투자 지금부터 안 한다는 발표만 하는 걸 보면서 각론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오지혁)

“가덕도 공항과 석탄에 대한 불분명한 태도가 문제다.”(윤정숙)

―이미 청소년, 청년들이 기후운동을 ‘하드캐리’하고 있다. 60+는 어떤 운동을 할 건가?

“노년 하면, 연금을 받으며 조용히 존재감 없이 사는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우리 세대만의 방식을 찾아 스스로 행동하는 노년이 되자고 한다. 우리끼리는 ‘방탄노인단’을 만들자고도 했고 ‘대한노인회’랑 꼭 같이 활동하자는 말도 했다.(웃음) 외침이나 피켓 들기보다는 침묵으로 운동하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 구상나무가 고사하는 산림, 강릉의 석탄화력발전 공사장 등 기후위기 현장을 가보는 거다. 웅성거리면서 어슬렁거리면서. 산림을 벌목해서 아파트를 짓는 현장을 볼 수도 있다. ‘해양노년단’, ‘탈석탄 60+’ 등 우리만의 웅성거림을 만들고자 아이디어를 나누고 있다.”(윤정숙)

“(그런 행동은) 동물권 운동에서 많이 하고 있는 방식이다. 도살장 현장에 가서 학살의 진실을 두 눈으로 보고 증언하고 말없이 현장을 지키고 응시하는 것.”(오지혁)

60+기후행동 준비모임 관계자들이 9월23일 서울 중구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60+기후행동’ 출범 선언 기자회견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보통의 청년세대는 교육·노동·취업·부동산 등 당장 해결할 문제가 많아서 기후운동까지 폭넓게 지지할 여력이 없는 것 같다.

“기후변화 문제는 기본적으로 전문화되고 어려운 용어로 점철돼 있다. 간명하고 쉬운 용어로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가급적 온실가스, 탄소중립을 언급하지 않고도 운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또 청년단체는 아직 조직력이 약하기 때문에 대중운동으로 확대되는 데 전략이 없다. 변명을 하자면, 그러기 위해서는 운동의 역사가 쌓여야 한다고 본다. 우리 스스로 성숙해지는 시간도 중요하다.”(오지혁)

“청년과 노년은 서로의 거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절대 청년들을 보고 “손자·손녀 같다는 생각을 하지 말자”고 다짐한다.(웃음) 기후운동에서는 60+가 후배이지만, 우리의 과거 운동 성과 중 어느 부분은 벤치마킹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서로 다른 세대가 연대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영향력이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윤정숙)

―서로 이것만은 이해 안 된다는 점이 있나?

“서로 운동을 하면서 노선이 갈라지는 건 자연스럽고 필요한 현상이고 이를 성장하는 증거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갈라지면서 서로를 미워하더라. 같이 활동하던 사람인데 나중에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돼 있다. 우리 세대는 지금부터 향후 10년, 20년을 내다보고, 노선 차이가 ‘갈등’을 넘어선 ‘배척’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정부 발표를 듣고 청와대나 국회 앞에 나가서 기자회견만 하고 논평만 내는 것은 공감이 안 된다. 우리는 차라리 <한겨레> 만평처럼 직관적으로 짤평을 하자고 하고 대규모 시위나 집회를 기획하려 한다.”(오지혁)

“이해 안 되는 점은 없다. 다만, 청년들을 만나면 눈치 보게 되는 게 있다. (우리가) 혼나면 어떻게 하나 그런 낯섦이 내재돼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세대의 간극에 빠지지 말자고 한다. 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문화와 역할이 다른 우리 세대만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방식이 또 있으니까 60+ 방식대로 지혜롭게 하려 한다.”(윤정숙)

“같이 담을 넘고 연행되는 것도 좋겠다.(웃음)”(오지혁)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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