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잔파엘,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 [인터뷰]

윤혜영 기자 2021. 10. 2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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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파엘 인터뷰 / 사진=팽현준 기자

[스포츠투데이 윤혜영 기자] 여기 '가지 않은 길'을 가려는 사람이 있다.

영국 유명 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한 수재였지만 행복하지가 않았다. 내내 길을 잃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어느 정도 핑크빛 미래가 그려졌지만 어릴 때부터 마음을 두드렸던 힙합이 계속 꿈틀거렸다. 그리고 스물 여섯, 그는 더 늦기 전에 꿈을 찾기로 결심했다. 22일, 새 앨범을 내고 가수로 데뷔한 잔파엘(Jan Fael)의 이야기다.

힙합은 잔파엘이 어릴 적부터 지니고 있던 꿈이었다. 국내와 해외를 오가는 학창시절을 보냈던 잔파엘은 여섯 살 때 캐나다에서 에미넴의 음악을 들으며 힙합에 흥미를 느꼈고, 한국의 힙합은 어떤지 알고 싶어 드렁큰타이거의 음악을 듣다 힙합에 빠지게 됐다.

본격적으로 직접 가사를 쓰며 곡 작업을 한 건 고등학생 때였다. 그는 "그때 마음이 잘 맞는 미국인 친구가 있었는데 학교 끝나면 그 친구랑 유튜브에서 비트를 찾아서 가사 써서 녹음해보고 만질 줄도 모르는 장비를 구입해서 녹음을 했다. 그러다 보니 믹스테이프가 하나 나왔다. 지금 들으면 퀄리티는 안 좋은데 그걸로 공연도 했다. 2014년 세월호 사건 터졌을 때 유가족 모금 자선 공연도 했었다"고 밝혔다.

힙합에 심취했지만 정작 잔파엘은 그와는 전혀 관련 없는 길을 가게 됐다. "음악은 내가 좋아하는 거지만 내가 가야 하는 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그는 "연예인은 하늘에서 정해주는 거라 생각했다. 나는 일반인이라는 틀에 갇혀 있었는데 대학교를 영국으로 가고 나서 회의감이 있었다. 열심히 해서 영국까지 와서 공부를 하는데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더라. '안되겠다. 군대부터 빨리 가야겠다' 해서 군대에 갔다"고 털어놨다.

잔파엘 인터뷰 / 사진=팽현준 기자


군대에 가니 인생길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고민도 커졌다. 휴대폰도 없이 열심히 자기계발을 하다 보니 문득 불안감이 엄습해온 것. '여기서 나가면 앞으로 뭘 해야 할까' 걱정이 그를 덮쳤다. 잔파엘은 "내 기억 속에 나는 어린 사람이었는데 제대하고 보니 어느덧 20대 중반이더라. 불안감이 심했다. 제대 후 오랜 기간 극심한 방황과 우울을 겪었다"고 말했다.

방황 중에 그는 음악을 떠올렸다. 잔파엘은 "살면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할 때마다 마음을 다잡아준 게 음악이고 힙합이었다"며 "제대하고 나서 알바하면서 돈을 벌다가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정말 최선을 다해서 음악을 해봐야겠다' 생각이 들더라. 군대에서도 '내일 당장 죽는다면 후회할 일이 뭘까' 생각을 해봤는데 음악을 진지하게 해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될 것 같았다. 결론이 섰고 나도 이제 제대로 내 작업물을 만들어서 한 번 발표를 해봐야겠다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길을 가고 있었던 만큼, 갑작스런 '우회'가 쉽지만은 않았을 터였다. 주변인들의 만류도 만만치 않았다. 잔파엘은 "부모님 반대도 심했다. 좋은 기회를 제공받았던 건데 그걸 마다하려고 하는 거니까. 그래도 제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여기에 진심이라는 모습을 보여드리니까 '얘가 진심이구나' 생각하시는 것 같다"고 했다.

막상 음악을 시작하게 되니 감회가 새로울 법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홀가분하진 않았다고. 그는 "음악을 하게 됐다고 '이제 괜찮아' 이게 아니었다. '성공 못하면 어떡하지? 이 길이 아니면 어떡하지? 난 여기에 모든 걸 쏟아붓고 있고, 모든 걸 쏟아붓고 싶은데 결과가 내 생각대로 안 나오면 어떡하지?' 그 불안감에 불면증이 오래 갔다. 근데 친구들 만나서 얘기 나눠보니까 다들 비슷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더라. 그 불안감을 노래로 만들면서 이겨내고 이 구덩이에서 빠져 나오려고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데뷔를 앞둔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감을 찾았다. 그는 "긴장도 되고 불안도 되지만 기분 좋은 긴장감"이라며 "뚜렷한 목표를 정해놓은 건 아닌데 길을 잃은 것 같진 않다. '이게 내가 가야 하는 길에 있어서 맞는 선택인 건가' 항상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 생각에 괴로웠던 적도 많았다. 이제는 괴롭다기 보다는 조금 더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한다. 이번 길은 가장 괴로우면서도 가장 좋은 선택인 것 같다"고 자평했다.

잔파엘 인터뷰 / 사진=팽현준 기자


잔파엘의 데뷔앨범 제목은 '디투어(Detour)'다. 그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는 모든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코로나19 시국에 지쳐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EP 제목을 '디투어'라고 지었다. '나는 지금 길을 잃은 게 아니다, 성공을 향한 목적지는 바뀐 적 없다. 단지 남들과는 다른 우회로(Detour)를 통해 전진하는 것 뿐'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앨범에는 잔파엘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고스란히 녹았다. 1번 트랙 '웨이크!(WAKE!)'는 방황 속에서 마음을 다잡아야만 하는 이유와 미래에 대한 포부를 담은 곡이다. 꿈을 꾸기만 하며 안주하는 게 아니라 목표가 생겼다면 눈을 뜨고 그것을 향해 발걸음을 움직이는 것의 중요하다는 내용이다.

2번 트랙 '스파이럴(Spiral)'은 정말 맞지 않는 두 사람이 시작하는 위험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 타이틀곡인 3번 트랙 'INSM'은 'I Need Some More'의 앞 글자를 딴 곡으로 인생에 조금 더 재밌는 요소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노래다. 잔파엘은 "무료함과 쓸쓸함에 지쳐가는 일상을 그렸다. SNS 속 주변인들의 세상은 밝고 다채로운데 나의 세상과 일상만 단조로운 것 같은 느낌이 들어본 적 있다면 쉽게 공감하며 즐길 수 있는 노래"라고 소개했다.

마지막 트랙 '너도'는 이 시대를 사는 청춘들을 위한 위로곡이다. 잔파엘은 "도전을 하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노래를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내 자신한테 하고 싶은 말을 쓰고 있더라. 그 많았던 친구들도 다 각자의 길을 떠났고 나 혼자만 지독히도 외로운 건지, 아니면 그들도 나처럼 철없이 살아도 괜찮았던 시절이 그리운지 알고 싶은 마음에 '너도'라는 제목으로 노래를 만들었다. 이 노래를 들을 이들 중 불안을 안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당신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지'라는 질문을 물어보고 싶었고, 만약 그렇다면 이 노래를 통해 '당신 혼자만 그런 게 아니다'라는 심심한 위로의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잔파엘 인터뷰 / 사진=팽현준 기자


곡 작업을 하며 중점에 둔 건 부모님이었다. 잔파엘은 "부모님 세대가 힙합에 갖고 있는 시선, 편견 같은 게 있지 않나. 되게 센 음악이고 사치와 향락적인 장르로 보셨던 게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은데 저는 제가 표현해낼 수 있는 스타일 자체가 이지리스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 포인트에 집중했던 것 같다. 엄마 아빠도 들을 수 있는 트렌디하되 공감대가 널리 형성될 수 있는 음악을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털어놨다.

실제 부모님은 그의 음악을 듣고 '듣기 편하다'는 평을 내놨다. "좋아하시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생각보다 되게 듣기 편하네' '내가 알던 거랑 다르네?'라 하셨다"고. 어느 정도 목표를 이룬 셈이다.

대중에게는 '다음이 기대되는 가수'로 남고 싶다는 그다. 잔파엘은 "'이 사람 다음 거 궁금하다'는 반응을 듣고 싶다. 수록곡이 네 개밖에 없긴 한데 다양한 스타일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아직 보여줄 게 많으니까 호기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그런 작은 바람이 있다"고 밝혔다.

"원래 노래를 처음 들으면 보통 30초 안에 결정이 나잖아요. 이 노래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첫 30초가 좋으면 끝까지 듣는 거고 아니면 다음 트랙으로 넘기는 거고. 그냥 딱 들었을 때 '얘 좋다. 얘 괜찮다. 내 플레이리스트에 넣을 만하다' 이 정도면 돼도 좋을 것 같아요."

잔파엘 인터뷰 / 사진=팽현준 기자


[스포츠투데이 윤혜영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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