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중 구미 삼일문고 대표 "동물원에서 영감 얻었죠"

2021. 10. 2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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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 공간을 가진 중형 독립서점이자 지역서점 
1년에 작가 100여명 찾아와서 강연회 개최하기도
"책 파는 곳보다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문화공간 지향"
김기중 삼일문고 대표. 삼일문고는 구미를 대표하는 문화공간 중의 하나다. 김채은 기자

독립서점은 대규모 자본이나 큰 유통망에 의지하지 않고 운영되는 서점을 이른다. 책의 정렬 기준이 인기순이나 판매순이 아닌 자체적인 큐레이션을 통해 책을 정렬하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2017년에 경북 구미시 금오시장로 6에 문을 연 삼일문고는 독립서점이자 지역서점이다. 독립서점하면 동네의 작은 서점을 떠올리지만 삼일문고는 660㎡의 공간을 가진 중형서점이다. 김기중(49) 삼일문고 대표는 지금의 삼일문고를 만들기 위해 국내외 여러 서점을 방문하기고, 서점 건축에도 신경을 기울였다.

이곳에는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책 냄새가 가득하다. 1년에 100여명의 작가들이 이곳에 와서 강연회도 연다. 카페 같기도, 미술관 같기도 하다. 고객들은 책을 사는 것뿐만 아니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온라인 시장의 확대로 오프라인 서점이 설 곳을 잃고 있지만, 삼일문고는 지역민의 관심과 애정 속에서 4년째 잘 운영되고 있다.

가전제품 대리점에서 서점으로

"지금의 삼일문고 자리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가전제품 대리점이 있었어요. 1년 매출이 150억원은 됐죠. 매출이 좋았음에도 크게 기쁘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어요."

1990년대에는 지금의 삼일문고 자리에 전자제품을 유통하는 가전제품 대리점이 있었다. 전자제품점은 영업이 잘 되어서 큰 매출을 자랑했다. 김씨의 아버지는 지역사회와 함께 상생해가는 삶을 지향했다. 지역 인재 양성과 지역발전에 기여했다. 김씨도 아버지는 지역민의 사랑을 받았기에 가능했다며 지역민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삼일장학문화재단을 설립했다. '삼일'은 고객, 직원, 지역사회 세 가지가 하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김씨도 그런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아 지역사회와 상생하며 살아가는 경영을 지향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대리점도 이어받았다, 영업은 잘 되었지만, 큰 기쁨이 없었다.

2016년에 구미의 큰 서점이 문을 닫자 김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본래도 공단이 많이 들어서 있는 구미는 문화공간이 부족한 편이었다. 그런 와중에 책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자신이 서점을 열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전제품과 다르게 책 한 권의 마진이 크지 않더라도 그 이상이 가치를 지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변에서는 서점을 한다고 했을 때 걱정했다. 대부분의 서점이 문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 서점을 열겠다는 건 가망이 없는 사업이라 생각한 것이다.

"구미는 산업의 도시로 문화가 척박한 편이에요. 서점을 통해 문화를 꽃피워보자는 계획했죠. 책만 파는 서점이 아닌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려고 했어요."

김씨는 국내외 400여곳의 서점을 다니며 서로 다른 장점을 찾으려 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서점을 물론이고, 서가가 예쁜 서점, 공간이 예쁜 서점, 서점 주인이 특별한 서점을 다녔다.

서점마다 각기 다른 장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삼일문고를 기획하는데 영감을 받은 곳은 일본 아사히카와시에 있는 아사히야마 동물원이었다. 인구가 20만도 안되는 지역에 있지만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이 동물원은 한때 폐관 수준까지 갔었다. 교통도 불편했고, 날씨도 추운 지역이라서 일부러 찾아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폐관 수순으로 가던 동물원을 사육사들이 이상적인 동물원의 모습을 생각하며 되살렸다. 동물원에서는 동물들이 행복해야 한다는 걸 염두하고, 동물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또 형식적인 동물 소개가 아닌 실제로 동물을 사육하면서 있었던 일을 관객들에게 소개해나갔다. 동물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이 경험과 정보를 시민과 적극 공유하면서 수도인 도쿄를 제치고 일본 1등 동물원으로 거듭났다.

"동물원이 겉모습이 화려해서 좋은 것이 아니듯, 서점도 화려한 외관이 아닌 책을 진열할 때 어떤 마음으로 진열했는지가 느껴져서 좋다고 서점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김씨가 인상깊게 느낀 다른 서점은 미국의 시티라이트 서점이었다. 설립된 지 66년 된 이 서점은 다른 서점이 따라 할 없는 아우라가 존재하고 있었다. 도시의 색을 대변해주고 있으며, 지역 주민들도 이 서점에 존재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아사히야마 동물원과 시티라이트 서점처럼 책과 사람이 모두 행복하고, 지역민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서점을 만들기 위해 서점 설계단계부터 세심하게 신경 썼다. 구미 지역 서점이라는 특색에 맞춰 구미 지역 작가들이 쓴 책을 모아둔 코너를 마련해 뒀으며, 책과 관련된 워크숍, 강연, 지역 모임, 북 토크 콘서트도 매달 주최하며 지역민과 끊임없는 교류를 시도했다.

"서점의 책을 파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과 사람, 작가와 독자, 서점과 지역을 잇는 다리가 되어주고 있어요."

책을 만나는 서점

삼일문고는 구미에 오면 꼭 들러야 하는 명소로 불리고 있다. 책을 서점 곳곳에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은 물론이고, 삼일문고만이 가지는 매력이 존재한다. 이책도 저책도 베스트셀러라고 칭하며 고객으로 하여금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는다.

삼일문고에는 베스트셀러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모든 책이 베스트셀러다. 대형서점처럼 잘 팔리는 책이라고 좋은 자리에 선점해 있지도, 인기가 없는 책이라고 해서 구석에 있지도 않다. 책장 곳곳에 적힌 문구들이 책에 호기심을 가지도록 만든다. 어떤 책을 읽어야할 지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추천도서 목록은 있다. 이 목록은 삼일문고 직원들이 책을 읽어보고 회의를 해서 선정한다. 전문작가들에게 책 추천을 요청하기도 한다.

"고객들이 처음에 찾던 책을 통해 또 다른 책을 찾아서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요."

이 외에도 삼일문고는 다른 서점과 차별회된 점이 많다. 삼일문고는 중고서적도 판매하고 있다. 삼일문고에서 구매한 지 1년이 넘지 않은 책을 삼일문고에 되팔 수 있도록 바이백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지역서점이 특별한 이유는 지역민들에게 크고 작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구경 삼아 들어왔다가 책 냄새와 분위기 덕분에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잔잔한 음악은 편안한 느낌을 만들어 서점에 스며들게 된다.

"삼일문고가 잘 운영되는 있는 것은 저만의 승리가 아니에요. 지역서점이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구미 시민 전체의 승리죠!"

김채은 대구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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