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잘 벌어놓고".. 대출 조이자 앓는 소리하는 제2금융
[편집자주]금융당국의 고강도 가계대출 규제에 대한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금융당국은 급증한 가계부채 문제가 우리 경제부실의 뇌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선제적인 대출 관리 강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자금 실수요자들은 갑작스러운 고강도 규제로 대출문이 좁아지며 자금융통이 어려워져 불만이 커지고 있다.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상대적으로 돈 빌리기가 쉬운 불법 사금융이라는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출이자로 상당한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는 금융사 입장에서도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가 마냥 달갑지는 않다. 금융당국이 꺼내든 대출 규제를 바라보는 시선을 살펴본다.
# “아파트 사전청약 11년 만에 입주하는데 대출 막아놓으면 실수요자는 죽어야 하나요?” ‘내 집 마련’ 기대감에 부풀어있던 40대 가장 A씨는 최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이 같은 호소문을 남겼다. 은행 대출 한도가 축소돼 입주가 불확실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달 27일부터 첫 입주가 시작되는데 이제야 대출을 받고 잔금을 치러야 하는 서민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라며 “돈 없는 서민은 입주도 하지 말고 길거리에 나앉아 죽으라는 소리로밖에 안 들린다”고 토로했다.
금융당국이 이달 중 가계부채 추가 관리방안 발표를 예고하면서 본격적인 ‘대출 빙하기’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다. 주요 시중은행의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이 금융당국 목표치(5~6%)의 턱 끝까지 차올랐고 빠르게 증가하는 가계부채가 경제의 뇌관이 되지 않도록 고삐를 바짝 죄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가계부채를 억누르기 위해선 관리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과 강도 높은 규제로 투기·투자와는 무관한 애먼 실수요자들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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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9월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02조8878억원으로 전월(8월말) 698조8000억원과 비교해 4조1000억원(0.75%) 증가했다.
금융당국은 지난 4월 ‘가계대출 관리 방안’을 발표해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을 5~6% 내외로 계획했는데 현재 대부분 은행의 대출 증가율은 목표치의 턱밑까지 차오른 상황이다.
은행별로 살펴보면 9월 말 기준 NH농협은행의 증가율은 7.29%로 가장 높았으며 하나은행(5.19%), KB국민은행(4.90%), 우리은행(4.05%), 신한은행(3.02%)이 뒤를 이었다. 올해 남은 3개월간 5대 은행이 내줄 수 있는 대출액은 총 7조5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은행들도 막판 관리에 한창이다. 지난달 우리은행은 대출 한도 관리 방식을 지점별 관리로 전환했으며 KB국민은행 역시 이달 초부터 가계대출 신규취급 한도를 전체 은행이 아닌 영업점별로 들여다보고 있다. 하나은행은 임대차 계약 갱신 시 대출 한도를 임차보증금(전셋값) 증액 범위 이내로만 인정하기로 했다. 신한은행은 이달부터 대출모집인을 통한 전세대출 한도를 5000억원으로 묶은 바 있다.
인터넷은행도 예외는 아니다. 금융당국의 대출 관리에 케이뱅크는 신용대출 한도를 연 소득 이내로 축소했고 카카오뱅크는 고신용자 대상 신용대출을 중단했다. 토스뱅크도 신규 대출을 중단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가계대출 관리 차원에서 한도를 줄이거나 일부 대출상품 판매를 중단하는 등 자체적으로 관리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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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은 다음주 가계부채 추가 관리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금융권에선 사실상 불가침 영역이던 전세대출도 관리에 포함될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 6일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실수요자도 상환능력범위 내에서 대출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고 가계대출에서 전세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관리가 요구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고강도 대출규제로 실수요자들을 중심으로 불만이 터져나오자 금융당국은 최대한 보호하겠다는 입장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14일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연말까지 (실수요자가 많은) 전세대출과 집단대출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며 "전세대출로 (가계부채 증가율 목표치인) 6%대를 넘어서더라도 용인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실수요자 보호'를 강조한 만큼 금융당국도 보조를 맞추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금융권에선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관리 실효성 강화, 제2금융권 대출 관리 등의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밖에 실수요자에게 타격을 주지 않고도 투기 수요를 걷어낼 방안으로 금리 ‘인상 카드’가 나올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 KB국민은행은 지난달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우대금리를 0.3%포인트 축소했으며 임대차계약 갱신 때 임차보증금의 증액분 범위 안에서만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한도를 제한했다. 금리 인상 유도 외에도 전세대출에 대한 자금조달계획서 징구, 고액 전세대출의 한도 축소 등의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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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관리가 강화될수록 실수요자 피해가 불가피하지만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추가 관리방안을 내세운 건 이제라도 가계부채 폭증에 따른 위험요소를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72.4%로 전년동기대비 10.1%포인트 상승했고 전체 가계부채 증가율은 지난해 3분기 6.9%, 4분기 8.0%, 올해 1분기 9.5%에서 올해 2분기 10.3%로 속도가 빨라졌다. 연체율 역시 현재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이는 ‘착시효과’라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9월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7월 말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 현황’을 살펴보면 가계대출 연체율은 0.18%로 전월(0.17%)보다 0.01%포인트 올랐다.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0.11%로 전월과 유사한 수준이었지만 주택담보대출을 제외한 신용대출 등 가계대출 연체율은 0.33%로 전월대비 0.03%포인트 증가했다.
다만 원금 상환유예를 지원하는 가계대출 프리워크아웃이 올해 연말까지 연장된 점을 고려하면 지원이 끝난 후 발생할 부실, 연체율은 아직 수면 아래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가계대출 증가율을 잡는다는 목적이지만 사실상 부동산가격 폭등의 연료 역할을 하는 대출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여 대출을 한순간에 조이는 것으로 모든 답을 찾는 게 어려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실수요자 피해, 부동산값 폭락 등의 부작용도 우려되는 만큼 서서히 연착륙하면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절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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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의 제2금융권(저축은행·카드사·보험사)에 대한 가계대출 추가 규제안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규제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대출 총량을 관리하기 위해 개인별 DSR 규제 확대 시행 시기를 앞당기거나 은행권보다 상대적으로 느슨한 제2금융권에 지금보다 강화된 대출규제를 적용하는 방안이 거론되는 분위기다.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한 제2금융권에선 돈을 빌리지 못한 이들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대출 총량은 잡힐지 몰라도 대출의 질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2금융권이 금융당국의 선제적인 대출 관리가 부실한 걸 이용해 대출 이자 챙기기에 열중했다는 지적 또한 피해가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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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금융당국은 이달 중 발표 예정인 가계대출 추가 규제안과 관련해 1·2금융권에 대해 일괄적으로 DSR 40%를 적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기존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작용했던 DSR 등 가계부채 규제를 은행권 수준으로 올리는 게 골자다. 현재 차주별 DSR 한도는 은행권이 40%, 비은행권은 60%가 적용되며 카드론은 내년 7월까지 DSR 규제가 유예된 상황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현재 가계부채 증가에 대해 전체적으로 모니터링 하고 있다”며 “카드론 자체는 우려할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총량 규제차원에서 카드론에도 DSR규제를 앞당길지에 대해 논의 중에 있다”고 말했다.
추가 규제안을 발표하기에 앞서 금융당국은 카드사, 저축은행에 대출 총량을 관리할 것을 미리 지시했다. 지난 9월말 금융당국은 카드론 증가율이 높은 현대카드와 롯데카드에 가계대출 총량 지침을 준수하라고 경고하는 한편 주요 저축은행 관계자들을 모아 놓고도 가계대출 관리도 주문하기도 했다. 이후 일부 저축은행은 입점한 대출 비교 플랫폼을 통해 유입되는 대출 신청을 아예 중단했다.
금융당국이 이처럼 제2금융권까지 대출 조이기에 나선 것은 그만큼 저축은행, 카드사, 보험사 등의 대출잔액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79개 저축은행의 대출잔액은 88조310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69조2921억원)보다 18조7389억원(27%) 증가했다.
카드사들의 대출도 증가했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1년 상반기 신용카드사 영업실적’에 따르면 8개 전업카드사의 카드대출 잔액은 총 56조1000억원으로 전년동기(53조원) 대비 3100억원(5.8%) 증가했다. 단기카드대출(현금서비스) 이용액(27조1000억원)은 5000억원(1.8%) 줄었지만 카드론 이용액(28조9000억원)은 3조5000억원(13.8%) 늘었다.
보험사들도 마찬가지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 보험사들이 보유한 대출잔액은 260조3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조4000억원(8%) 증가했다. 은행 대출규제 강화 속에 규제 강도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2금융권 전반으로 이동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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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일각에서는 2금융권 대출까지 막는 고강도 규제가 시행되면 저신용자들은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돈을 빌리지 못한 이들이 불법사금융으로 이탈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7월 법정 최고금리가 인하(24%→20%)돼 대부업 대출도 어려워지면서 취약계층의 불법 사금융 이용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 금융위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 시 기존 고금리(20% 초과) 이용자 중 약 87%(208만명)에게 이자 경감 효과(연 4830억원)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는 반면 나머지 13%(31만6000명)는 민간금융 이용이 제한될 것으로 추산했다. 이 가운데 3만9000명은 불법 사금융을 이용할 위험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융당국이 제2금융권 대출을 조일 경우 실수요자들은 어떻게든 돈을 빌려야하기 때문에 사금융으로 넘어갈 것”이라며 “수익성 악화로 문 닫는 대부업체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 저신용자는 불법 사금융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도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융사들은 대출 총량이 줄어들면 금리를 올리는 등 조치를 취할 것인데 저신용자들 위기는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저축은행과 카드사, 보험사들이 대출이자 감소를 우려해 앓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저축은행들의 대출 이자수익은 3조6093억원으로 4074억원(12.7%) 늘었으며 같은 기간 카드사들이 카드론(장기카드대출), 현금서비스(단기카드대출)로 얻은 대출 이자수익은 지난해 상반기 2조5562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2조6415억원으로 늘었다. 이 기간 보험사들의 대출 이자수익은 1조8221억원으로 3767억원(26.1%) 늘어났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융당국이 제2금융권 대출 조이기에 본격 들어가면 저축은행 등 입장에선 대출 이자수익이 줄어드는 부분을 당연히 우려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과도한 가계대출 증가 등 외형 확대 정책이 잠재 부실 요인이 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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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준 기자, 강한빛 기자 onelight9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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