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잇는 예술가의 DNA.. 숨길 수 없는 기질 [김한들의 그림 아로새기기]
영화 '신과 함께' 웹툰 작가 주호민
그의 아버지 주재환이 먼저 떠올라
자식들 모두 예술가가 된 르누아르
도자기 공장에서 일하며 화가의 꿈
눈부시게 빛나는 자연의 색채 구현
인상주의 탈피 자기만의 세계 구축
말년에 류머티즘성 관절염 큰 고생
손가락에 연필 매고 그림 그리기 투혼
많이 늦었지만 얼마 전 영화 ‘신과 함께’를 봤다. 천만 관객이 든 재밌는 영화라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다. 하지만 판타지물을 보지 않는 개인 취향 때문에 이제야 보게 되었다.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주호민의 원작 웹툰에서 비롯했을 스토리텔링이었다. 이 영화를 통해 주호민은 방송 작품에 다수 출연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쌓게 되었다. 그리고 미술 일을 하는 사람으로써 그만큼 익숙한 이름은 그의 아버지 주재환이다. 유쾌하고도 담담하게 세상을 향한 메시지를 던져온 작가다.
프랑스에서도 이렇게 예술가 기질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다. 19세기에 활동하여 명성을 남긴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의 가족이다. 르누아르에게는 세 명의 자식이 있었는데 모두 예술가가 되었다. 첫째와 둘째는 영화계의 거장으로 오스카에서 공로상과 베니스 국제영화제 최우수 국제 영화상을 받는 등 활약했다. 셋째는 도예가로 작업하며 아버지의 경험을 이어받아 자기 작품 세계를 지었다. DNA를 통한 것인지 생활 환경을 통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예술적 기질이라는 것은 이렇게 이어지는가 보다.
#르누아르, 도자기 화공이 인상주의 기수가 되기까지
1862년에는 파리의 유명 미술 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에 합격했다. 재학하며 파리의 살롱전에 작품을 출품하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 작품들은 작가가 파기해 남아있지 않다. 다만, 들라크루아와 쿠르베 등과 같이 현실 속 인간의 감정과 삶에 주목한 작가의 영향을 받았다 알려졌다. 1867년 살롱전에 통과한 ‘양산을 든 리즈(Lise with Umbrella)’(1867)라는 작품은 독일의 한 미술관에서 소장 중이다. 당시 연인을 그린 이 초상화는 야외에서 자연스러운 포즈를 포착해 담은 것으로 눈길을 끌었다. 기존의 초상화가 잘 꾸며진 실내에서 정해진 태도로 자기 권위를 드러내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르누아르는 모네, 시슬레, 세잔 등과 이렇게 야외에서 작업하는 그림으로 유명해졌다. 제1회 인상주의 전시로 불리는 자리를 꾸리고 작품도 출품했다. 이후에도 두 차례 더 인상파 전시에 참여, 눈부시게 빛나는 자연의 색채를 화면 위에 구현했다. 르누아르는 인상주의 작가들과 서로를 모델 삼아 삶의 순간순간을 남겨주는 등 청춘을 함께 보냈다.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의 춤(Dance at Le Moulin de la Galette)’(1876) 역시 이 시기에 그려진 것이다.
#청춘의 빛남이 깊어진 색채로 변하기까지
르누아르는 이와 같은 시간을 거쳐 자기만의 견고한 작업 세계를 구축했다. 인상주의 화풍에서 탈피하여 여행에서 만난 풍부한 색채 표현에 집중하기도 했다. 원색을 사용하고 그 대비에서 오는 아름다움으로 원숙한 화면을 만들었다. 그림의 대상도 풍경에서 벗어나 꽃, 어린이, 여성 등으로 확대했다. 이 무렵 그는 50이 다 되어 결혼했고 아내 알린 샤리고와의 사이에서 아이들이 태어났다. 엄마와 아이를 담은 따듯한 풍경이 등장하게 된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샤르팡티에 부인과 그의 아이들’(1878)은 그가 결혼하기에 앞서 그려졌지만, 가족이 등장하는 초상화다. 이 그림 속 주인공 여성은 르누아르의 주요 컬렉터였던 샤르팡티에 부인이다. 그녀는 플로베르, 공쿠르, 에밀 졸라 등이 활동한 문학 살롱을 운영한 살롱리스트로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르누아르의 그림을 그 누구보다 애정하고 지지하며 구매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당시 유행이었던 화려한 일본풍 거실의 가운데 샤르팡티에 부인이 앉아있다. 세련된 검정 옷을 입고 눈길을 보내는 대상은 그녀의 아들과 딸이다. 당시 유행에 따라 같은 드레스를 입고 같은 머리를 한 아이들의 표정이 해맑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눈길에는 온기와 애정이 가득해 화면 밖까지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르누아르와 동시대에 활동한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이 그림을 보고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우리 시대의 우아한 가정과 아름다운 드레스를 담은 한 편의 시.”
르누아르는 말년에 류머티즘성 관절염으로 큰 고생을 했다. 연필이나 붓을 잡는 것조차 고통스러워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도 그는 191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손가락에 연필을 줄로 매고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예술을 향한 애정과 열정이 그의 자식들에게 전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김한들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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