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팬데믹 시대 이끌 대선후보에게 식량의 미래를 묻다

입력 2021. 10. 2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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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길] "식량주권 지킬 수 있는 '먹거리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

[최준호 환경운동연합 활동가·시민환경연구소 기획위원(jopan@kfem.or.kr)]
대한민국은 정치의 시간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대유행으로 사회, 경제적으로 위기의 시간이지만 자신이 대통령만 되면 지금의 위기를 단박에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호언장담과 교언영색이 언론에 가득합니다. 그 와중에 어떤 대통령 후보의 '가난하면 부정식품이라도 먹게 해줘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은 먹거리와 국가의 책무를 다시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1980년대 한국에서 환경운동이 피어나던 시절 '공해라도 배부르게만 먹었으면 좋겠다'며 타박받았다는 환경운동가의 옛이야기를 21세기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이의 입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도 차별 없이 모든 국민에게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국가의 기본책무'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대유행으로 직장을 잃거나 사업을 접어 경제적 타격을 입고, 국제적인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먹거리 기본권을 지키는 일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이기에 기본이 안 된 대통령 후보의 발언의 비판에만 열을 올리고 먹거리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뚜렷한 공약조차 제시하지 못하는 다른 후보들의 수준도 안타깝습니다. 

안전 먹거리 공급은 국가 기본책무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농장에서 식탁까지 안전한 먹거리를 국가가 책임지겠다'며 먹거리 안전정책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당선 이후 '국가 푸드플랜 수립'을 국정과제로 선정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구체적인 법안이나 제도는 마련되지 못했고 '국가 푸드플랜 수립'은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지난 3월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는 '국가식량계획'(안)을 마련하고 지역순회 원탁회의 등을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토론했습니다. 그 결과를 받아 정부가 9월 16일 '국가식량계획'으로 발표했습니다.

'국가식량계획'은 식량생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먹거리 시스템 전 과정에서 환경적 부담을 낮추고 취약계층의 먹거리 접근성을 높이는 종합적인 먹거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환경적 측면을 고려해서 지역 단위별 경축 순환 모델을 구축하고, 환경친화적인 양식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농식품 분야 2050탄소중립 계획'도 10월 중 발표할 예정입니다.

ⓒ함께사는길

한계 분명한 국가식량계획 

먹거리 관련 국가 단위 계획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국가식량계획'임에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계가 분명합니다. 우선 국가식량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 내지 못했습니다. 먹거리 생산과 소비, 유통과 폐기 전 과정에 참여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참여와 관심을 이끌어내 '먹거리 기본권'이 우리 사회의 주요한 가치이자 의제로서 토론되어야 '국가식량계획'이 힘 있게 추진되고, 전 국민이 '먹거리 기본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의 노력과 수고가 무색할 만큼 이번 '국가식량계획'은 사회적 의제로 비중 있게 다뤄지지 못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탄소중립위원회(지금은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로 명칭 변경)가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안)'은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서 관련된 입장과 의견이 개진되는 것과 비교하면 '국가식량계획'은 조용합니다. 물론 3월부터 진행된 지역순회 원탁토론에서는 관련해 토론과 참여가 있었지만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두 번째로 '국가식량계획'은 정의롭지 못했습니다. 출범 당시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는 당장의 현안 과제를 해결하는 자리가 아닌 장기적인 농업, 먹거리 정책과 비전을 수립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과 무관심 속에서 먹거리 생산을 오롯이 담당하는 농어민의 현실은 장기적 과제를 토론할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당장의 삶이 무너져가는 농어민의 상황에서 위원회의 토론은 현실을 모르거나 외면한 제안이며, 거대자본이나 산업에 의존하는 오답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3월부터 열린 원탁회의에 참여한 시민들은 범부처적인인 '먹거리기본법'을 제정해서 법적 근거를 명확하게 하고, 먹거리 시스템 전 과정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하지만 '국가기본계획'에는 '먹거리기본법' 제정을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에 관련 규정을 신설하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은 정책 수립과 시행의 기본원칙을 '시장경제 원리를 바탕으로 한 효율성'으로 언급하고 농업과 농촌의 공익적 기능을 고려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수준으로 그 한계가 명확합니다. '인권'은 언급조차 없고, 농민은 시혜와 지원의 대상일 뿐이며, '먹거리 시민'이 참여할 공간이 전무합니다.

더구나 '국가식량계획'은 과감하지 못했습니다. 기후위기는 이상기후와 이에 따른 재난의 형태로만 다가오지 않습니다. 지난 2018년 세계자원연구소(World Resources Institute)는 기후위기에 따른 식량위기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보고서는 2050년까지 지구 인구는 100억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고, 이들에게 충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3가지의 격차를 좁혀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또한 보고서는 2050년까지 현재 추세의 칼로리를 공급하려면 2010년 대비 56%의 식량 생산이 더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5억9300만ha의 생산면적이 더 필요한데 이는 인도 전체의 2배에 해당하는 면적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끝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농업 분야에서만 11Gt(기가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전망과 비교한다면 한국 정부의 '국가식량계획'은 너무 여유를 부리고 있는 계획이라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돈의 힘으로 농업 시스템을 전환한다? 

추석 연휴 기간 열린 유엔 회의에서는 BTS 특사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같은 기간 '세계식량정상회의'(2021.9.23.)가 개최됐고 이 자리에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수석대표로 참가해 '국가식량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세계식량정상회의'에서는 만성적인 배고픔을 끝내고, 가난한 소농들의 삶을 회복시키며,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농업 시스템을 지속가능하도록 전환하자는 목표를 내세웠습니다. 이전과 다르게 회의과정도 누구든 사전에 신청하면 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열린 방식으로 운영했습니다. 식량농업기구(FAO) 역시 이번 '세계식량정상회의'에서 발표된 선언을 2022~2031 FAO 전략 프레임으로 채택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식량 농업 분야의 '파리협약'으로 불리는 이번 '세계식량정상회의'를 향한 국제 시민사회의 반응은 차갑습니다. 보이콧을 선언한 그룹도 있습니다. '세계식량정상회의'가 시장주도 기술을 채택하여 각국의 식품체계를 상업화, 산업화하려는 목적이고, 그동안의 국제 먹거리 거버넌스 체계를 무시한 채 다국적 기업과 자본의 편으로 돌아섰다고 지적합니다. 환경연합이 속한 지구의 벗(Friends of the Earth)은 사회정의 없이 기업에 포획된 부분적인 생태전환을 '쓰레기 농생태학'(Junk Agroecology)라고 비판했습니다. 지금까지 식량생산을 책임지고 있던 농민과 전통 방식의 농업에 근거한 농생태학적 접근보다는 화석연료와 생명공학 그리고 자본에 의존한 기술은 대안이 아니며, 식량위기는 인권의 문제임에도 인권을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입니다.

'세계식량정상회의'가 세계 시민들에게 비판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각국 정부와 유엔 등 공공기구들이 세계 시민들의 식량주권(안전한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 받을 권리)을 위협하는 자본과 산업 세력에게 식량안보(식량증산과 식량무역을 중심으로 한 단순 공급률 중심의 개념)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게 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회의 개최 전부터 세계경제포럼과 파트너십을 체결했고, 아프리카 식량주권을 훼손하고 화석비료와 유전자변형 종자 보급에 앞장선 아프리카녹색혁명연합(ARGR)의 아네크 칼리바타 회장을 '세계식량정상회의' 유엔특사로 임명하며 유엔의 속내를 의심케 했습니다.

또한 세계식량정상회의 개최 2일 전인 9월 21일 34개 국가의 42개 기업이 참여하는 '민간 부문의 기아 근절 서약(Zero Hunger Pledge for Private Sector)'가 열렸습니다. 이들 기업이 서약한 금액은 3억4500만 미국 달러(약 4000억 원) 규모입니다. 국제식품정책연구소와 국제지속가능발전연구소 등이 참여해서 발표한 '세레스2030, 기아퇴치를 위한 지속가능한 해결책(Ceres 2030, Sustainable Solutions to End Hunger, 이하 Ceres 2030)' 보고서는 농업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배고픔과 소농의 경제적 문제 해결,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세 가지 장벽을 넘기 위해 매년 국가들이 지속하는 ODA 이외에 필요한 자금이 매년 330억 미국달러에 달한다고 전망했습니다. 보고서를 작성한 그룹들은 민간 부분의 적극적인 지원과 참여가 조속히 이뤄진다면 더 작은 비용이 들 것이고, 지속가능한 결과는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번 세계식량정상회의 앞서 기업들의 서약을 주도했습니다.

이런 기관의 요구에 가장 빠르게 반응한 곳은 다국적 기업들과 육류산업계였습니다. 그린피스>가 사전에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육류산업계는 '지속가능한 집약축산' 시스템으로 에너지와 자원 사용은 낮추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한 영양을 제공할 수 있다며 '육류소비 감축'이 세계식량정상회의에 의제로 '다뤄지지 않도록' 로비했습니다. 위의 'Ceres 2030' 보고서 역시 '가족농과 소농의 지원보다는 기술과 자원을 집약적으로 사용과 규모화'를 '농업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함께사는길

기업에 의한 식량 시스템이 아니라 식량주권이 옳다 

국제식량기구에 따르면 여전히 8억 명 이상이 주린 배를 안고 잠이 들며, 30억 명 이상이 건강하고 영양 있는 식품을 섭취하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반면 20억 명 이상이 과체중과 비만으로 고생하고, 식품 중 3분의 1이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대유행으로 식량의 안정적 공급은 더욱 그 중요성이 더 높아졌고, 직면하고 있는 기후위기, 생태계위기는 농업 시스템을 지속가능하게 전환해야 하는 절박한 요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국가식량계획'과 '세계식량정상회의'에서 논의되는 기술, 자본 지향의 농업은 대안이 아닙니다. 자본과 에너지 집약적 농업도 대안은 아닙니다. 농업 공동체의 해체가 임박한 상황에서 기후변화에 대비하는 농업의 장기 비전을 자본, 기술, 에너지 집약적인 해결책으로 돌파하려는 농업정책은 실현될 가능성이 없습니다. 소농을 지키고 생협 등 사회적 기관을 이용해 농업과 농업 생산물을 정당한 가치 대응 가격으로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농정의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청년 농부의 유입이 가능하도록 농업의 생태적 가치와 농업 생산물의 정의로운 가격 형성을 이끌어 낼 '먹거리기본법'을 제정하고 식량주권을 지탱할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육성해 나가야 합니다. 기후위기, 코로나19의 계속되는 유행 속에서 식량위기가 겹치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 그때 중요한 것은 '식량을 구입할 수 있는 돈의 유무보다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국가사회적 능력 그 자체'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먹거리 생산에 불공정하게 지급되고 있는 지원 체계를 개선하는 일도 시급합니다. 국제농업기구와 유엔개발계획(UNDP), 유엔환경계획(UNEP)이 공동발간한 보고서 '수백억 달러의 기회(A Multi-Billion-Dollar Opportunity)'는 세계적으로 농업 지원금은 매년 5400억 미국 달러에 이르지만, 비효율적이고 불공정하게, 환경과 인간의 건강에 해를 끼치는 형태로 집행되고 있으며, 2030년에는 그 규모가 1.8조 미국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농업 시스템의 신속한 전환은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시대'를 살아나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답을 찾고 실천하는 일 역시 반드시 '공정하고 정의롭게' 진행되어야 합니다.

[최준호 환경운동연합 활동가·시민환경연구소 기획위원(jopan@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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