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실험실의 비밀

박돈규 기자 2021. 10. 23.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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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숙 소품 디자이너 인터뷰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 지킬(홍광호)이 자기 팔에 주사를 놓는 장면. 주사기 안에는 사실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 /오디컴퍼니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지킬 앤 하이드’는 2004년 국내 초연부터 흥행 불패 신화를 써내려왔다. 가장 유명한 장면은 너무도 유명한 노래 ‘지금 이 순간’이 흘러나온 직후, 즉 지킬이 하이드로 변신하는 대목이다. 이 뮤지컬의 소품을 담당해온 임정숙 디자이너가 이 실험실 장면의 비밀 한 가지를 공개했다.

인간의 선과 악을 분리할 수 있다고 믿는 지킬. 임상실험이 불허되자 그는 자신에게 빨간 약물을 주사한다. 그 용액의 정체는 뭘까. 임정숙 디자이너는 “주사기 안에는 사실 어떤 액체도 들어 있지 않다”며 “붉은색 종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지킬 앤 하이드’가 공연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주사 장면은 백신접종을 완료해 이른바 ‘투명인간’으로 바뀌는 현실과 겹쳐져 예년과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임정숙 디자이너는 “실험실 장면에 등장하는 무수한 약병들에 담긴 액체는 다양한 색깔의 식용색소를 물에 섞은 것”이라고 했다. 이번 무대에서 지킬은 류정한·홍광호·신성록이 나눠 맡는다. 다음은 일문일답.

–어떤 마음으로 용액을 준비하나요?

“지킬의 입술에서 “지금 이 순간~”이 울려 퍼지면 관객은 그 넘버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 감동을 눈으로도 담아주고 싶다고 저는 생각해요. 이 장면이 ‘지킬 앤 하이드’ 무대 중 가장 아름답길 바라는 거예요. 실험실을 가득 채운 투명한 실험 도구들과 약병들, 용액들, 그것들을 빛나게 등장시키고 싶습니다. 그래서 투명성을 살리는 용액을 사용해요.”

–제조 방식은 초연부터 조금도 변하지 않았나요?

“그 긴 시간 동안 변화가 없을 수 없지요. 처음에는 음료수를 사용했습니다. 맑고 깨끗한 음료들을 구매했지요. 청명한 푸른색 이온 음료나 맑은 보라색의 비타민 음료들, 또 그 색들을 혼합해 또 다른 색을 만들기도 했어요. 문제는 긴 시간 동안 보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음료는 부패했고요. 그래서 음료에 알코올을 섞어 쓰기도 했어요. 그 후 음료의 한계를 깨닫고 캔디용 식용 색소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실험실 장면. /오디컴퍼니

–배우가 공연 중 용액을 바닥에 흘리거나 어떤 해프닝은 없었나요?

“참 웃기지만 그 실험실에서 배우가 만질 수 있는 용액은 없어요. 배우의 안전을 지키는 것도 저희 소품팀에 주어진 임무입니다. 예를 들어 실험도구를 고정하는 클램프도 지킬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안전을 위해 최소한의 길이만 남기고 모두 절단해서 사용해요. 무대에서 물은 정말 위험한데 실험실은 물 천지입니다. 그 많은 물로부터 배우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선 배우가 만져도 되는 실험 도구와 절대 만지지 말아야 할 실험 도구를 구분해야 해요. 진짜 실험실은 배우와 약속이 참 많은 장소입니다. 거대한 진열장에서 지킬이 실제로 만지는 실험 도구는 시험관 두 개밖에 없어요. 투명한 두 액체가 혼합되어 붉은색으로 변하는 대목입니다. 그 시험관을 제외한 실험 도구는 만지지 않아요.”

–지킬이 자기 팔에 주사하는 약물은요?

“주사기 안에는 사실 어떤 액체도 들어 있지 않아요. 붉은색 종이가 있을 뿐입니다. 주사기를 누르면 종이가 사라지면서 마치 주사액이 팔뚝 안으로 들어가는 효과를 내지요. 지킬은 자신에게 주사를 놓은 다음 극심한 통증으로 괴로워하며 하이드로 변신합니다.”

–실험실에 있는 비커, 메스실린더 등에 담긴 용액은 종류가 얼마나 되나요?

“실험실 상단은 세트가 이동할 때 흔들거리기 때문에, ‘정말 신비한 액체구나’ 생각하게 해주고 싶었고요. 신비하고 맑은 붉은색, 보라색, 분홍색이 메인 컬러이고 그 배경에 깔리는 컬러는 초록색, 파란색, 노란색입니다. 나머지 하단에 있는 약병들에는 액체가 들어가지 않아요. 셀로판지를 병 안에 넣어 만들었어요. 셀로판지 컬러도 맑고 투명해 그 재료를 사용했습니다.”

–어떤 맛이 날지 궁금합니다.

“캔디를 만드는 식용 색소를 사용해요. 예쁘고 투명한 색을 원했습니다. 일반 염색용 색소도 아니고 다른 음식을 만드는 색소도 아닌 색상요. 그래서 캔디용 식용 색소를 사용해요. 맛이요? 먹어본 적은 없습니다. 식용 색소라 인체에 해가 없는 건 알고 있지만 조제할 때마다 손에 한번 묻으면 쉽게 지워지지 않더라고요. 색소가 많이 들어가 예쁜 음식은 먹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웃음).”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임정숙 소품 디자이너. 뮤지컬 ‘그리스’ ‘스위니 토드’ ‘잭 더 리퍼’ ‘경종수정실록’ 등을 작업했다. /임정숙 디자이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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