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통해 세상읽기] 궁이후공(窮而後工)

여론독자부 입력 2021. 10. 23. 07:01 수정 2021. 10. 23.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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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코로나 장기화로 예술 문화 종사자들
현장 공연 연기 등 오프라인 제약 여전
인문 위기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냐
절박함 속에서도 주변에 관심 기울여야
[서울경제]

코로나19 장기화로 영향을 덜 받는 곳과 더 받는 곳의 명암이 극명하게 갈렸다. 이 양극화는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위기 상황이다. 여행업과 소상공인은 존폐의 기로에 내몰리는 반면 온라인 거래와 배달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백신 접종 속도가 탄력을 받으며 오는 11월에 단계적 일상 회복이 기대되고 있다. 단계적 일상 회복에 따라 코로나19로 인해 짙은 어둠에 있던 분야가 서서히 회복되리라는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그간 굳게 닫혔던 국경이 열리면서 여행업은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고 있다. 방역 수칙이 완화되면 자영업자들의 영업 조건이 좀 나아지리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이전에도 어려웠고 코로나19로 더더욱 어려워진 곳이 있다. 바로 인문과 문화 예술 분야의 종사자들이다. 지금 공연과 영화는 좌석 간 거리 두기를 하면서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제약이 많다. 대규모 대중 공연은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소규모로 진행되는 인문학 강연도 온라인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현장 강연은 줄줄이 연기되는 등 아직도 열리지 못하고 있다. 인문과 문화 예술의 오프라인이 침체기를 맡고 있는 반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등이 활성화하면서 대중과 접촉하는 새로운 길이 열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과 문화 예술의 본령인 공감과 이해라는 측면에서 온라인 서비스는 현장을 따라갈 수가 없다.

사실 인문과 문화 예술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찍이 사마천은 흉노와의 전쟁에서 패한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 궁형을 당했다. 이후에 그는 죽음을 생각하다가 역사 속의 인물을 떠올렸다. 공자는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고난을 겪고 ‘춘추’를 지었고 굴원은 조국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돼 ‘이소’를 지었고 좌구명은 눈이 멀어 ‘국어’를 남겼고 손자는 다리가 잘리는 형벌을 받고서 ‘손자병법’을 지었다. 이처럼 역사적 인물들은 마음속에 맺힌 울분을 사상으로 문학으로 역사로 군사학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이에 사마천도 극단적인 선택을 포기하고 자신의 울분을 ‘사기’로 토해냈다. 이 때문에 발분(發憤)이 인문 예술의 창작 동기로 거론되게 됐다.

훗날 구양수는 발분과 조금 결이 다른 곤궁을 창작의 동기로 제안했다. “내가 듣기로 세상에 시인 중에 잘나가는 이가 적고 곤궁한 이가 많다고들 한다. 도대체 어찌 그러한가. 세상에 전해지는 시는 옛날의 곤궁한 이의 언어에서 나온 것이 많기 때문이다(여문세위시인소달이다궁·予聞世謂詩人少達而多窮, 부기연재·夫豈然哉. 개세소전시자·蓋世所傳詩者, 다출어고궁인지사야·多出於古窮人之辭也).” 시인이 곤궁하면 자연의 경물, 자신의 경험, 사회의 현상을 새로운 언어로 포착하려는 시도를 많이 하게 되고 그것이 사람의 공감을 얻는다는 말이다.

이에 구양수는 곤궁을 부정적이기보다 긍정적으로 보는 관점을 드러낸다. “시인이 곤궁하면 곤궁할수록 시의 언어가 더욱 공교해진다. 그렇다면 시가 사람을 곤궁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시인이 곤궁해진 뒤라야 시의 언어가 더 공교해지는 것이다(개유궁즉유공·蓋愈窮則愈工. 연즉비시지능궁인·然則非詩之能窮人, 태궁자이후공야·殆窮者而後工也).” 구양수의 주장은 ‘궁이후공(窮而後工)’으로 압축됐다. 구양수가 곤궁을 무한히 예찬했다기보다 곤궁의 절박함이 새로운 도전으로 나아가는 에너지가 될 가능성을 읽어내고 있다. 즉 물질적 곤궁과 창작의 곤궁은 시인이 더 이상 안주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게 되는데 그 상황에서 반전의 영감을 길어 올릴 수 있다는 말이다.

오늘날 사마천의 울분론과 구양수의 곤궁론이 절망스러운 상황에 내몰리는 인문과 문화 예술의 종사자들에게 희망과 위안의 에너지가 될 수가 없다. 지금 인문과 문화 예술의 종사자들은 개인적으로 업을 계속할 수 있느냐는 회의와 전체적으로 업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인문과 문화 예술에도 양극화가 짙게 드리우는 만큼 명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암이 옅어질 수 있도록 관심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궁이후공’이 창작의 에너지가 아니라 배부른 자의 소리로 희화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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