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가정보국, 미래 에너지로 '소형 모듈 원전' 지목
미국 18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장실(ODNI)이 기후변화가 미국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첫 국가 정보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출력 300메가와트 이하의 소규모 원전인 ‘소형 모듈 원전(SMR)’을 미래 에너지 기술의 총아로 꼽았다. 우리 정부가 지난 6월 ‘2050 탄소 중립 시나리오’를 만들면서 SMR 등 차세대 원전을 배제한 것과는 반대되는 흐름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월 “기후 위기를 미국 외교 정책과 국가 안보의 중심에 두겠다(백악관)”면서 국가정보국장에게 기후변화가 국가안보 및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도록 지시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ODNI는 사상 처음으로 기후변화를 국가안보 문제로 인식하고 종합적으로 분석한 보고서를 작성해 21일(현지 시각) 공개했다.
이 보고서에서 ODNI는 “기후 변화가 미국의 국가 안보 이익에 대한 위험을 점점 더 악화시킬 것”이라며 핵심 에너지 기술에 대한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리라 예상했다. 그러면서 “중국, 유럽연합, 일본, 러시아, 미국의 기업과 정부들은 청정 수소, 부유식 해상 풍력 발전, SMR처럼 무탄소 또는 저탄소 선택지를 추가해 줄 수 있는 신흥 에너지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R&D) 활동을 늘리고 있다. 수천억 달러, 수조 달러의 가치가 있을 수 있는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점점 더 치열한 경쟁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했다.
ODNI는 3대 신흥 에너지를 별도로 정리한 표에서 SMR이 “재래식 원전보다 건설하기 저렴하고 쉽다”며 “외딴 지역에 전력을 공급하고 재생에너지의 단속성(intermittency) 문제를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SMR에도 안전 우려나 높은 초기 비용 같은 단점은 있지만,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태양광·풍력 발전 등의 한계를 보완해 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또 ODNI는 “일부 국가들은 원자력 발전을 확대하려고 계획하고 있지만 다른 국가들은 안전 우려와 높은 비용 때문에 축소하려고 계획한다”며 “SMR의 개발이 (원자력 발전의) 새로운 확대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랑스에 이어 영국도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핵심 대책으로 원자력 발전을 늘리기로 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6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지난 12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원전에 10억유로(약 1조38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원전을 확대하는 방침을 확립했다.
실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2일 발표한 대규모 투자 계획 ‘프랑스 2030′에서 원전과 수소 발전을 에너지 분야의 중점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며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 개발을 언급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지난 19일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SMR를 비롯한 원전 산업에 다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국제사회는 2015년 유엔 기후변화회의에서 채택된 파리협정을 통해 산업화 이전과 대비한 지구 평균 기온 상승 정도를 1.5℃로 제한할 것을 다짐해 왔다. 하지만 ODNI는 보고서에서 미국 해양대기청의 분석을 인용해 2030년쯤이면 지구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상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이로 인해 이상고온이나 가뭄, 홍수 등이 잦아지면 이른바 ‘지정학적 화약고’라고 표현할 만한 일부 국가 간의 분쟁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봤다. 예컨대 메콩강 유역에서는 중국의 댐 건설이 캄보디아와 베트남 등 하류 다른 국가의 농업과 어업에 영향을 주면서 분쟁이 일고 있는데, 기후변화로 수자원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 오면 이런 것이 폭발할 수 있다는 취지다.
ODNI는 부적절한 행정, 취약한 인프라, 고질적 부패, 물리적 접근성의 결여 등으로 특히 기후변화에 취약한 11국을 뽑았다. 그중 아시아 국가로는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인도, 파키스탄과 함께 북한이 포함됐다. ODNI는 “북한의 빈약한 인프라나 자원이 점점 잦아지는 홍수나 가뭄에 대처할 능력을 약화시키고 북한의 만성적 식량난을 악화시킬 것”이라며 “계절에 따른 기후 변화가 극단적이 되는 일이 늘어나면서 가뭄 때는 저수지의 물이 줄어들고 장마철에는 인프라를 손상시킬 것”이라고 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의 기후변화 관련 행정명령에 따라 이날 미 국방부와 국토안보부도 각각 기후변화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 국방부가 기후변화의 전략적 위험성에 초점을 맞춘 ‘국방 기후 위험 분석’ 보고서를 낸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미 국방부는 기후변화로 한정된 자원에 대한 경쟁이 심해지고 자연재해가 잦아지면 이와 관련된 민간의 지원 요구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또 인도·태평양 지역의 해수면 상승과 극단화되는 기후가 괌, 팔라우, 마셜제도 등에 있는 미 군사시설에 타격을 주고 중국이 여기서 반사 이익을 취하려 할 가능성도 우려했다. 이에 따라 미 국방부는 ‘국가 국방 전략’을 포함한 각종 전략 수립과 작전 계획부터 훈련, 수송, 국제협력 등 모든 측면에서 기후변화를 고려할 예정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방소멸 막고 지역산업 키우려면… RISE 內 전문대 투자 확대 절실
- 수급·경제 논리보다 ‘탄소 제로’만 앞세워 에너지 정책 다 꼬여
- [바로잡습니다] 30일자 A35면 ‘국회를 제 집 안방으로’ 사설에서
- [팔면봉] 민주당, ‘尹 당선인·명태균 통화’ 음성 공개. 외
- 盧정부도 보냈는데… 우크라 참관단을 ‘파병’이라는 野
- 한미 SCM 공동성명에서 ‘北 비핵화’ 9년 만에 빠졌다
- 국립묘지에 묻힌 ‘K방산의 아버지’
- 미국·영국, 정년 폐지… 일본, 기업에 고용 연장 ‘3개 옵션’ 줘
- [알립니다] 방일영국악상 이영희 명인
- 대남 드론 지휘 정찰총국장도 러시아에 파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