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풍향계] 임기말 文정부, 경제팀도 레임덕?..기재부 '찍어누르기', 산업부 '불만 폭발'

세종=전준범 기자 2021. 10. 2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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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류세, 도시가스 요금 등 사회적 관심이 큰 이슈에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연거푸 다른 목소리를 내며 부처 간 엇박자를 드러냈다. 같은 사안에 대해 한쪽에서 ‘그렇다’고 하면 다른 한쪽에서 ‘아니다’라며 정반대 의견을 내는 식이다. 에너지 주무 부처인 산업부는 기재부가 물가 관리를 앞세워 ‘찍어 내리기식’ 일방통행을 반복한다며 분통을 터트린다. 이런 모습이 잦아지면 많은 국민이 정부 정책의 일관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유류세 인하 없다더니…3일 만에 딴소리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달 2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현재 유류세 인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홍 부총리는 “2018년과 같은 방식으로 리터당 세금을 인하하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며 구체적인 인하 방법까지 언급했다. 다음날인 21일 홍 부총리는 유류세 인하 시기와 관련해 “겨울을 넘어가는 수준까지로 봐야 할 것”이라며 최소 3개월 이상 지속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이 장면을 지켜본 산업부 공무원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앞서 이달 15일 열린 국감에서 유법민 산업부 자원산업정책국장은 유류세 인하 필요성을 제기한 의원 질의에 “기재부와 함께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기재부는 같은 날 “유가 동향을 모니터링하고 있긴 하나 구체적인 유류세 인하 방안을 검토한 바 없다”고 반박해 산업부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기재부는 이틀 후인 17일에도 유류세 인하 논의를 부정했다. 그러던 기재부가 불과 며칠 만에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이다.

최근 두 부처의 엇박자는 이뿐이 아니다. 지난달 30일에는 산업부가 “액화천연가스(LNG) 등의 원료비가 계속 올라 요금 인상을 다시 협의할 계획”이라며 연내 가스 요금이 상향 조정될 수 있다고 전했다. 전날 기재부가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물가 안정을 이유로 가스 요금을 비롯한 공공요금을 연말까지 최대한 동결하겠다고 밝히자 산업부가 에너지 주무 부처로서 하루 만에 반대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홍 부총리는 닷새 후인 10월 5일 열린 국감에서 도시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 계획을 묻는 국민의힘 서병수 의원 질의에 “동결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의 이 발언은 산업부와 사전에 협의하지 않은 내용으로 전해진다. 그는 “산업부는 계속 (인상을) 요구해왔으나 우리는 물가 관리의 중요성을 고려해 동결할 생각”이라고 했다. 익명의 한 산업부 관계자는 “기재부가 이렇다면 이런 거다 식으로 찍어 내리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 연합뉴스

◇ GM 사태 땐 산업부 면담 도중 기재부 결과 발표

기재부의 일방통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비슷한 일은 이전 정권 시절에도 종종 있었다. 박근혜 정부 때는 ‘2기 경제팀’이 출범하자마자 엇박자를 보였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취임 첫날이던 2014년 7월 16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참석해 “방만 경영 개선과 함께 공공요금 인상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윤상직 산업부 장관이 2014년 6월 25일 “올해 연말까지 전기 요금 인상 계획은 없다”고 밝힌 것과 배치된다.

수출 실적 급감과 함께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던 2019년 3월에는 기재부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이달 중 ‘산업별 경쟁력 확보 전략과 단계별 이행 로드맵’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이때도 산업부는 크게 당황했다. 사전 조율이 안 된 상태에서 주무 부처인 산업부 대신 기재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한국GM 구조조정 이슈로 자동차 업계가 시끄러웠던 2018년에는 산업부 패싱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주무 부처 타이틀은 산업부가 달고 있었지만, GM과 협상 과정을 주도한 건 기재부와 금융위원회였다. 한국GM 관련 위기감이 고조될 때 배리 엥글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을 처음 만난 사람도 산업부 관계자가 아닌 고형권 기재부 1차관이었다.

정부와 엥글 사장의 릴레이 면담이 이뤄진 2018년 2월 21~22일 주무 부처인 산업부의 면담 순서는 산업은행(21일)과 기재부(22일 오전)에 이어 가장 마지막인 22일 오후로 잡혔다. 산업부를 더 뻘쭘하게 만든 건, 이인호 산업부 차관과 엥글 사장의 면담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협의 결과를 언론에 브리핑해버린 것이다.

한 경제부처의 전직 관료는 “부처 간 엇박자가 기재부와 산업부 사이에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라며 “불통과 기 싸움, 일방통행이 그걸 보는 국민을 지치게 하고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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