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모든 생명은 결국 하나라는 믿음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2021. 10.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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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제공

'인간은 죽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 대해 죽으면 흙이 될테고 그 흙에서 새로운 생명들이 자라날 테니, 죽음은 삶과 맞닿아 있고 생명이란 순환하는 것이 아닌가 같은 두루뭉술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삶도 완전히 소멸하기보다 삶의 고리 속에서 영원히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다. 어떻게 보면 엉뚱하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일 수 있겠다. 불교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쩌면 윤회라고 하는 것도 이런 생각이랑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궁금증이 든다.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세상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진다'는 두루뭉술한 생각이 모든 생명을 향한 측은지심과 자비와도 관련을 보인다는 발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듀크대 심리학과 케이트 디벨스 교수는 한 실험에서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세상 모든 것들은 어떤 큰 근본적인 울타리 안에서 하나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신도 이런 생각을 하나요?” 그리고 이와 같은 생각을 얼마나 자주하는지 물었다. 

연구진은 이어 “겉모습은 달라도 세상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로 이어져 있다”, “겉으로는 달라 보여도 모든 것은 자신보다 훨씬 큰 어떤 존재의 일부이다”같은 문장을 보여주고 각각에 얼마나 동의하는지도 물었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 환경 같은 다른 생명에도 보편적인 관심을 쏟는지, 타인을 향해 너그러운 마음을 갖는 편인지, 사람은 누구나 다 나름의 부족함과 고통을 겪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그 결과 '모든 것은 하나'라는 믿음이 강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존재들을 향해 자비심을 가지려 애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타인을 향해서도 너그러운 마음을 견지하려는 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잘 살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우선시 여겨야 한다'는 생각은 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자신과 관련된 생각에 빠져 있는 정도도 비교적 덜 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슷하게 설득과 관련된 연구로 유명한 미국 애리조나대 로버트 치알디니 교수의 연구가 있다. 이 연구에서도 공감보다도 타인과 자신이 '하나'임을 느끼고 경계를 허무는 경험이 더 직접적으로 이타심과 도움 행동의 열쇠가 된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참 설명하기 어렵고 구체적으로 말하기도 어려운 개념이지만 수천년은 훌쩍 된 것 같은 오랜 철학적 개념이 도덕성을 견지하기 위한 또 다른 열쇠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이어져 있고 나와 타인, 나와 다른 생명들 사이에도 실은 뚜렷한 구분이 없다면, 나를 위하는 것과 타인을 위하는 것 사이의 경계도 없는 셈이다. 오랜 논쟁 거리가 되어 온 '진정한 이타심'이 가능한 것이냐는 질문 또한 의미를 잃게 된다. 

비논리적인 이야기인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느껴지는 것이 진화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가설, 즉 우리는 유전자의 그릇일 뿐 나라는 사람 자체보다 유전자를 남기는 것이 더 큰 목적이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을 돕는 것은 진화적으로도 충분히 이득인 일이라는 이야기와도 맞닿아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은 결국 하나라는 믿음이 있어야 경계 없는, 진정한 자비가 가능함을 알기 때문에 다양한 종교들과 옛 성현들이 대상과의 경계가 사라진 물아일체의 경지를 추구했던 것은 아닐까? 한편 이런 경지가 근심을 없애주고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준다고 하니 언젠가 한 번 정도는 이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관련된 연구들도 점점 더 많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참고자료

-Diebels, K. J., & Leary, M. R. (2019). The psychological implications of believing that everything is one. The Journal of Positive Psychology, 14(4), 463-473. https://doi.org/10.1080/17439760.2018.1484939 

-Cialdini, R. B., Brown, S. L., Lewis, B. P., Luce, C., & Neuberg, S. L. (1997). Reinterpreting the empathy–altruism relationship: When one into one equals onenes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3(3), 481–494. https://doi.org/10.1037/0022-3514.73.3.481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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