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 100년전 여성 사진가가 찍은 '산소같은 그녀'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2021. 10.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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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뉴스 라이브러리속의 모던 경성] 홍일점 사진사 이홍경, 1921년 관철동에 부인사진관 개설
갸름한 얼굴에 미소를 띤 여성의 얼굴은 지금 로맨틱드라마에 등장해도 자연스러울 만큼 모던하다. 1920년대 이홍경이 찍었다. 인사동 경성사진관 도장과 남편인 채상묵이 감수했다는 인장이 찍혀있다./한미사진미술관 소장

1926년 조선 여성의 직업을 소개하는 신문기사에 사진사가 등장했다. ‘아직 조선에서 오직 하나인 여자사진사’로 소개된 이홍경씨가 주인공이었다. ‘8년전부터 남편과 함께 사진술을 공부하여 현재 인사동에 경성사진관을 열었고, 한편으로 근화여학교 사진부 생도들을 가르치나니 조선에 첫 시험인 그에게 사진사로서의 설움과 기쁨’(조선일보 1926년 5월18일 ‘조선여성이 가진 여러 직업 8-사진사’)을 인터뷰한 기사였다.

이홍경의 사진 스승은 구한말,일제때 초상화로 유명한 채용신의 셋째 아들이자 역시 초상화가였던 남편 채상묵이었다. 조선인 사진가 수가 손꼽을 정도였던 1921년5월 이홍경은 종로구 관철동 75번지 우미관 앞에 ‘부인 사진관’을 개설했다. 여성 사진사가 여성 전용사진관을 개설한다는 게 당시로서도 화제였던 모양이다. ‘경성에 부인사진관 개업은 리홍경 여사가 처음이라더라’(조선일보 1921년 5월22일 ‘부인사진관’)는 신문 기사가 날 정도였다.

◇신문 1면에 ‘부인사진관’ 개업 광고

조선일보 1921년 5월25일자 1면에 실린 경성부인사진관 개업광고. 이홍경은 이름을 당당히 내걸고 나섰다.

당시 조선일보 1면에 실린 개업광고는 ‘신문화 건설’과 ‘예술적 관념’을 내걸고 거창하게 시작한다. ‘신문화를 건설하며 새 사업을 이루려는 우리 사회에 오직 그 요소인 예술적 관념이 결핍하옴은 우리의 항상 감탄하는 바인 줄로 생각해와 본인이 이에 다년간 연구해온 결과….’

‘3200촉의 전기를 응용하여 정선한 기술로써 요구하시는 대로 수응하겠삽기에…’라는 정중한 문구와 함께 ‘朝鮮婦人寫眞館 主 李弘敬’이라고 이름을 내걸었다. 여성이 자기 이름을 내걸고 사업을 한다는 게 낯선 시대였기에 파격적이었다.

이홍경의 마케팅은 꽤 성공적이었던 모양이다. 남녀 내외가 심해 남자가 여성을 촬영하는 게 어려웠던 당시 여건상, 여성 고객을 끌어들이기에 유리한 이홍경은 적임자였다. 한국사진사 연구자 이경민에 따르면, 이 부인사진관은 개업 10개월만에 건물을 2층으로 확장하고 설비를 대거 들일 만큼 성황을 이뤘다.

1924년을 전후해 남편까지 그림에서 사진으로 전업하면서 사진관 이름을 ‘조선사진관’으로 바꿨다. 이듬해 종로1가에 분점을 낼 만큼, 인기가 있었다. 1926년 쯤엔 이 사진관을 넘기고 인사동으로 자리를 옮겨 ‘경성사진관’을 개업했다.

◇첫 여성사진사는 1907년 ‘향원당’

이홍경은 조선의 두번째 여성 사진사였다. 첫번째 홍일점 기록은 고종의 시종인 김규진(1868~1933)이 1907년 경성 석정동에 개설한 천연당사진관에서 활동한 향원당(香園堂)으로 알려져있다. 천연당사진관은 개업초부터 여성 사진은 여성이 촬영한다는 광고를 신문에 냈다. 1907년10월25일자 대한매일신보엔 ‘부인사진사 향원당’명의로 광고를 실었다. ‘포덕문 밖 신작로변 김규진 집에 천연당사진관을 건설하고 부인네 사진을 백히옵는데 값도 싸고 사진 정교하오며 내외 엄숙하고 부인 사진은 여인이 백히오니 사진 백히기 원하시는 부인네는 본당에 왕림면의하시옵’

향원당이 누구를 가리키는 지는 아직 명확치 않다. 사진사연구자 최인진은 ‘새문안교우 문답책’(1907~1914)에 김규진 부인 김진애의 직업이 ‘사진박는 것이오’라고 기재된 것을 토대로 김진애가 향원당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자손들의 증언과 일치하지 않아 확정하긴 이른 편이다.

◇”사진 찾을 때 거의 트집…조선 사람의 습관?”

조선일보 1926년5월18일자에 실린 '조선 여성이 가진 여러 직업 8'. 사진사 이홍경이 일하는 사진과 인터뷰를 게재했다.

여성 사진사를 괴롭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이홍경은 이렇게 말했다. ‘사진을 찾아가는 사람이 ‘잘되었다’는 말을 하며 기뻐하는 모양을 볼 때에는 역시 한없는 기쁨을 맛볼 수있으나 이것이 조선 사람의 습관인지는 모르되 천에 한 사람 마주 서서 칭찬하는 이는 없고 거의 다 트집을 잡으려고 애를 쓴답니다.’

이홍경은 사진사가 갖출 조건으로 인내력과 주의력을 꼽았다.

1930년 조선총독부가 실시한 ‘국세조사’ 통계자료엔 당시 경성에서 활동한 여성 사진사가 모두 15명, 그중 조선인 여성은 4명이라고 기록했다. 이름은 확인되지 않지만 이홍경외에도 여러 명의 조선인 여성 사진사가 있었다는 얘기다.

◇참고자료

이경민, 한국여성 사진사 1 :1980년대 여성사진운동, 서울시립미술관, 2021

박주석, 우리나라 두번째 여성 사진사 이홍경, 우리문화 274, 201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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