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실패의 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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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월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사고는 우주 도전사에서 참사 중 하나였다. 승무원 7명을 태운 챌린저호는 발사 73초 만에 가스 누출로 공중 폭발했다. 이 장면을 세계인이 생중계로 지켜보았다. 원인은 미터법을 쓰지 않은 데 있었다. 이음매를 미터보다 더 큰 단위인 인치로 설계하면서 로켓의 고무링에 틈새가 생긴 것이다.
▶‘항공우주 개발의 역사=실패의 역사’다. 브라질은 2003년 로켓이 폭발하면서 발사대가 붕괴해 과학자 등 23명을 잃었다. 중국은 1996년 쓰촨성 우주센터에서 위성 탑재 로켓을 쏘아 올렸다. 그러나 발사 몇 초 만에 로켓이 심하게 기울더니 하필이면 주변 민가로 추락했다. 중국의 언론 통제로 정확한 피해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수백 명의 사상자가 생겼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인류 최초 달 착륙을 앞두고 이뤄진 최종 점검에서 우주인 3명 전원이 사망하는 비극도 있었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는 21일 발사 후 2단과 3단 분리와 엔진 점화, 페어링 분리, 위성 분리까지 성공했으나 3단 엔진에 문제가 생기면서 위성 모사체를 목표 궤도에 진입시키지 못했다. 이번에 얻은 경험과 수치는 향후 발사 성공률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로켓 엔진은 경험을 축적하는 것 말고는 제대로 작동하게 만들 방법이 없다고 한다. 미국의 첫 우주 발사체 뱅가드도 1957년 12월 발사 후 1.5m도 솟구치지 못하고 2초 만에 폭발했다.
▶서울대 교수들이 쓴 책 ‘축적의 시간’은 “창조적 역량은 오랜 기간의 시행착오를 전제로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축적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다”고 했다. 모든 기술은 실패의 축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수십만 개 부품이 극한 환경에서 정확하게 작동해야 하는 우주 발사체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실패가 축적돼 성공으로 가려면 과학자들이 ‘과학’만을 생각해야 한다. 누리호 발사 중계를 지켜보던 국민은 발사 14분 만에 뜬 ‘3단 엔진 정지 확인’이란 자막이 무엇인지 의아해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주는데 항공우주연구원은 아무런 발표도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언론은 ‘발사 성공’이란 오보를 내보내야 했다. 항우연은 궤도 진입 각도 등 구체적인 수치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한 시간이나 지나서 대통령이 나와 ‘미완의 과제’라면서 위성 궤도 진입 실패를 알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대통령이 아니라 과학자가 국민에게 발표하고 설명해야 할 일 아닌가. 내년 5월 누리호 2차 발사는 성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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