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생존을 밑천으로 몸소 쓴 글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입력 2021. 10. 2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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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작가나 전문가들의 글보다 기억과 생각의 흐름을 좇느라 오락가락 헤매다가 결국 글쓴이의 몸과 마음을 닮아버린 글들을 갈수록 좋아하게 된다. 오직 몸 하나로 살아온 사람들이 생존을 밑천으로 몸소 쓴 글을 자주 읽거나, 이제라도 써보겠다며 모인 자리에 끼어들 기회가 많은 것이, 내겐 행운이다. 읽는 이의 마음을 붙드는 조용한 악다구니도 많고, 자신의 생애와 머릿속과 말이 그렇듯 문법과 맞춤법과 시제 따위에서 자유로운 글도 많다. 포장이 없고, 다른 사람은 절대 쓸 수 없는 세상에 유일한 글이다. 느닷없이 솔직해 당황스럽기도 하고, 때론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워 글의 사이에 대한 글쓴이의 설명과 참여자들의 경청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글과 말토막을 실마리로 다른 사람의 말과 글이 이어지면서 서로와 세상을 더 알게 되고, 글로도 말로도 차마 꺼내지 않은 속과 뒤를 가늠하면서 더 많은 질문과 감수성을 얻게 된다. 외람되지만 우선 내가 배우고 질문을 얻어가자는 욕심에, 불러만 주면 달라들어 꼽사리를 끼거나 사람들을 들쑤셔 글쓰기 모임을 만들기도 한다. 섣부른 퇴고나 수정은 생애를 도둑질하는 일이라 여겨, 두 대목을 최대한 그대로 전한다.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아저씨는 어쩌다가 일이 안대서 길거리 생활하시다, 거리에서 저처럼 브로커들 만나서 경기도 광주 오실 때 신분증이랑 도장까지 다 만들어줬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여기 모하는 데냐고 솔직하게 말해 달라고? 저는 잠시 고민에 빠지다가 제가 한 얘기 비밀로 해줄수 있냐고 그럼 말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루고 다 말해주었고 아저씨는 다음날부터 밥 한끼도 안 드시고 술만 드셨다. <중략> 한 달 만에 그 아저씨를 봤다, 아저씨 몸이 너무 뼈가 보일정도로 말라있어따. 몇 칠 후 브로커사람들이 시장 바오는 날인데 이상하게도 직접 안 갔다주고 저한테 갔다 주라고 시켰고 아저씨 집에 갔더니 불은 컴컴했고 주의에 소주병 냄새는 썩은 냄새가 구토 나올 정도로 진동을했다. 발이 보라색으루 부어있었고 술에 취해 주무시는거 같에서 음식재료만 놓고 왔다. 몇분 뒤 전화가 왔는데 경찰이란다. 그 집에 사람이 죽었다고.” (40대 남성이 15년 전 노숙 당시 명의도용 경험을 쓴 글. 글 제목이 “죄책감”이었다가, 글 이야기 나눔 후 “나쁜 놈들”로 바뀌었다. 그는 글 전문을 많이 수정해 지난 15일 무연고 사망자 합동추모제에서 낭독했다.)

“아빠가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다가 현관 한쪽 측면에 천장까지 닿아있던 장식장이 피아노 위로 쓰러지면서 건반 뚜껑에 커다란 흠집이 나고 장식장에 올려져 있던 유리 장식품과 화분들이 떨어져 산산조각이 되어 거실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지는 장면을 목도했을 때, 마음의 어딘가가 영원히 부서져 버린 느낌이 들었다. 소동이 가라앉고 모두가 잠든 사이 날이 밝아 피아노의 상처와 거실의 참상이 또렷이 드러난 풍경을 나 홀로 황망히 바라보던 기억이, 약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극히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러다가 아빠가 인간일 수 있는 내 안의 마지막 선도 이내 무너졌다. 나와 딱 열 살 차이가 나는 늦둥이 막냇동생이 자라고 있던 엄마의 배를, 그것도 만삭인 상태임에도 아빠가 발로 걷어차고 짓밟은 것이다. 열 살은 여린 눈이 갓 트기 시작한, 마땅히 보호를 받아야 하는 나이다. 하지만 그대로 있다간 엄마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도 죽을 것 같았다. 나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으며 아빠에게 매달려 늘어졌다. 이런 나의 저항이 실제로 벌어졌던 일인지 내 머릿속에서 살을 붙여 만들어진 장면인지, 솔직히 잘 분간이 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뭘 위해서인지도 모르면서 순간순간 필사적으로 있는 힘을 다했다. 그것이 나를 보호해 주지 않는 세상 속에서 내가 버티고 산 방식이었다.” (30대 여성 조개인이 지난여름 “정신장애인자서전쓰기” 모임에서 쓴 글)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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