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에 물 쏟아 몸매 도드라지니.. 그녀는 '엄마'란 흔적 숨기기 바빴다

이기문 기자 2021. 10. 2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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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은 괜찮아, 내일은 모르겠지만

서유미 지음|민음사|352쪽|1만4000원

소설집 표제작은 13쪽의 초(超)단편소설. 섬에 있는 호텔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여자가 있다. 그는 뭍에서 섬으로 파도처럼 쓸려 왔다. 소설은 그가 어떤 이유로 섬까지 밀려왔는지 그 사정을 전부 말해주지 않는다.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이직하고 싶던 회사의 최종 면접을 망쳤다. 심장은 쿵쾅댔고 진땀이 흘러나와 제대로 말도 하지 못했다. 면접장을 빠져나와 도시 한복판에 놓인 벽에 머리를 기댔다. 섬으로 온 그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은 호텔 동료인 지호. 섬 밖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왔는지 알 수 없지만, 주인공은 그와 나란히 서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미래는 두렵지만 완전히 깜깜한 것은 아니다.

초단편 5편과 단편 7편으로 이뤄진 소설집. 신생아를 키우다 친구를 만나려 잠깐 짬을 내 카페에 나온 엄마(‘거리’), 초등학교에 진학할 아이를 위해 아파트로 이사하려는 엄마(‘집으로 돌아가는 길’), 결혼식을 올리려는 신부(‘토요일 오후 5시의 행진곡’) 등 평범한 여성들이 주인공이다. 작가는 흔한 일상이 낯설거나 당혹스럽게 느껴지는 순간들을 잡아채 정물화처럼 보여준다.

예를 들어 단편 ‘거리’에서 엄마에게 친구를 잠깐 만나는 일은 전쟁 같다. 반나절 육아로 생색 내는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집 밖에서도 아이 생각으로 조마조마해한다. 카페에서 20대 초반 남녀를 마주친다. 한 사람이 실수로 그의 원피스 앞자락에 물을 쏟는다. 원피스가 들러붙자 뱃살이 도드라져 보인다. 미혼 친구에게 임신과 출산과 육아의 흔적을 들키고 싶지 않아 서둘러 앉는다. 그는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며, 창밖 거리에서 뛰노는 청춘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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