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느린 물
[경향신문]

물이 느리다면, 그 물은 아마도 무거울 것이다. 물이 느리게 흐른다면, 그 물은 아마도 깊을 것이다. 깊고 느린 물에 뒤섞인 현탁물은 유속에 휩쓸려 정처 없이 떠내려가기보다 서서히 바닥으로 침강할 것이다. 느린 물은 자신과 주변 모두에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줄 것이다.
문명이 탄생한 곳에는 늘 물이 있었다. 물의 이미지가 발아시키는 상상은, 물에서 태어나 몸의 70%를 물로 채운 인간의 손끝을 타고 구현됐다. 느리게 흐르는 물길에 의탁해 환경에 반응하고, 법칙을 발견하고, 기술을 연마하고 생활양식을 구축했다. 인위적으로 선택하고 실행하지 않는 한, 의식할 수 없을 만큼 느리게, 대비할 수 있을 만큼 규칙적으로 변했던 과거의 자연환경은, 과거의 인류에게 생존을 지탱하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요소들에 대한 공통의 경험을 제공했다.
다양성이라는 수면 아래로 연결돼 있는 유사한 삶의 원리는 인류를 관통하는 원형적 세계에 대한 탐구를 돕는다. 세계의 다양한 문화와 전통에서 발견되는 토착성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수집하고 연구하고 협업하여 상상을 구현해 온 이슬기는 한때 바닷물이 드나들던 간척지로서의 기억을 간직한 ‘인천아트플랫폼’ 위에 물의 시간을 불러들였다.
작가는 문살 장인, 단청 장인과 협업, 한국 전통 격자 문살의 제작원리를 적용해 만든 11m 지름의 ‘느린 물’을 전시장 공중에 매달았다. 작품 아래에서 거닐다 보면, 한쪽 방향으로만 다양한 단청색을 입힌 덕분인지, 문살이 벽면에 드리운 그림자 덕분인지, 단 한순간도 고정돼 있지 않은 자연 속에 있는 것처럼, 멈춤 없는 변화의 시간 안으로 가라앉는다. 느리고 고요한 공기 안에서 몸이 잠시나마 누리는 것은 평화 같다.
김지연 전시기획자·d/p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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