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기고, 되받아치고.. 우리 관계도 탁구 같은 거야

채민기 기자 2021. 10. 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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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도서관

핑퐁 클럽

박요셉 지음|문학동네|72쪽|1만4800원

탁구는 구기 종목을 통틀어 가장 가벼운 공을 쓰는 스포츠다. 탁구공의 무게(2.7g)는 깃털로 만드는 셔틀콕(5.5g)의 절반, 비슷한 크기의 골프공(45g)에 비하면 16분의 1에 불과해 입김만 불어도 쉽게 날아간다. 네트를 사이에 두고 공을 주고받는 많은 운동 중에서 하필 ‘핑퐁’(탁구)이 관계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것은 공의 궤적만큼이나 변화무쌍한 관계의 속성 때문일 것이다. 부처 간 이기주의라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될 때조차도 ‘핑퐁’은 조직 사이의 미묘한 긴장 관계를 전제로 한다.

책은 살면서 겪게 되는 인간관계의 다양한 단면들을 탁구 경기에 빗대 표현했다. 우선 길쭉한 판형부터 탁구대를 닮았다. 첫 장면은 덩그러니 놓인 탁구대. 관계는 상대편의 존재를 확인하는 데서 출발한다. 두 선수가 “내 말 들리니?”라고 물으며 공을 주고받는 것으로 경기가 시작된다.

/문학동네

경기는 올림픽에서 보던 탁구와는 다르다. 초현실적이고 조금 기묘하기까지 하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탁구대만큼 커진 공은 오가는 말[言]에 실린 무게를 상징하고, 또 다른 장면에서 네트를 타고 앉아 공의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는 심판은 둘 사이에 끼어든 제3자를 의미한다. 공과 라켓, 경기장의 모습을 변주하며 관계의 속성을 포착해내는 작가의 시선이 섬세하다.

선수들의 얼굴은 윤곽만 있을 뿐 이목구비가 없다. 인종이나 연령을 특정할 수 없는 익명의 얼굴들은 독자 자신의 얼굴이기도 하다. 관계라는 경기장에선 누구나 선수다.

경기 막바지에 이르면 수많은 선수들이 뒤엉켜 제각각 자기 공을 친다. “혼자가 아니어도 외로운 건 마찬가지야.” 마지막 장면은 다시 덩그러니 놓인 빈 탁구대. 때로는 피곤하고 상처도 받지만, 우리는 또 새로운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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