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샌들, 성적인 힐.. 시대 따라 변한 신발의 상징

신발, 스타일의 문화사/엘리자베스 세멀핵/황희경/아날로그(글담)/2만8000원

2008년 12월 이라크를 방문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기자회견 도중 현지 기자로부터 ‘신발 세례’를 받았다. 신발을 던진 기자는 부시 전 대통령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고 부시 전 대통령이 날아오는 신발을 피하자 다른 한 짝 신발까지 벗어 던지기도 했다. 이때 신발은 불명예 또는 더럽고 천함 등을 의미하며 상대방에 대한 경멸과 항의의 표시로 이용된다.

그렇다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댄스 경연 프로그램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에서 무대를 향해 신발을 벗어 던지는 행위는 어떤 의미일까. 이때 신발은 댄서에 대한 존경과 찬사를 나타내는 의미로 쓰인다. 분명히 같은 행동이지만 앞선 예와는 정반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신발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해왔다. 자유, 권위, 저항 등 시대의 이상과 욕망이 그 스타일에 투영됐다. 패션 큐레이터이자 역사학자인 엘리자베스 세멀핵은 신간 ‘신발, 스타일의 문화사’에서 신발을 샌들·부츠·하이힐·스니커즈의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눠 각각의 변천사를 살피고 그 역사를 만들어온 인간의 삶과 가치관의 변화, 시대상을 흥미롭게 들여다본다.

신발은 역사적으로 그것을 신는 사람의 정체성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꽉 끼는 신발보다는 모카신이나 샌들, 아니면 아예 맨발이 더 낫다”고 말했다. 이들처럼 검소하고 단순한 생활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샌들은 타인에게 의지하는 않는 삶, 주류 사회에 대한 거부, 자유의 상징이었다.

하이힐은 어떠한가. 서구 패션에 도입된 이후 특권층 남성들이 130년 동안 힐을 신었음에도 수 세기 동안 힐은 왜곡된 성적 욕망이 투영된 유혹의 액세서리로 간주되고 비난받아왔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패션 디자이너들이 힐을 예술 작품에 가깝게 변화시킴으로써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고, 21세기에 이르러 ‘성 유동성(gender fluid)’에 대한 인식이 커짐에 따라 이분법적인 성별 구조의 강력한 상징이었던 힐은 조금씩 그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