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날 비판해라" 메르켈의 넓은 품

한경환 2021. 10. 2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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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 리더십
메르켈 리더십
케이티 마튼 지음
윤철희 옮김
모비딕북스

16년 만에 칸츨러린(Kanzlerin·여성총리)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앙겔라 메르켈의 어깨는 요즘 한결 가벼워 보인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그토록 원했던 ‘사적인 자유’를 마음껏 누릴 생각에 부풀어 있다. 『메르켈 리더십』은 독일 총리로서뿐 아니라 유럽의 지도자로서 오랫동안 자기 나라와 유럽 대륙을 많은 위기에서 헤쳐 나오게 만든 선장 메르켈의 리더십을 조명한 역작이다.

메르켈은 늘 인기와 칭찬을 멀리해 왔고 경청과 소통, 인내와 설득으로 합의와 성과를 끌어내는 무티(Mutti·엄마)형 리더였다. 그는 수석보좌관 베아테 바우만 등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참모들이 자유롭게 발언하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모두가 주지하도록 굉장히 신경을 썼다. “참모 중에 아첨꾼은 없습니다. 누구나 메르켈을 비판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나 총리의 눈치만 보고 할 말을 못 하는 대부분의 참모를 둔 다른 지도자들과는 확실히 차별되는 경쟁력이다.

메르켈은 친구를 가까이 두되 라이벌은 더 가까이 두었다. 자신과 총리 경쟁을 벌였던 사민당의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를 대통령 자리에 제안했다. 그리고 잠재적 라이벌이었던 같은 기민당의 볼프강 쇼이블레를 자신의 첫 내무장관, 그리고 8년 동안 재무장관으로 둬 유럽재정위기를 훌륭하게 극복할 수 있었다.

메르켈은 과장된 수사를 거부하고 거창한 아이디어, 원대한 내용을 담은 문장은 모조리 터부시했다. 화염 같은 선동으로 대중을 갖고 노는 것보다는 서방국가의 지루하지만 현명한 관리인이 되는 쪽을 선호했다. 필수적인 생존 메커니즘 중 하나는 감정을 떼어놓고 판단하는 뛰어난 능력이었다. 자존심을 외부에 따로 독립시켜둔 탈인격화한 정치를 했다. 그런 능력 덕에 그는 여성을 자신들의 지도자로 받아들이기까지 무척 긴 시간이 걸린 연립정부 내부 라이벌들의 공격도 담담히 방어할 수 있었다.

메르켈 리더십의 요체가 집대성된 이 한 권의 책은 제대로 된 정치인이 되기 위한 길을 보여 주는 전범(典範)으로 조금도 손색이 없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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