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들의 천국' 된 아이티.. 25명 살해한 갱단 두목이 총리 행세
올해 발생한 납치사건 300건 이상
선교사 17명 몸값 200억원 요구
활개 치는 주요 무장 갱단 수 90여 개, 이들이 장악한 지역은 전국의 50% 이상…. 일부 지역에서는 법원과 경찰서, 학교 등을 모두 넘겨받아 갱단이 사실상 정부로 행세하는 곳. 3개월 전 대통령이 암살당한 중미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가 ‘갱들의 천국’이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21일(현지 시각) “대통령이 살해되고 지진으로 수천 명이 사망하는 등 혼란을 겪고 있는 아이티가 갱단의 손아귀에 들어갔다”며 “이 나라의 상황은 갈수록 최악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제 비정부기구(NGO)인 국가인권수호네트워크는 최근 보고서에서 “아이티 갱단은 암살과 납치, 강간, 방화, 테러, 약탈 등 온갖 악행을 일삼고 있다”며 “이들을 제지할 정부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지난 17일엔 갱단 두목이 국가 행사 자리에서 무력으로 총리를 쫓아낸 사건도 벌어졌다. 이날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열린 건국 영웅 장자크 데살린의 215주년 추모식에 무장한 갱단원 수십 명이 총을 마구 쏘며 난입했다. 추모 헌화를 위해 행사에 참석한 취임 3개월 차의 아리엘 앙리 총리의 수행원 등이 갱단에 맞서 총격전을 벌였지만 역부족이었다. 갱들이 수행원들과 몸싸움을 벌이며 그들의 얼굴과 몸을 총으로 때리는 모습이 동영상에 고스란히 찍혔다. 갱단에 밀리자 총리는 재빨리 자동차로 몸을 피해 행사장을 떠났다.
총리가 헌화하려던 자리에는 ‘바비큐’라는 별명을 가진 전직 경찰관이자 9개 갱단을 연합한 아이티 최대 갱단 G-9의 두목 지미 셰리지에가 대신 섰다. 흰색 양복을 빼입은 그는 “이제부터 내가 (이 나라의) 총리 ”라고 선언한 뒤 부하 수십 명을 거느리고 포르토프랭스 거리를 행진했다. 셰리지에는 2018년 하루에 25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미 재무부 제재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갱단들은 수도 포르토프랭스도 40% 이상을 장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인권단체에 따르면 “갱단은 정치 지도자보다 더 많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며 “그들이 ‘집에 있어’라고 명령하면 집에 머물러야 한다”고 했다.
아이티 갱단이 최근 가장 많이 뛰어들고 있는 범죄는 납치다. AP통신은 “올해 8월까지 경찰에 보고된 납치 사건만 최소 328건으로 지난 한 해에 있었던 납치 사건(234건)보다 40% 이상 많다”고 했다. 지난 16일 아이티의 한 보육원을 방문한 미국인과 캐나다인 17명을 납치한 것도 갱단의 소행이었다. 배후는 G-9과 라이벌 관계에 있는 갱단 400마우조로 살인과 납치, 약탈 등으로 악명 높은 조직이다. 이들은 1인당 100만달러씩, 총 1700만달러(약 200억원)의 몸값을 요구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갱단의 납치 범죄가 크게 늘어난 이유에 대해 “그들이 납치를 일종의 비즈니스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아이티 빈곤층이 크게 늘어나면서 약탈로 얻는 수입이 급감했기 때문에 납치를 주 수입원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외신들은 “아이티에서는 어린이부터 종교인, 사업가 등 아이티의 모든 사람이 갱단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했다.
아이티에 갱단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90년대였다고 한다. 빈곤과 정부의 무능이 초래한 일종의 사회적 현상이었다. 인구 1140만명의 아이티는 인구의 60% 이상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며 120만명이 극심한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는 국민들을 제대로 먹여 살리지도 못하고, 치안을 유지할 능력도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지난 7월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 피살 사건과 최소 2200명이 사망한 지난 8월 지진 발생, 코로나 팬데믹 확산 등은 갱단의 성장을 부채질했다. 정치·사회적 불안이 고조된 틈을 타 갱단들이 최근 세력을 확장, 국가 통제를 벗어날 정도로 강력하고 대담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AP통신은 분석했다.
현재로선 이들을 막을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장 드브와 아이티 중앙은행 총재는 “코로나로 인한 만성 실업이 문제를 가중시켰다”며 일할 곳이 사라진 사람들이 갱단에 가담하면서 “갱단이 우리 나라의 가장 큰 고용주가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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