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문학의숨결을찾아] 역사의 어둠을 밝히는 향기
日 강점기 韓 지식인의 중심점에
청량리역은 아주 오랜만이다. 서울역 아니면 용산역에나 다니던 것을 이번에는 원주, 제천을 지나 안동까지 가는 기차를 타야 한다. 안동은 유학의 고장, 한학의 고장일 텐데, 거기서 한국어와 한글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는 일을 한다고 했다. 안동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된 것을 ‘기념하는’ 학술행사라는 것이다.
흔히 일제강점기 말기는 암흑기라는 별칭으로 불리곤 한다. 나는 이 말에 늘 어떤 위화감을 느낀다. 어딘가에 자연스럽게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감정, 이를 일러 위화감이라 한다. 1941년 9월 함경남도 홍원경찰서에서 시작된 일련의 검거 선풍은 10월이 되자 이희승, 이병기, 최현배 같은 국어학자들을 대대적으로 잡아 가두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번져 나간다. 작고하신 김윤식 선생은 이 조선어학회 사건이야말로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일대 사건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1910년에 정치적, 군사적으로 강점되고 나서도 일본은 한국어와 한글만은 송두리째 빼앗을 수 없었다. 관공서 등에서는 일본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토록 강제했다 해도 조선어는 학교의 필수과목이었고 문학은 ‘조선어문학’, ‘한글문학’이라야 했다. 1938년에 조선총독부는 조선어를 필수에서 수의과목, 즉 선택과목으로 만들어 버리며, 1940년과 1941년에는 ‘동아’, ‘조선’ 두 신문과 ‘문장‘, ‘인문평론’ 두 잡지를 폐간해 버린다. 조선어학회 사건은 바로 그와 같은 시대의 역사적 산물이다. 그네들은 이 사건을 치안유지법 사건으로 다루었는데, 이는 오늘날의 국가보안법이다. 한국어와 한글의 중차대한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만하다.
안동역에 내리니 역사가 여느 역사들과 달리 대합실 안에 한자로 안동역이라 써붙였다. 이런 고장에서 열리는 한국어와 한글 행사라니! 택시는 풍광 좋은 안동호 쪽으로 달려 ‘구름에’라는 전통 한옥 동네로 나를 태워간다.
나는 거기서 이육사와 김동리의 일제말기 넘어서기에 관한 이야기를 할 참이다. 이육사가 이곳 안동 출신이고, 김동리는 경주 사람이다. 이 둘은 모두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의 어둠을 밝힌 밤하늘의 별 같은 존재들이었다. 한 사람은 육신은 죽어 정신만을 해방 저편에 넘겨 주었고 다른 한 사람은 살아서 경계를 넘어 해방 문단의 주역으로 떠오른다. 둘 모두 더없이 중요하지만 나는 희생된 사람에게 애착이 간다.
이육사를 말할 때면 언제나 그가 퇴계 이황의 14대손임을 되새기게 된다. 그러니까 육사, 이원록은 안동 유학의 ‘정통적’ 후손으로 ‘혁명적인’ 독립운동에 나아간 사람이다. 그는 여러 번 투옥되기를 거듭하다 1943년에 피체되어 1944년 1월 16일 베이징의 일본 총영사관 감옥에서 불과 마흔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언젠가 내가 이육사에게 이끌린 것은, 오장환이며 김기림 같은 당대의 시인들이 일본에서, 그리고 경성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며 그에게 엽서며 편지를 부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였다. 이 사실에 주목하자 하나의 그림이 확연하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러니까 육사는 1940년을 전후로 한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그 밤하늘의 별들을 연결하는 네트워크의 중심점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이제 한옥들 늘어선 동네로 차가 들어선다. 나는 여기서 무슨 이야기를 할 테지만 그런 것은 육사가 살아간 치열한 삶에 대한 거친 스케치에 불과할 뿐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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