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가 소환한..50년전 '별들의 멜로디'

한겨레 2021. 10. 22. 21:5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재익의 노래로 보는 세상][한겨레S] 이재익의 노래로 보는 세상 _ 데이비드 보위 '스페이스 오디티'
데이비드 보위. 소니뮤직 제공

나로호가 추락하던 날, 필자는 나로우주센터 근처에 있었다. 라디오 피디가 왜 거길 가 있었냐고? 지난 21일 누리호가 거둔 절반의 성공을 축하하는 분위기 속에서, 필자는 10년 전 위대한 도전을 거듭했던 나로호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렇다. 누리호 전에 나로호가 있었다. ‘나로’라는 이름은 우주센터를 지은 섬 외나로도(外羅老島)의 이름에서 따왔다. 우주발사체 이름을 따서 섬 이름을 붙였다고, 순서를 반대로 아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2003년부터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1단 로켓은 러시아가 개발하고 상단 로켓은 국내 기술로 개발해 2단짜리 로켓을 만들었다. 2009년 8월에 최초로 발사를 시도했지만 목표 궤도에 진입하지 못했고, 두번째 시도는 2010년 6월에 있었다. 첫번째 실패에서 문제점을 해결해 두번째는 확실히 성공할 거라는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언론에서도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평소 과학에는 담쌓고 살던 사람들도 기대에 부풀었다. 그 분위기는 라디오 프로그램 <두시 탈출 컬투쇼>에까지 번졌다.

나로호 발사 직전에 성대한 공개방송을 하자는 기획이 당시 연출자였던 필자에게 전달되었다. 진행자인 컬투 형님들도 무척이나 적극적이었고 뭔가 솟아오르는 기운이 프로그램과도 잘 맞는다는 생각도 들어 공개방송을 추진했다. 난관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일단 너무 멀었다.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 ‘컬투쇼’의 자존심상 아무나 무대에 세울 순 없기에 인기 가수들을 섭외하려 하는데, 공연장 위치가 전남 고흥이라는 얘기를 하면 매니저들이 난감해했다. 땅끝마을 있는 곳이냐며 묻는 매니저들도 있어서, 거긴 옆 동네 해남이라고 설명해주기도 했다. 어쨌든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순간을 축하해달라는 읍소와 앙탈로 가수들을 섭외했다. 비스트, 인순이, 화요비, 데프콘 등등 아직도 고마운 이름들이다.

무대를 점검하기 위해 제작진은 전날에 먼저 고흥으로 내려가 숙소를 잡았다. 20년 넘는 세월 동안 전국팔도로 숱하게 공개방송을 다녀본 필자에게도 그날 공개방송은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파도가 밀려드는 바닷가 모래사장에 덩그러니 만들어놓은 무대와 그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앉아 계시던 할머님들의 유유자적한 모습은 정말이지 잊히지 않는다. 아이돌 그룹까지 데리고 왔는데 관객 절반이 어르신들이라며 울상이 된 작가들에게 막상 공개방송을 시작하면 팬들이 몰려올 거라고 위로했던 기억도 난다. 공연의 백미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들려온 나로호의 추락 소식이었다. 뭐? 로켓이 추락했다고? 우째 그런 일이…. 서울로 올라오는 멀고 먼 길 위에서 나는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뭐에 홀려서 이런 무리한 공개방송을 밀어붙였을까?

우리가 축하하려고 했던 나로호의 두번째 도전은 실패했지만, 2년 반 뒤 세번째 도전은 성공했다. 그리고 지금 러시아의 도움 없이 완전한 우리 기술로 만든 누리호는 무려 700㎞를 날아올랐다. 단순히 고도만 높아진 게 아니다. 로켓에 탑재하는 인공위성의 중량을 비교해봐도 100㎏에 불과했던 나로호에 비해 누리호는 15배까지 가능하다. 비록 궤도에 위성을 안착시키지는 못했지만 누리호는 그 무거운 위성을 싣고 700㎞라는 목표 고도까지 날아올랐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누리호가 발사에 성공하던 날, 오랜만에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를 감상했다. ‘스페이스 오디티’. 무려 50년도 더 전인 1969년에 나온 노래인데,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고 감동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제목도 유머러스하게 비틀고, 우주로 나간 비행사 톰 소령이 지상의 우주센터와 교신하는 내용을 가사로 담고 있다. 마치 로켓이 발사되는 것 같은 느낌을 살린, 몽환적인 기타 연주도 인상적이다. ‘통제실, 들리는가? 나는 톰 소령이다. 나는 문을 열고 우주로 나와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떠다니고 있다. 오늘따라 별들이 매우 다르게 보인다.’

이 노래가 나온 1960년대에 이미 달에 우주비행사들을 착륙시켰던 미국에서는 이제 민간인들이 우주여행을 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 지금 세상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던 것처럼, 10년 전에 만원이었던 비트코인이 1억원을 넘보리라고 상상할 수 없었던 것처럼, 앞으로 10년 뒤 우주가 우리에게 얼마나 더 가까워져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화성에 사람이 발을 디디려나? 유로파 같은 목성의 위성에서 생명체의 흔적이 발견될까?

최근에 매우 흥미롭게 읽은 책을 소개하면서 칼럼을 마칠까 한다 . ‘ 우주 쓰레기가 온다 ’. 저자 최은정 박사는 현재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인공위성과 우주 쓰레기의 위험을 예측하고 분석하는 일을 한다 . 그는 이를테면 지상의 우주감시자인 셈이다 . 특히 영화 <그래비티>를 재미있게 본 분들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책이다 . 그러고 보니 , 영원히 청춘일 것 같던 데이비드 보위도 우리 곁을 떠나 밤하늘의 별이 되었다 . 그렇다 .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와서 별로 돌아간다 . 철학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그러하다.

이재익 |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시사특공대> 진행자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