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의 비애, 더 서늘하고 지독하게 [책과 삶]
[경향신문]
다 먹을 때쯤 영원의 머리가 든 매운탕이 나온다
김현 지음
문학동네 | 200쪽 | 1만원
독특한 제목의 이 시집은 ‘시인의 말’부터 심상치 않다. 시인은 “연기를 시작합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무대 위에 흐를 곡들을 차례로 소개한다. 김현의 다섯 번째 시집 <다 먹을 때쯤 영원의 머리가 든 매운탕이 나온다>는 이 ‘시인의 말’처럼 한 편의 연극 무대처럼 쓰였다. 일반적인 시집처럼 부가 아니라 세 개의 막으로 구성됐고, 1막이 열리면 서늘하고 자조적인 유머로 가득 찬 목소리들이 발화하기 시작한다.
소수자의 사랑과 삶을 담은 시들을 꾸준히 발표해온 김현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더 서늘하고 지독한 풍자와 유머로 시대를 살아가는 소수자의 실존적 비애를 이야기한다. 문을 여는 시 ‘리얼한 연기를 위해 불을 피웠다’에선 살아남기 위해 “자본주의의 리얼”이 된 화자가 “마음이 우스워질수록/ 몸이 무너져내립니다/ 사십 년을 몸에 힘 넣고 살았으니/ 사십 년은 몸에 힘 빼며 살아가도/ 의미가 있겠죠”라고 자조한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시 ‘토종닭 먹으러 가서 토종닭은 먹지 않고’에선 사회 진보를 부르짖는 청년들에게 조용히 희생됐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지금도 민족의 울분으로 젖을 찾고/ 진보당원으로서 평화통일에 앞장서고/ 여길 어디라고 들어와 씨발년아”라고 외치던 ‘오라버니’에게 화자는 “술 한잔 하고 그만 사라지세요”라고 말한다. “대지, 어머니, 뽀오얀 생명의 줄기 타령이나 하시다가/ 저한테 한 짓을/ 쓰세요 오라버니”
일상 언어와 시적 언어를 넘나드는 거침 없고 때로 냉소적인 위트 속에 삶에 대한 애틋한 시선이 담겨 있는 시집이다. 잔혹하고 냉담한 현실에 낙담하면서도 사랑을 잃지 않는 여러 삶의 단면들을 섬세하고 사려 깊게 포착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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