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 눈빛에 사로잡혀 숲으로 간 19세, 그리고 7년..저는 노루인간입니다 [이미지로 여는 책]
[경향신문]
노루인간
조프루아 들로름 지음·홍세화 옮김
꾸리에 | 252쪽 | 1만8800원
“우리는 30분 동안이나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어. 완전히 마법 같은 순간이었어. 그는 존재만으로도 내 마음을 풍요롭게 했어.”
첫눈에 청년을 사로잡은 존재는 사람이 아니었다. 노루였다. 후에 ‘다게’라는 이름이 붙는, 늠름하면서도 자상한 노루에게 매료된 19세 저자 조프루아 들로름은 26세가 될 때까지 꼬박 7년을 숲에서 살았다. “자기랑 같이 숲을 탐험해보지 않겠냐”는 듯 눈빛을 보내는 노루의 초대장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숲에서의 삶은 그야말로 ‘노루적’이었다. 텐트도, 은신처도, 침낭도 없었다. 몸에 지닌 것이라곤 배낭 두 개와 내복, 울 스웨터, 양말, 모자, 운동화가 전부였다. 노루의 생활 리듬을 좇아 추운 밤 대신 낮에 쪽잠을 잤고, 대개 이파리나 도토리 등 채집한 식물로 배를 채웠다.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이따금씩 카메라를 든 것 외에는, 자연과 완벽하게 동화된 삶이었다. 그는 노루에게 길들여진 인간, 즉 ‘노루인간’이 됐다.
<노루인간>은 문명과 떨어진 프랑스 숲 한가운데에서 노루와 더불어 지낸 저자의 경이로운 체험을 담은 책이다. 어린 시절부터 제인 구달 등 자연과학 서적을 탐독하며 야생의 자연을 흠모했던 저자는 초등학교 때 학교 교육을 그만두고 “인간의 굴레라는 족쇄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숲이 나를 맞이해 줄 것”이라는 믿음 속에 살았다. 10시간, 15시간, 20시간…. 숲에서 지내는 시간을 차츰 늘려가며 자연과의 완전한 동화를 꿈꿨다.
마침내 숲에서 24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능해졌을 때 그는 인생을 바꾼 노루 ‘다게’를 만난다. 기꺼이 곁을 내어준 다게 덕분에 그는 시푸앵트, 에투알, 셰비 등 다양한 개성을 지닌 노루 43마리와 새로운 가족을 꾸린다. 비로소 “숲속 동물들을 본떠서 현재의 순간을 살아가는 것”, 늘 생각하던 “윤리적 안정”을 찾게 된 것이다.
현재 37세인 저자는 야생동물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숲을 떠난 지 11년이나 흘렀는데, 이제와 과거의 모험담을 책으로 쓴 이유는 무엇일까. 옮긴이 홍세화는 “숲의 노루들이, 동물들이, 야생의 자연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알리고 “인간의 개발을 멈추도록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서”라고 짐작한다. 홍세화의 표현대로 “지금까지 인간이 자연과 동물을 대해왔던 소유, 지배, 개발의 시선을 거두어들이라는 시위”처럼 느껴지는 책이다. 경계심 없는 눈빛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사진 속 동물들의 모습이 마음에 남는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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