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 골프소설 15] 중세와 근대의 문턱
[헤럴드경제 스포츠팀] 에딘버러 인근에 위치한 왕실 전용 리스골프장. 1491년의 어느날. 그까짓 골프 스윙이 뭐 그리 대단하겠는가라는 투로 국왕 제임스 4세는 옆에 서있던 캐디에게 드라이버를 달라고 했다. 어드레스 자세를 취한 국왕은 힐끔 전방을 주시했다. 골퍼들이 하던 흉내는 낼 참이었다. 있는 힘을 다해 휘둘렀지만 페더리 공은 30야드 앞에 굴러 처박혔다.
옆에서 지켜보던 신하들은 고개를 다른 곳으로 애써 돌리며 외면하는 척했다. 생각대로 안 맞아서 무안해진 마음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왕은 다시 한번 풀 스윙을 해보았다. 이번에는 좀 전보다 스윙 아크를 작게 하면서 볼을 맞추는 데 주력했다. 첫번째 스윙보다 조금 멀리 나갔지만 역시 50야드 안쪽이었다.
왕이 듣기로는 드라이버를 치면 평균 어른들의 경우 150야드에서 2백 야드는 족히 나간다고 했다. 그는 은근히 화가 났다. 골프채를 들고 있는 인간의 특성은 공통적이었다. 누구든 골프채를 들고 볼 앞에 서면 ‘나는 프로선수처럼 칠 수 있다. 내가 치면 남들보다 더 멋있게 날아간다’라며 자기 최면을 거는 게 인간의 속성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자신의 욕심뿐이었다.
골프볼은 절대로 인간이 머리속에 그린 상상대로 날아가지는 않는다. 단지 스윙대로 정직하게 날아가는 것이 골프볼이었다. 왕은 골프채를 던져버리고 머쓱해서 궁전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날 내기에서 진 대가로 함께 친 귀족에게 3실링을 빼앗긴 게 억울했다. 이 기록은 15세기 말에도 골프가 왕가에서 행해진 놀이라는 공식 문서였다.
골프 금지령이 내려진 1457년 이래 아직까지 풀리지 않았지만 왕가에서만큼은 예외였다. 반면 일반 대중들에게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골프는 동면에 들어갔고 사람들의 뇌리에서 서서히 사라져 가던 중이었다.
15세기 후반은 유럽 남쪽나라인 이탈리아에서 이른바 문예부흥 운동이 시작되는 때였다. 인본주의에 입각한 이 르네상스는 서서히 서유럽 여러나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어둡고 암울했던 중세의 끝자락은 막을 고하고 있었다. 세상은 아직도 혼란했다. 1484년부터 교황 인노캔티우스 8세가 주창한 마녀사냥론이 서유럽을 휩쓸기 시작했다. 전 유럽을 통해 고문과 악행이 저질러지며 유행처럼 번지는 인본주의 사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반인륜적인 일이 동시에 자행되고 있던 시절이었다.
<근대 유럽의 마녀사냥>, <유럽의 마녀사냥>, <중세의 마술>같은 수없이 많은 마녀사냥에 대한 저술에 따르면 마녀사냥은 전 유럽에 걸쳐 1천 년 이상 지속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었다고 생각되는 여자들은 모두 처형장으로 끌려나왔다.
그들은 대형 드럼통 속에 들어있는 물을 거꾸로 매달려 마시야 했다. 손가락마다 손톱을 찔러 피가 나오게 하는 고문도 자행됐다. 발바닥을 인두로 지지며 불에 달구는 고문도 당했다. 사지를 매달아 신체를 잡아늘이는 고문도 서슴지 않았다. 돌을 매달아 강물 속에 산채로 빠뜨렸다. 죽어서 나오면 사람이었고 살아 있으면 마녀라고 생각했다.
프랑스에서 먼저 시작된 이 마녀사냥은 전 기독교 국가로 퍼졌다. 제네바에서는 3개월 동안 5백여 명이 숨졌고, 독일은 트레이 보스 지방에서 7천 명이, 작센시에선 하루에 1백 명까지도 처형됐다. 상 아라만 마을은 하루 아침에 2백 명의 여인들이 몰살당했다. 라부르 마을도 4개월 동안 6백여 명이 죽어나갔고 스트라스브루크 한 마을은 40년 동안 5천 명이 처형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 유럽의 여성들이 모조리 처형될 판이었다.
르네상스운동이 한창 꽃을 피우는 유럽의 한가운데에서 한쪽은 인간을 존중하는 인본주의가, 다른 쪽은 비인간적인 마녀사냥이 이루어지고 있는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마녀사냥은 지배 세력의 중심에 있던 교황과 국왕, 귀족, 학자 등 사회의 지도층이 주도를 이룬 인간 말살 정책이었다.
르네상스는 교회 입장에서는 종교를 위협하는 사상이었다. 교회는 신앙의 중심으로서 지위를 확고히 했고 왕실은 국민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왕권 확립을 해야 했다. 이같은 위정자들의 착오가 인류의 역사에서 일어나서는 안될 마녀사냥의 명분이었다. 이 같은 와중에서 나라의 기강을 세우기 위해 고심했던 스페인, 포루투칼 등 서유럽의 나라들은 근대사회로의 역할에 한몫을 담당하고 있었다. 1492년 상인 컬럼버스가 이사벨여왕의 청으로 인도로 향하다가 아메리카라는 신대륙을 발견했다.
골프가 동면 하는 동안 중세는 암흑기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새로운 시대를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며 강의를 하고 있던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에 대한 자신의 학문적 체계를 세우던 시대도 1500년이었다.
* 필자 이인세 씨는 미주 중앙일보 출신의 골프 역사학자로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박세리 우승을 현장 취재하는 등 오랜 세월 미국 골프 대회를 경험했으며 수많은 골프 기사를 썼고, 미국 앤틱골프협회 회원으로 남양주에 골프박물관을 세우기도 했다. 저서로는 <그린에서 세계를 품다> <골프 600년의 비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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