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 '긴급조치' 피해자 배상 마땅" 하급심서 잇단 대법 판례 깨기

전현진 기자 입력 2021. 10. 22. 21:12 수정 2021. 10. 22.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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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재판부 “위헌적 조치” 불법 인정
판례 변경·‘구제 특별법’ 등 제기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으로 피해를 본 이들이 최근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하급심에서 승소했다. 하급심이 대법원 판례에 반하는 판결을 내놓으며 판례 변경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22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법 민사36부(재판장 황순현)는 김명식 시인에게 국가가 2억4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지난 20일 선고했다. 김 시인은 예수회 수사 생활을 하던 중 5·16 군사쿠데타와 유신체제를 비난하는 유인물을 만들어 배포해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1977년 징역 3년 및 자격정지 3년이 확정됐었다.

재판부는 “위헌적 긴급조치의 발령과 그에 따른 일련의 국가작용으로 발생하는 개별 공무원의 행위는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했다. 김 시인 사건을 대리한 이정일 변호사는 “긴급조치 관련 국가배상 소송의 여러 쟁점들의 취지를 밝혀주는 깔끔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판결은 사실 대법원 판례에 정면으로 반한다. 2015년 3월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박 전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이 위헌·무효라면서도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에 정치적 책임을 질 수 있어도 “국민 개개인에 대한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은 지지 않는다”며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의 이 판결에 대해선 당시에도 비판이 이어졌다. 대법원 선고 6개월 뒤인 2015년 9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이 판례를 거론하며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가 헌법 문언에 명백히 위배돼 대통령의 헌법수호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고의 내지 과실에 의한 위법행위에 해당한다며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판례와 반대되는 결론이다. 이후 이처럼 하급심에서 판례를 거부하며 긴급조치 발령의 불법행위를 인정하는 판결이 이어졌고, 대법원은 2015년 판례를 근거로 하급심 판결을 기각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러자 대법원은 최근 관련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심리하고 있다.

윤진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판례가 변경돼도 손해배상 청구가 이미 기각된 분들은 사법절차로는 구제받을 길이 없다”며 “구제하려면 특별법 등 입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2015년 이후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가 확정된 건 200여명에 이른다. 하급심과 대법원에서 소송 계속 중인 이들은 187명이다. 지난해 11월 관련 특별법이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아직 입법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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