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그 나쁜 놈'을 떠올리며 리모컨 ON

한겨레 2021. 10. 2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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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명문 대학교 캠퍼스를 당당하게 걷고 있는 한 여자.

다른 교수는 강의 평가에서 욕을 듣자 작성자를 색출하려고 해킹을 한다.

김지윤 교수라는 인물은 극 중에서 미국 사회의 많은 것을 상징한다.

능력 있는 흑인 여자 교수에게 종신교수의 자격을 주고 싶지만 '공정한 기회'와 '과정의 공정' 사이에서 끝없이 의심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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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의 OTT 충전소]박상혁의 OTT 충전소 _ 미드 <더 체어>

미국 명문 대학교 캠퍼스를 당당하게 걷고 있는 한 여자. 오늘부터 오랜 전통의 영문학과 학과장이 된 김지윤 교수다. 넓은 학과장 방의 화려한 의자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순간, 갑자기 의자가 부러진다. 이 무슨 불길한 징조인가. 영미권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한국계 배우 샌드라 오가 책임 프로듀서로 제작에 참여했고 직접 주인공을 맡은 미국 드라마 <더 체어>다. 국내에서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이 세상에 ‘일을 덜 하게 되는 승진’이란 절대 없는 법. 사실 영문학과에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학생들은 점점 인문학을 외면하고, 평생 공부만 해온 동료 교수들은 요즘 세상에선 하나같이 사고뭉치들이다. 짝사랑하고 있던 빌은 수업 중에 나치의 손동작을 했다가 파시스트로 몰린다. 깔끔한 사과 대신 학생들에게 토론을 제안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커진다. 다른 교수는 강의 평가에서 욕을 듣자 작성자를 색출하려고 해킹을 한다. 김 교수는 영문학과를 하나씩 개혁해 바로잡고 싶다. 하지만 총장은 나이 많고 연봉 높은 종신교수들의 리스트를 주면서 “그들이 은퇴하거나 쫓겨나거나 아니면 죽은 뒤에 하자”고 말한다. 주변 사람들은 “넌 이제 학과장이니 칼자루를 쥐고 흔들라”고 하지만, 학과장이 되어도 막상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주변에 상처받는 사람들만 늘어난다.

김지윤 교수라는 인물은 극 중에서 미국 사회의 많은 것을 상징한다. 최초의 유색인종 학과장이며 최초의 여성 학과장이다. 싱글인 그는 어렵게 멕시코계 여자아이를 입양했다. 모두가 박수 받을 일이지만 곱지 않게 보는 시선 역시 존재한다. 능력 있는 흑인 여자 교수에게 종신교수의 자격을 주고 싶지만 ‘공정한 기회’와 ‘과정의 공정’ 사이에서 끝없이 의심받는다. 딸을 위해 멕시코 명절인 ‘죽은 자의 날’을 준비해야 하고, 아버지를 위해 딸을 한국 친척의 돌잔치에도 데려가야 한다. 한국의 어르신들은 수군거린다. “쟤는 왜 한국 애를 입양하지 않았지?”

요즘은 전세계인이 달고나 뽑기를 하고, 짜파구리를 만들어 먹는 세상이지만, 아직도 미국 드라마에서 한국어 대사와 우리의 일상이 등장하는 것은 신기하다. 아버지와 김 교수는 항상 한국어로 이야기한다. 영어만 쓰는 딸이 엄마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도 한국어로 처음 이야기하는 장면으로 표현한다. 돌잔치의 메인 이벤트는 돌잡이이고, 소주를 마실 때는 윗사람 앞에서 돌려 마시는 한국식 ‘주도’가 등장한다. 일본 회사라서 헬로키티를 싫어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도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다. 작가를 찾아보니 제니퍼 킴이라는 한국계 이름이 보인다.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 순간에 누구보다 기뻐하던 샌드라 오는 ‘골든 글로브상’에서 2005년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로 여우 조연상을 받았고, 2019년엔 드라마 <킬링 이브>로 여우 주연상을 받은 미국 연예계의 거물이다. 총장은 위기의 영문학과를 살리려고 할리우드 스타를 데려오는 방법을 선택한다. 이때 등장하는 배우가 우리에게 <엑스파일>로 유명한 데이비드 듀코브니다. 김 교수가 멀더 요원이 무슨 강의를 하냐고 발끈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극 중 김지윤 교수는 47살이다. 다른 교수들이 보기엔 의욕만 넘치는 어린 학과장이다. 그러나 요즘 젊은 학생들이 보기에는 그냥 ‘꼰대’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사이의 오해와 불신, 그리고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문제가 생기면 항상 규정과 원칙을 들이대지만, 사실은 돈에 의해 움직이는 조직의 모습도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편당 30분, 총 6회의 짧은 로맨틱 코미디이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고, 우리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어떤 조직이든 불만이 있고 문제가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같지만 아무도 자신이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 퇴근 후에 회사의 ‘나쁜놈’을 떠올리며 보기에는 이만한 드라마가 없을 것이다 . 특히 최근에 팀장이 된 사람이라면 웃다가 갑자기 눈물을 쏟을 수 있으니 조심하자.

박상혁 | 씨제이이엔엠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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