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대장동서 사라진 임대주택 1,000가구

박일근 입력 2021. 10. 22. 18:03 수정 2021. 10. 2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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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국민임대 1,603가구→221가구
서민 희생시켜 개발꾼 몫 키운 셈
이익 극대화해 민관 나눠먹는 게 공정일까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세계 주거의 날 공동회원들이 4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동시다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회원들은 세계 주거의 날을 맞아 집값 하향 안정화, 공공임대주택 확대, 강제퇴거 중단 등을 촉구했다. 뉴스1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 사업의 공급 주택 수는 총 5,761채다. 이 가운데 무주택 저소득 서민을 위한 국민임대(30년) 주택은 221가구에 불과하다. 전체의 4%도 안 된다. 공공임대(5년, 10년) 400채를 포함해도 전체 임대주택 수는 621가구로, 10%선에 그친다.

공익을 위한다며 관이 나서 원주민 토지를 강제 수용한 사업에서 이처럼 임대주택 비율이 낮은 건 이례적 일이다. 관은 논과 밭을 용도변경해 주고 그린벨트도 풀었다. 당연히 임대주택을 가능한 한 많이 공급해야 마땅했다. 도시개발법도 관이 50% 이상 출자한 공공시행사는 건설 물량의 25% 이상을 임대주택으로 짓도록 하고 있다. 시행사 ‘성남의뜰’은 성남도시개발공사가 50%+1주를 출자했다. 대장동도 당초 사업자 공모지침서엔 2개 블록에서 모두 1,603가구의 국민임대 아파트를 공급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그러나 2016년 6월 1,532가구, 같은 해 11월 다시 1,421가구로 줄었다. 2019년에는 이 중 1,200가구가 공공임대 400가구, 공공분양 800가구로 전환됐다. 국토부 지침에 임대주택 비중은 10%포인트까지 조정할 수 있고 임대주택건설용지가 유찰되면 분양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반서민적인 사업이 됐다.

업계에선 임대주택을 얼마나 줄이느냐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분양 아파트가 늘어 이익이 커진다. 실제로 임대주택이 사라지는 사이 ‘화천대유’가 성남의뜰로부터 수의 계약해 가져간 아파트 4개 블록 분양물량은 1,778가구에서 1,964가구로 늘었다. 용적률도 180%에서 195%로 올라갔다. 임대는 줄이고 용적률은 올려줘 개발꾼이 가져갈 몫만 키워준 꼴이다.

최대 주주로서 공공의 이익을 지키고 극대화하는 데 앞장서야 할 지자체가 오히려 공익을 희생시켜 사익을 키우는 데 공모한 셈이다. 임대주택을 빼앗긴 무주택 저소득 서민들 앞에서도 대장동 사업을 과연 치적이라고 강변할 수 있을까. 얼마를 환수했느냐보다 더 중요한 문제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아파트 단지 모습. 뉴스1

성남시 백현동도 마찬가지였다. 지방 이전을 앞둔 한국식품연구원의 자연녹지 부지를 준주거지로 용도 변경해 준 건 그 땅에 모두 임대주택을 짓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지어진 건 일반분양 아파트가 1,100여 채이고, 임대주택은 단 120여 가구였다. 시가 업체에서 기부채납을 받는 대신 분양 전환을 해 줬다는 게 관계자들 설명이다.

사실 수도권에 집중된 정비사업이나 토지개발은 대부분 이런 방식이다. 정부와 각 지자체는 서민들의 주거 복지를 위한 주택 정책을 펴기보다 물량 위주의 공급을 위해 업자와 손을 잡고 그들의 수익을 챙겨주는 길을 걸어 왔다. 정치적 목적과 자본의 논리가 결합됐다. 공공이 지어야 할 도로나 공원, 학교도 개발업자들에게 용도를 변경해주거나 용적률을 올려준 뒤 기부채납으로 받곤 했다. 그러나 기부채납은 공짜가 아니다. 이런 구도에서 천화동인의 일확천금도 가능했다. 그사이 임대주택은 사라지고 도시는 숨 막히는 고밀도 아파트 숲으로 변했다.

네덜란드는 우리에게 시사점을 준다. 네덜란드의 공공임대주택 비중은 35%나 된다. 8% 안팎인 우리나라의 4배도 넘는다. 네덜란드는 120년 전 국가가 주택 문제에 직접 개입하는 내용의 주택법을 제정했다. 각 지자체가 비영리단체를 통해 주택 건설 자금을 지원하는 게 핵심이다. 이를 통해 임대주택 공급을 도모했다. 우린 예산 부족을 핑계로 공익을 희생시켜 업계의 요구를 들어준 뒤 그 이익을 나눠먹는 사실상 민관 공생 체제였다. 그 중심엔 인간이 아닌 탐욕과 부패가 있었다. 이를 공정이라 할 순 없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

박일근 논설위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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