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1등급 '반토막'..상위권 학력붕괴 시작됐다

한동훈 기자 입력 2021. 10. 22. 17:08 수정 2021. 10. 22. 18: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험대 오른 교육 평준화 정책]
'수월성 교육' 홀대 정책기조 영향
국영수 우수학력 비율 동반 감소
[서울경제]

# 12.7% vs 4.9%

지난해 수능 영어 1등급(90점 이상) 비율과 올 9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재 모의평가 영어 1등급 비율 수치다. 2018학년도부터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 방식으로 바뀐 이래 지난 9월 모평 영어 1등급 비율은 역대 최저 수준이었다. 올 수능을 앞두고 실시된 평가원 및 시도 교육청 모의고사에서 영어 1등급 비율은 단 한번도 10%를 넘은적이 없었다.

교육 당국은 이를 두고 EBS 교재·강의와 수능 연계율이 올해부터 70%에서 50%로 낮아진 영향이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교육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한 교사는 “상위권 학생의 경우 시험 난도에 가장 둔감한 집단인데, 상위권이 반토막 난 것은 단순히 EBS 직접연계 비중 축소 때문은 아니다”라며 “현장에서는 상위권의 학력 저하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기초학력에 미달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는 분석은 줄곧 제기돼 왔다. 무경쟁·무시험을 장려하는 현 정부의 평준화 정책과 코로나19가 맞물려서 정상적인 학습활동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이 급속하게 늘고 있다는 게 최근 교육 당국의 통계로 확인됐다. 문제는 현 정부가 ‘수월성 교육’까지 등한시하면서 상위권 학생의 학력 저하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 업계가 이전까지는 학력 양극화를 걱정했다면 이제는 상위권 붕괴에 따른 하향 평준화를 우려하는 상황이다.

22일 평가원의 ‘2020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고등학생의 국어·영어·수학 우수학력(4수준, 교육과정 80% 이해) 학생 비중이 모두 전년 대비 감소했다. 정부는 매년 전국 고2·중3의 약 3%를 표집해 학업 성취도를 평가한다.

우선 고등학교 국어의 우수 학력 비중 비율은 2019년 28.8%에서 2020년 23.3%로, 영어는 40%에서 37.1%로 두드러지게 감소했다. 수학은 29.3%에서 29%로 줄었다. 중학교도 국어가 같은 기간 39.7%에서 36.5%로, 수학은 17.9%에서 17.7%로 감소했다. 지난해 중·고등학교 국·영·수 모든 과목에서 기초학력 미달(1수준, 교육과정 20% 미만 이해) 비율이 일제히 늘어났는데 동시에 수업을 제대로 이해하는 상위권 학생마저 줄어드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수학 교사로 근무하는 A 씨는 “이차함수를 제대로 이해하는 학생이 한 반에서 손에 꼽을 정도”라며 “중간·기말고사를 어렵게 내지 않는데도 90점 이상 받는 학생 수가 4~5년 전보다 20~30% 줄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절대평가인 수능 영어도 상위권 학생 감소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로 지적된다. 올 들어 치러진 수능 모의고사 영어과목 1·2등급 비율은 16.4%(교육청 3월), 23.4%(교육청 4월), 19.3%(교육청 7월), 24.5%(평가원 6월), 21.8%(평가원 9월)로 2020년학년도 수능 31.1%, 2021년학년도 수능 41.8%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영어 시험이 패턴이 급격하게 바뀐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1·2등급 비율이 확연히 준 것은 상위권들의 하향 평준화 현상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상위권 감소의 원인으로 평준화를 강조하고 수월성 교육을 도외시하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를 꼽는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현 정부가 자율형사립고 등을 폐지하기로 하면서 수월성 교육 타깃은 영재고·과학고 등에만 한정돼 있다”며 “국제 경쟁력 확보를 위한 교육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상위권 학생의 감소는 장기적으로 인재 양성 측면에서도 부정적이다. 임 대표는 “상위권이 감소한다면 인재 발굴이 상당 기간 ‘블랙아웃’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며 “공부 잘하는 학생은 더 잘하도록, 학력 부진 학생은 기초학력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교육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동훈 기자 hooni@sedaily.com김보리 기자 boris@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