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딸이 컸을땐 낯선 이야기이길.." 미투는 이렇게 시작했다

이한나 2021. 10. 2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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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슬 블로어 / 수전 파울러 지음 / 김승진 옮김 / 쌤앤파커스 펴냄 / 1만7000원
2017년 10월 할리우드 유명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 폭로 기사가 뉴욕타임스에 보도되고 영화배우 알리사 밀라노 제안으로 해시태그(#MeToo)를 다는 운동이 급속히 확산됐다. 그러나 이보다 8개월 앞선 그해 2월 19일 공유차업체 우버에서 겪은 성희롱과 조직적 은폐, 보복 등을 본인 블로그에 폭로한 수전 파울러가 있었다.

'휘슬 블로어(whistle blower)'는 호루라기를 불어 지적하는 사람으로 내부고발자를 뜻한다. 실리콘밸리 역사상 비상장기업 중 가장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던 스타트업(새싹기업) 우버를 고발한 저자가 가난과 성적 취향 등을 이유로 성장과정에서 경험한 부조리와 차별을 설득력 있게 이 책에 담았다.

출근 첫날 상사가 성관계를 암시하는 잡담을 던지는 상황에 놀란 저자는 아이비리거 출신답게 철저히 기록을 모으고 그 나름 합리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하지만 회사는 유능한 직원이었던 가해자를 감싸기 급급했고 되레 저자만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다. 저자는 좌절했고 '직장 내 괴롭힘담당 TF(태스크포스)' 관계자 등으로부터 "네가 문제"라고 비난받으며 무너지는 모습을 상술한다.

명문대 출신 백인 여성도 겪어야만 하는 부조리한 상황에 여성 독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대목이 자주 나온다. 회사 상사나 동료의 부적절한 발언이나 행동에 당황하면서도 그때 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나 울분을 토했던 경험도 떠오른다.

특히 여성이 희소한 실리콘밸리에서 '다양성 점수' 등 각종 제도적 장치를 통해 바람직한 기업문화를 조성하려는 의지가 실제로 얼마나 무력한지 지적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우버 같은 기업은 입사하자마자 채용조건의 일부로 '강제 중재' 조항에 서명하는 관행이 있다. 포천 500대 기업의 80%, 미국에서 6010만명이 이 조항에 묶여 고용주를 상대로 소송할 수 없다고 역자는 알려준다. 저자는 미국 기업들이 이 조항을 없애는 입법활동도 적극 도왔다.

애리조나 빈민촌 출신인 저자는 9식구 대가족의 둘째로 정규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사랑 가득한 부모님과 친구 등 주변인들 관계에 힘입어 궁극적으로 엄청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녀가 호루라기를 불고난 후 멀리 한국 사회 곳곳에서도 '미투' 고발이 이어졌지만 2차 가해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거나 심지어 세상을 등지는 이들이 아직도 나오고 있다.

책장을 덮은 후에도 저자가 자신의 딸에게 남긴 서문 글귀가 깊은 울림을 준다. '네가 커서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무렵이면 여기에 묘사된 세상이 완전히 낯설고 이상해 보이길 바란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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