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임기 내내 홀로코스트 사죄..강국 독일 이끈 '무티 리더십'

김유태 입력 2021. 10. 22. 17:03 수정 2021. 10. 22. 19: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메르켈 리더십: 합의에 이르는 힘 / 케이티 마튼 지음 / 윤철희 옮김 / 모비딕북스 펴냄 / 2만6000원
퇴임을 앞두고 최근 이스라엘을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건립된 야드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에서 헌화하고 있다. [매경DB]
그리스 채무위기와 시리아 난민위기에서도 '정치의 한 장면'을 만들어내며 독일을 유럽의 리더로 승격시킨 주인공. 난봉꾼에 가까운 마초 권력자에 맞서 민주주의 질서를 굳게 지켜온 지도자.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효율적이며 체계적인 제노사이드를 기획한 나라를 세계인의 우러름을 받는 모범국으로 성장시킨 주인공.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설명하는 수사들이다.

16년간 리더십의 절대 표본으로 숭앙 받은 메르켈 총리가 곧 리더의 권좌에서 물러난다. 스스로 퇴임을 공식화한 지금까지도 그의 지지율은 75%를 넘나든다. 도대체 메르켈에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마치 생중계하듯 메르켈의 집무실을 4년간 자유롭게 드나들며 '정치인 메르켈'을 관찰한 책이 출간됐다. 비유하자면 '앙겔라 메르켈 밀착 취재 다큐멘터리'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메르켈은 사실 '삼중 아웃사이더'였다. 공산당 휘하 동독에서 자랐고, 법학이나 정치학이 아닌 물리학자였으며, 여왕이 단 한 번도 즉위한 적 없는 희귀한 유럽 국가의 여성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목사의 딸이었다. 무신론을 신봉하는 공산당 정권에서 루터교 목사는 부르주아 성직자로 의심을 받기에 적당했다.

메르켈이 개를 무서워한다는 걸 알고 2007년 정상회담에서 개를 풀어놓은 푸틴과 메르켈. 저자는 두 사람의 관계를 "제일 짜증스러운 관계이자 제일 오래 지속된 관계"라고 평가한다. [사진 제공 = 모비딕북스]
그런 메르켈에게 과학은 일종의 도피처였다. 동독 라이프치히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메르켈은 '금지된 땅' 서독의 소식을 전하는 라디오에 귀 기울였다.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대통령 선거 토론이었다. 메르켈은 싸구려 위스키와 체리주스를 섞은 칵테일을 학생회관에서 팔기도 했다. 그가 섞은 칵테일과 자본의 교환은 자유시장경제의 압축본과 같았다. 그 무렵, 메르켈은 사회주의 정당 입당과 슈타지(MfS·동독 국가보안부)의 협력 요구를 거부하는데 그의 선택은 훗날 정치 인생의 준거점이 된다.

양자화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과학아카데미에서 일하던 메르켈의 '과학자의 삶'은 1989년 베를린 장벽과 함께 사라진다. 장벽이 붕괴된 자리 너머에는 세상과 인간이 있었다. 나치 12년, 공산당 40년의 억압에 짓눌린 동독인 다수가 정치를 택하던 시절이었다. 메르켈은 정당 '민주적 각성(DA)'에 가입하는데 DA 사무실 컴퓨터를 처음 조립한 그가 30년 뒤 세계 정치사에 획을 그을 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

당대 독일 총리였던 헬무트 콜은 메르켈을 눈여겨봤다. '동독 출신, 그리고 여성.' 콜에게 메르켈은 그 자체로 '계획'이었다. 변변한 기반이 없고 내각 중 제일 어렸지만 두 동강 났던 두 나라를 통합하기에 메르켈은 매력적인 콘텐츠였다. 이후 메르켈은 여성과 환경 분야 장관직을 8년간 수행한다. 과학자였던 메르켈이 완벽에 가까운 신임을 얻은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가 과학자였기 때문이었다. 메르켈은 말한다. "난 과학자예요. 문제들을 가장 작은, 가장 잘 관리할 수 있는 부분들로 쪼개는 것을 좋아해요. 감정이 끼어들 여지는 없어요."

홀로코스트와 아우슈비츠를 잉태한 나라의 21세기 새 지도자는 예루살렘에서 고개를 숙였다. 독일과 이스라엘과의 관계 회복은 메르켈 행정부의 핵심 의제였다. 2008년, 검은 정장을 입고 예루살렘 의사당 연단에 선 메르켈은 고작 60년 전에 자신들이 '쓸어버리려고 했던' 히브리 민족에게 사죄의 연설을 시작했다. 당시 메르켈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살인자의 언어'(독일어)가 아니었다. 바로 청중이 사용하는 히브리어였다. 세계 정상과의 만남 후일담도 책에 생생하다. '또' 지각한 러시아 푸틴이 "으음, 우리는 이런 식으로 산다"고 대꾸하자 메르켈은 답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살지 않아요." 메르켈은 버락 오바마가 꿈꾼 지도자상이었다. 2011년, 메르켈이 오바마에게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자 미셸은 속삭였다. "있잖아요. 버락은 당신을 끔찍이 아껴요." 기분이 좋아진 메르켈은 언론에 그 얘기를 능청스레 흘린다. 유발 하라리의 명저 '사피엔스'를 읽은 공통점을 가진 메르켈과 오바마는, 그러나 스노든의 러시아 망명 이후 최악의 관계로 치닫는다.

리더로서의 삶 이면에서 메르켈은 그저 평범한 개인으로 살았다. 독일인은 그런 메르켈에게 넉넉한 표를 선물했다. 잘하는 요리는 감자 수프, 그의 베를린 아파트는 전쟁 전에 지은 4층짜리 월세라는 점 외에 총리와 그의 남편은 사생활을 철저히 감췄다. 한 정치적 동지는 '제안 감사해요 A.M'이라는 내용이 전부인 이메일을 공개한 뒤 메르켈의 신뢰를 다시는 되찾지 못했다. ABC뉴스 서독 특파원을 지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독일 주재 미국대사였던 남편을 통해 2001년 메르켈 총리와 인연을 맺었고 메르켈 허락을 받아 최근 4년간 총리 집무실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메르켈 전기라 해도 과언이 아닌 책이다.

메르켈이 물러나는 지금, 대한민국은 내년 3월 결정될 새로운 리더십을 갈망하고 있다. 메르켈은 우리 대선주자와 유권자에게도 유의미한 메시지가 될 수 있을까.

[김유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