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임기 내내 홀로코스트 사죄..강국 독일 이끈 '무티 리더십'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설명하는 수사들이다.
16년간 리더십의 절대 표본으로 숭앙 받은 메르켈 총리가 곧 리더의 권좌에서 물러난다. 스스로 퇴임을 공식화한 지금까지도 그의 지지율은 75%를 넘나든다. 도대체 메르켈에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마치 생중계하듯 메르켈의 집무실을 4년간 자유롭게 드나들며 '정치인 메르켈'을 관찰한 책이 출간됐다. 비유하자면 '앙겔라 메르켈 밀착 취재 다큐멘터리'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메르켈은 사실 '삼중 아웃사이더'였다. 공산당 휘하 동독에서 자랐고, 법학이나 정치학이 아닌 물리학자였으며, 여왕이 단 한 번도 즉위한 적 없는 희귀한 유럽 국가의 여성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목사의 딸이었다. 무신론을 신봉하는 공산당 정권에서 루터교 목사는 부르주아 성직자로 의심을 받기에 적당했다.
양자화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과학아카데미에서 일하던 메르켈의 '과학자의 삶'은 1989년 베를린 장벽과 함께 사라진다. 장벽이 붕괴된 자리 너머에는 세상과 인간이 있었다. 나치 12년, 공산당 40년의 억압에 짓눌린 동독인 다수가 정치를 택하던 시절이었다. 메르켈은 정당 '민주적 각성(DA)'에 가입하는데 DA 사무실 컴퓨터를 처음 조립한 그가 30년 뒤 세계 정치사에 획을 그을 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
홀로코스트와 아우슈비츠를 잉태한 나라의 21세기 새 지도자는 예루살렘에서 고개를 숙였다. 독일과 이스라엘과의 관계 회복은 메르켈 행정부의 핵심 의제였다. 2008년, 검은 정장을 입고 예루살렘 의사당 연단에 선 메르켈은 고작 60년 전에 자신들이 '쓸어버리려고 했던' 히브리 민족에게 사죄의 연설을 시작했다. 당시 메르켈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살인자의 언어'(독일어)가 아니었다. 바로 청중이 사용하는 히브리어였다. 세계 정상과의 만남 후일담도 책에 생생하다. '또' 지각한 러시아 푸틴이 "으음, 우리는 이런 식으로 산다"고 대꾸하자 메르켈은 답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살지 않아요." 메르켈은 버락 오바마가 꿈꾼 지도자상이었다. 2011년, 메르켈이 오바마에게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자 미셸은 속삭였다. "있잖아요. 버락은 당신을 끔찍이 아껴요." 기분이 좋아진 메르켈은 언론에 그 얘기를 능청스레 흘린다. 유발 하라리의 명저 '사피엔스'를 읽은 공통점을 가진 메르켈과 오바마는, 그러나 스노든의 러시아 망명 이후 최악의 관계로 치닫는다.
리더로서의 삶 이면에서 메르켈은 그저 평범한 개인으로 살았다. 독일인은 그런 메르켈에게 넉넉한 표를 선물했다. 잘하는 요리는 감자 수프, 그의 베를린 아파트는 전쟁 전에 지은 4층짜리 월세라는 점 외에 총리와 그의 남편은 사생활을 철저히 감췄다. 한 정치적 동지는 '제안 감사해요 A.M'이라는 내용이 전부인 이메일을 공개한 뒤 메르켈의 신뢰를 다시는 되찾지 못했다. ABC뉴스 서독 특파원을 지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독일 주재 미국대사였던 남편을 통해 2001년 메르켈 총리와 인연을 맺었고 메르켈 허락을 받아 최근 4년간 총리 집무실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메르켈 전기라 해도 과언이 아닌 책이다.
메르켈이 물러나는 지금, 대한민국은 내년 3월 결정될 새로운 리더십을 갈망하고 있다. 메르켈은 우리 대선주자와 유권자에게도 유의미한 메시지가 될 수 있을까.
[김유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잔인했는데..피비린내 나는 韓 드라마에 열광한 이유
- "젠더간 세대간 소통..언론이 지켜야 할 가치죠"
- 강력한 필치로..엑스레이처럼 인간 내면을 꿰뚫어 보다
- [BOOKS] 임기 내내 홀로코스트 사죄..강국 독일 이끈 '무티 리더십'
- "골프장 이곳저곳서 인증샷 찰칵" 날개 단 골프패션
- [인터뷰] ‘1947 보스톤’ 임시완 “국가대표란 마음으로 달렸죠”
- LFP 공세로 세계 시장 잠식…K배터리 ‘당혹’ [BUSINESS]
- 쌍둥이 개그맨 이상호♥김자연 결혼...사회 김준호-축가 더넛츠·UV [MK★이슈] - MK스포츠
- 이찬원, 이태원 참사에 "노래 못해요" 했다가 봉변 당했다
- 안혜경 남편, 누군가 했더니…‘빈센조’ 촬영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