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행사에서 동네 축제로, 영화제의 색다른 변신

성하훈 입력 2021. 10. 2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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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문턱 낮추는 영화제, 찾아가는 상영 호평 잇달아

[성하훈 기자]

 부산 북구 만덕동 물소리공원에서 진행된 부산영화제 동네방네비프 상영
ⓒ 박찬형 감독 제공
 
"한 달 동안 주민들이 원활한 행사 준비를 위해 회의를 했고, 행사기간 이틀 동안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방역 및 행사 진행 등에 직접 힘을 보탰습니다. 부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와 고통을 겪기도 했는데 주민 참여가 1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성공적이었습니다."

지난 13일과 14일 이틀간 부산 북구 만덕동에서 부산영화제 동네방네비프 행사를 진행한 박찬형 감독은 현장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박 감독은 또한 "주민들이 26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서부산권에도 찾아와 준 것에 열띤 호응과 지지를 보냈다"며 "코로나19로 인해 사전 등록제로 엄격히 제한된 인원에 아쉬움을 나타냈으나, 앞으로도 서부산권에 부산영화제가 관심 가져주기를 바라는 모습이었다"고 덧붙였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특징적인 프로그램으로 주목받은 동네방네비프는 기존 영화제의 모습과는 다른 색깔이었다. 넓은 공간,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 함께 무료로 즐기는 영화는, 치열한 매표 경쟁이 필요한 기존 영화제의 분위기와는 달랐다.  

1996년 부산영화제를 시작으로 국내 영화제가 잇달아 생겨나는 과정에서 나타난 특성은 관객이 몰려든다는 것이었다. 화제작을 먼저 보고 싶은 마음과 쉽게 볼 수 없는 영화들을 만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관객들의 욕구 덕분에 국내 주요 영화제는 성공했고, 성장을 이어갔다. 좋은 작품만 선정해 놓으면 알아서 관객들이 찾아온다는 인식이 고착됐다.

하지만 동네방네비프는 이런 흐름과는 다르게 관객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관객이 모일 만한 곳을 찾아가 스크린을 걸었고, 동떨어진 관객들은 가까이 다가와 준 영화제에 박수를 보낸 것이다.

열성 관객 중심에서 보편성 확대
 
 전주영화제 골목상영 모습
ⓒ 전주영화제 제공
 
최근 들어 국내 영화제들에서 보이는 특성은 관객들이 찾아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관객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한정된 마니아들이 즐기는 축제가 아니라 더 많은 관객의 참여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사실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은 일반적인 관객들과는 다르게 영화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한 유명 감독은 "개봉하면 극장을 찾는 일반 관객들과 한 편의 영화를 위해 원거리까지 비싼 차비를 들여 찾아오는 영화제 관객들은 영화를 대하는 마음가짐에서 차이가 있어, 똑같이 비교할 수 없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국내 영화제는 열정이 있는 관객 중심의 행사였고, 상대적으로 평범한 관객들의 접근성은 떨어지는 면이 있었다. 표 구하기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예매를 못 한 관객들은 영화제 중심에 들어오지 못하고 주변부에 머물 수밖에 없던 것이다.

보편성보다는 특별한 행사로 굳어지면서 영화제가 열리는 지역에 산다고 해도 소외감을 느낀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부산영화제가 커뮤니티비프라는 새로운 형식의 영화제를 시작하면서 그동안의 약점을 보완하고 있는데, 점차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골목상영도 관객에게 다가가는 영화제의 단면을 보여줬다. 남부시장 하늘정원과 영화의 거리(객리단길), 동문 예술거리에서 선착순 입장으로 진행된 야외상영은 극장 상영과는 다른 정취를 엿보였다. 상영작은 <국도극장: 감독판>과 <겨울밤에>, <파도치는 땅> 등으로 전주시네마프로젝트를 통해 제작된 작품들이었다.

극장에서 상영된 대부분 영화가 매진된 가운데 예매를 하지 않고 영화를 보려는 관객들에게 좋은 활로가 됐다. 영화제에서 영화 한 편 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보니,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영화 상영이 관객에게 매력있게 다가간 것이다.

산책하러 나갔다가 홀린 듯이 본 영화
 
 10월 15일과 16일 이틀간 지역의 소공원에서 진행된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움프의 가을극장’
ⓒ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제공
 
영화제 기간에 국한되지 않고 행사가 끝난 이후 꾸준히 관객을 만나는 행사도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독립영화제가 매해 주요 상영작들을 추려 인디피크닉이란 이름으로 여러 지역을 찾아가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데 점차 다른 영화제에로 확산되고 있다. 한시적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닌 지속적인 상영을 통해 영화제의 존재감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개최됐던 울주세계산악영화제는 10월 15일과 16일 이틀간 움프의 가을극장이란 이름으로 지역의 소공원에서 야외상영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역시도 준비된 좌석이 가득 찰 만큼 주민들의 관심을 받았다. 

울주영화제 측은 "2018년 개막작 <던월>을 상영했는데, 200명 정도가 관람했고, 지역민들에게 산악영화에 대한 흥미를 유발했다"며 "접하기 힘든 산악영화의 진수를 맛볼 수 있어 좋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고 밝혔다. 한 관객은 "산책하러 나갔다가 홀린 듯이 끝까지 보고 왔다"면서 만족감을 나타냈다.

전주영화제는 지난 9월 9일~12일까지 'FALLing in JEONJU'(이하 '폴링인전주') 행사를 개최했다. 매년 가을 전주 영화의거리 일대를 배경으로 열리는 폴링인전주는 그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특별히 화제가 되었던 작품을 선별하여 상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봄에 개최되는 전주국제영화제가 가을에 별도의 프로그램을 마련해 영화인과 시민, 관객이 함께 한 해의 성과를 축하하고 기념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순회상영회 모습
ⓒ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제공
 
지난 6월 개최된 평창국제평화영화제도 영화제가 끝난 이후 양양, 영월, 화천 등으로 찾아가는 상영을 이어가고 있다. 감독이 직접 관객들과 만나는 GV(관객과의 대화)도 곁들여지면서 높은 호응을 얻었다. 감독과 직접 만나 대화는 기회가 적다보니 좋은 반응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양양 작은영화관 운영을 맡고 있는 양양문화재단 김현우 대리는 "개관 이후 이런 행사가 처음이고 큰 호응을 얻어 감사하다"며 "앞으로 개봉영화를 상영하는 기능에 머물지 않고 이런 상영전을 자주 개최해 복합 영상문화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월시네마 은순기 관장도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상영관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을 만날 수 있어 너무 감사했다"며 "이런 의미있는 상영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영화 워크숍으로 단편영화 제작
 
 부산영화제 커뮤니티비프 영도구 주민 영화제작 워크숍.
ⓒ 부산영화제 제공
 
부산영화제 커뮤니티비프의 경우 올해 부산 영도구 지역에서 영화교육과 워크숍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두 편의 단편영화를 제작해 영화제 기간 중 상영하기도 한 것. 보던 영화에서 만드는 영화로 진화한 것이다.

영화제가 지역 주민에게 다가가 문화참여와 접근성을 보장하고, 영화를 통해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새로운 협업 모델이었다는 평이다.

열성 관객 중심에서 탈피해 보편성을 넓히고 문턱을 낮추려는 국내 영화제들의 자세가 좋은 평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제들이 이를 더욱 확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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