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보음 20번 "묵살"..기계 끼어 숨진 날, 현장지휘자도 없었다

최예린 2021. 10. 22.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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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생산물량을 맞추느라 전원 차단 없이 설비점검을 하던 40대 노동자가 갑자기 작동한 기계설비에 끼어 사망했다.

이어 "이씨의 부서(가공부)는 다른 부서에 비해 생산량이 적다는 이유로 물량압박을 받고 작업은 늘 밀려 있는 상황이었다. 전원을 끄고 설비가 완전히 멈추는 데까지 5분 이상 걸리는데 하루에도 숱하게 울리는 경고음을 확인하기 위해 매번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노동자는 아무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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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죽음, 산업재해]한국지엠보령공장 40대 노동자 사망
잦은 설비 고장에 생산물량 시간 압박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 작업지휘자 없이
갑자기 작동한 기계설비에 끼어 숨져
지난 20일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한 한국지엠(GM)보령공장 설비 모습. 금속노조 제공

정해진 생산물량을 맞추느라 전원 차단 없이 설비점검을 하던 40대 노동자가 갑자기 작동한 기계설비에 끼어 사망했다.

해당 설비는 잦은 이상 경고음이 울려 현장에서는 최근까지 “(근본적으로)정비를 해달라”고 요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작업 중 자동으로 작업이 멈추는 안전장치가 차단돼 있었고, 법에 규정된 사고 방지를 위한 작업지휘자 없이 홀로 작업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 작업지휘자 없이 홀로 작업 중 참변

22일 전국금속노동조합과 충남 보령경찰서 등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 20일 밤 10시7분께 충남 보령시 주교면에 있는 한국지엠보령공장에서 이아무개(48)씨가 제품을 움직이는 기계(젠트리 로더)와 제품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을 동료 노동자가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92조 3항에 의하면 사업주는 정비 등 작업하는 과정에서 적절하지 않은 작업 방법으로 인해 기계가 갑자기 가동될 우려가 있는 경우 작업지휘자를 배치하는 등 필요한 조처를 해야 한다. 그러나 사고 당시 현장에는 작업지휘자 없이 이씨 혼자만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자동차 하부 부품 생산 공정의 설비운전자로 설비를 점검하면서 경보음이 울릴 때마다 제대로 움직이도록 조처하는 업무를 해왔다. 정규직인 그가 관리한 설비만 열 대가 넘는다. 이날 사고 당시에도 설비에서 이상 ‘에러코드’가 뜨고 경고음이 울리자 수리를 위해 설비로 들어갔고, 갑자기 설비가 작동하면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보령경찰서 관계자는 “현장에 폐회로텔레비전(CCTV)가 없었으나, 해당 설비에서 에러코드가 뜬 사실은 확인했다. (이씨가) 에러코드를 보고 사고 지점으로 접근하지 않았을까 추정하고 있다”며 “공장 곳곳에 설비에 이상이 생겼을 때를 대비한 안전장치가 있었으나 이 또한 작동하지 않았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92조 1항을 보면, 정비하거나 청소, 검사, 수리 등을 할 경우 (전원을 차단하고)운전을 정지한 뒤 작업을 해야 했다. 현장에서는 설비의 문을 열면 자동으로 멈추는 안전장치인 ‘인터로크’가 설치돼 있었으나 당시에는 문이 열려도 기계가 작동할 수 있도록 철판(바이패스키)이 꽂혀 있어 안전장치는 무용지물이었다.

보령고용노동지청 관계자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92조 1항, 3항 포함) 전반을 위반했는지 살펴보고 있다”며 “관련해 회사에 안전 수칙은 있는지, 작업 매뉴얼은 있지는 등도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량 밀려…기계 중단할 수 없어

박정현 금속노조 한국지엠보령지회 노동안전부장은 “혼자서 여러 대의 설비가 제대로 가동하는지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설비는 최소 하루 2∼3번, 많게는 20번 넘게 경보음이 울렸다. 설비가 오래됐고, 작업 때 쓰는 가공유 때문에 센서에 이물질이 껴서 오류가 자주 발생했다”며 “실제 기계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센서 오류로 알람이 잘못 울린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씨의 부서(가공부)는 다른 부서에 비해 생산량이 적다는 이유로 물량압박을 받고 작업은 늘 밀려 있는 상황이었다. 전원을 끄고 설비가 완전히 멈추는 데까지 5분 이상 걸리는데 하루에도 숱하게 울리는 경고음을 확인하기 위해 매번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노동자는 아무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노조는 경고음이 자주 울리는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회사에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강정주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노동자들은 회사에 설비 정비가 필요하다고 보고했고 조처해달라고 요구했지만, 회사는 아무런 조처 없이 설비를 돌리는 데 급급했다”며 “회사가 설비를 제대로 수리하고, 설비운전자들이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설비 정비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을 방치하지 않았다면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고 지적했다.

강 국장은 “한국지엠 사업주는 더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고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즉각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령고용노동지청은 해당 공정에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고 근로감독관과 안전보건공단 직원 등 10명을 투입해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노선주 보령고용노동지청 산재예방지도과장은 “사고 조사 뒤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며 “사고 조사와 함께 사고 난 부분 외에도 해당 사업장이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 기준을 전반적으로 준수했는지도 감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지엠 관계자는 “경찰과 고동노동청의 사고 조사 결과가 나온 뒤에야 회사 입장을 정리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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