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도쿄·경성에서 새 조선을 꿈꾸다..'조선 사회주의자 열전'

문학수 선임기자 2021. 10. 22.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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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조선 사회주의자 열전

박노자 지음|나무연필|312쪽|1만9000원

대안적 근대의 정초를 마련한 조선의 사회주의자들. 왼쪽부터 남만춘, 김만겸, 박치우, 임화, 허정숙. | 나무연필 제공


마르크스주의가 한반도에 유입된 경로는 크게 세 가지다. 일단 ‘혁명의 나라’ 러시아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직접 배우고 경험한 이들이 있었다. 러시아에서 이주민 2세로 태어났던 남만춘(1892~1933), 모스크바의 국제 레닌대학에 유학했던 박헌영(1900~1955) 같은 이들이 그런 경우다. 일본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세례를 받은 이들도 있다. 1922년 도쿄에서 결성된 유학생 사회주의자 그룹 ‘북성회’의 멤버들이 대표적이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에 유학했던 김명식(1890~1943)도 일본에서 마르크스주의를 학습하고 귀국해 논객으로 활약했다. 또 하나의 경로는 아이러니하게도 경성제국대학이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설립한 이 대학의 교수 중에는 몇몇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있었다. 철학과의 미야케 시카노스케(1898~1982)가 대표적이다. 그에게 배운 조선인 제자들도 스승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에서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을 강의하는 박노자 교수가 조선인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책을 내놨다. ‘조선 사회주의자 열전’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10명의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평전이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철학자 신남철(1907~1958)이다. 서울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27년 경성제대 철학과에 입학, 시카노스케 교수의 제자가 됐다.1931년부터 조교 생활을 하면서 스승과의 학연을 이어갔다.“문학 소년 출신”이었던 그는 1933년부터 약 3년간 동아일보 학술 담당 기자로 일하며 문예비평을 쓰기도 했다. 특히 하이네를 좋아했다.‘혁명 시인 하이네, 이성과 낭만의 이원고(二元苦)와 철학’(<동광>, 1931)은 경성제대 졸업 직후의 글이었다. 1930년대 조선의 지식사회에까지 불어닥친 하이데거 열풍에 대해서는 ‘나치스의 철학자 하이데거’(<신동아>, 1934)라는 글로 대응했다.

저자는 ‘주체’(主體)라는 단어를 빈번히 사용했던 신남철에 대해 “주체적 개인이 출현하지 않으면 해방적 근대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지녔던 철학자”라고 평한다. “전 세계를 시야에 두면서도 구체성을 놓지 않는 길을 고민했다” “보편적 세계사 속에서 조선을 모색했다”는 평가도 이어진다. 신남철은 해방 후 월북해 김일성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1956년 대대적으로 벌어졌던 숙청(8월 종파 사건)의 바람 앞에 위기를 맞았다. “남한의 인텔리 출신” “자유주의자”로 비판받으면서 대학에서 밀려나 2년 뒤 건강 악화로 사망했다. 저자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모스크바에 유학했던 이들이 돌아와 김일성대학의 실권을 잡던 시기”라면서 “황장엽도 그런 인물들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한다.


남만춘과 김만겸(1886~1938)은 그간의 국내 사회주의 운동사에서는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시베리아 지역에 근거를 두고 있던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의 주요 활동가였다. 물론 이르쿠츠크파 멤버들 중에는 여운형(1886~1947), 안병찬(1854~1921) 같은 국내 출신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핵심은 “조선인이면서도 조선인이 아닌 이들, 바로 재러조선인 2세들”이었다. 남만춘은 러시아 극동부의 블라고슬로벤노예에서 태어났다. 김만겸은 함경북도 경원군 태생이라는 설도 있으나, 저자는 “재러조선인 2세대”로 설명하면서, “블라디보스토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민족주의 운동을 벌이다가 사회주의로 넘어간 경우”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조선과 러시아의 경계에서 사회주의를 꿈꾼 디아스포라들”이었다. 러시아 볼셰비키에 입당했던 두 사람은 러시아와 조선을 오가면서 “보다 넓은 시야로 조선사회를 바라보는 이론”을 만들어냈다. 조선공산당의 핵심 분파인 ‘화요회’의 이론적 멘토가 바로 두 사람이었다.

저자는 “디아스포라 지식인들”에게 적잖은 지면을 할애하는데, 남만춘과 김만겸 외에 최성우(1898~1937)와 양명(1902~?)도 그런 경우다. 최성우도 재러조선인 2세였으며 코민테른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양명은 중국 베이징대학에 유학하면서 사회주의자로 변신했으며, 1925년 경성으로 돌아와 조선일보에 다니면서 조선공산당에 가입했다. 이후 상하이와 모스크바를 무대로 활약했다. 저자는 “급진파 사회주의자였던 두 사람은 특히 이론가로서 주목할 만하다”며 “몸은 먼 타국에 있었지만 식민지 조선에 대한 관찰은 치밀했다”고 평한다.

박치우(1909~1949)는 “파시즘의 기원을 찾아나선 이론가이자 비운의 빨치산”이었다. 임화(1908~1953)는 “한국적 근대를 모색한 유기적 지식인”이었으며, 김명식(1890~1943)은 “식민지시대 최고의 문장가, 한국적 좌파의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었다. “국제주의적 연대를 중시”했던 한위건(1896~1937)은 “중국공산당 노선을 파고들어 활약한 이념형 운동가”였다.

마지막 챕터에 나오는 인물은 허정숙(1902~1991)이다. 조선희의 소설 <세 여자>의 주인공으로도 등장하는 그는 상당한 재산가이자 변호사였던 허헌(1884~1951, 김일성대학 초대 총장)의 딸이었다. 1920년대 신문에 “조선의 콜론타이”로 소개되곤 했다. 러시아의 급진 페미니스트였던 콜론타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언어 능력이 출중했다. 허정숙도 영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에 능통했다. 두 사람은 자유분방한 연애로도 유명했다. 허정숙은 1947년경 “아버지를 따르던 수십명의 사람들과 함께 월북”했으며, “이후로는 국가 가부장 체제를 용인”하며 살았다. 저자는 “낯 뜨거울 정도로 김일성을 찬양했던”, 월북 이후 허정숙의 면모에 대해 “힘센 이와 약한 이의 동맹”이라고 평한다.

10인은 허정숙 등을 제외하곤 대부분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저자는 “대안적 근대의 정초를 마련한 인물들, 지금의 우리에게도 논쟁적 사안을 앞서 고민했던 사회주의자들” “혹독한 시기에 선구적으로 미래를 내다본 이들”이라고 일괄한다. 특히 기존의 조선 공산주의 운동사에서 별로 중시하지 않았던 “디아스포라 사회주의자들”을, 저자는 각별한 애정과 관심으로 복원했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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