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병수발 72세 아내의 반전.. "남편 밟고 때려 숨지게 해"

김준호 기자 입력 2021. 10. 22. 11:43 수정 2021. 10. 22.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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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방법원 전경. /울산지법

10년 넘게 몸이 불편한 남편을 부양했던 70대 아내. 2년 전 남편이 쓰러졌다며 직접 119에 신고했지만 끝내 남편은 숨졌다. 남편을 잃은 유족으로 보였던 이 아내는 2년 뒤, 남편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 받았다. 본인은 억울하다고 항변했지만, 국민참여재판 국민 배심원과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울산지방법원 형사11부(재판장 박현배)는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A(72)씨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고 22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19년 10월5일 오후 3시30분쯤 울산 북구 주거지 안방에서 남편 B(69)씨와 말 다툼을 하던 중 뺨과 눈 부위를 손으로 때리고, 넘어뜨린 뒤 가슴과 복부를 발로 여러 차례 차거나 밟는 등 다발골절 및 장간막(복부의 내장 등을 유지하도록 하는 넓은 막) 파열 등의 상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A씨가 처음부터 남편 B씨를 숨지게 한 피의자였던 것은 아니었다. A씨는 사건 당일 “남편이 다쳤다”며 119에 직접 신고했다. B씨는 10년전쯤부터 간경화 등으로 몸이 불편해 보행보조장치가 없으면 정상적 거동이 힘들었다고 한다. 오랜 기간 남편 B씨가 몸이 불편해 일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A씨가 병수발과 함께 아파트 청소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고 한다.

A씨 신고로 출동한 119구급대원 등이 심폐소생술을 하며 B씨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B씨는 끝내 숨졌다.

경찰은 사건 발생 며칠 뒤 A씨에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다. 단순 사고가 아니라 남편을 때려 숨지게 한 것으로 본 것이다. 경찰은 약 1년 간 수사 끝에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고, 올해 초 검찰은 A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지난 20일 A씨에 대한 1심 재판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렸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숨진 B씨 몸은 성한 곳이 없었다. 좌우로 12개씩 이뤄진 갈비뼈 양측 24개에 모두 골절이 보였다. 오른쪽 겨드랑이 부위부터 아래로 6개의 갈비뼈도 추가로 부러진 상태였다. 숨진 B씨 사진을 본 배심원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앙상한 팔 다리에 방청석에선 “미이라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왜소한 체구였다.

부검 결과 B씨 직접적 사인은 장간막 파열로 인한 다발성 출혈이었다. 두 사람 사이엔 자녀가 없었다고 한다. 집 안에서 B씨에게 강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내인 A씨 뿐이었다는 것이다. 방 안 구조 상 그 정도의 상해를 입힐 요인이 없었다는 것도 검찰 주장의 근거였다. 이날 A씨가 막걸리를 마신 음주 상태였다는 점도 밝혔다. 검찰은 재판부에게 A씨에 징역 5년을 선고해달라고 했다.

A씨 측은 검찰 공소사실에 대해 허구라고 맞받았다. A씨 측은 “넘어져 있는 피해자를 발견하고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 머리를 흔들고 얼굴 부위를 쳤을 뿐이다”며 “피해자를 넘어뜨리게 하거나 가슴과 복부를 발로 차거나 밟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피해자 스스로 넘어지면서 상해가 발생했을 수 있고, 심폐소생술 과정에서 갈비뼈 골절 등 상해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B씨가 지난 2018년에도 넘어져 갈비뼈가 4개 이상 부러지는 사고가 있었던 점, 둘 사이가 평소 좋았던 점이 반박의 근거였다. 증인으로 나온 숨진 B씨의 친동생도 “형수가 그럴 일 없다”며 선처를 바라기도 했다.

이날 국민참여재판은 공판부터 배심원 평의까지 12시간가량 이어졌다. 배심원 7명은 고심 끝에 모두 A씨가 유죄라고 봤다. 응급실 의사와 부검의, 부검감정서를 감정한 법의학교수 등이 증인으로 출석해 “단순히 넘어져서 생긴 상처로 보기 어렵다”고 밝힌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응급실 의사는 “오른쪽 옆구리가 심하게 부어 있을 정도로 외상이 심각해 큰 교통사고를 당한 환자인 줄 알았다”고 했다. 부검의는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의 충격이 있으려면 찰과상과 멍자국 등이 있어야 한다”며 “피해자 손등에 발생한 멍자국의 경우 ‘방어흔’이다”고 설명했다. 법의학교수의 경우 “장간막은 넘어져서 파열되긴 어렵다”면서 “갈비뼈 골절의 경우 최소 5층 높이에서 추락하는 정도의 힘”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배심원 4명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나머지 3명은 징역 4년의 의견을 냈다.

박현배 판사는 “피고인이 배우자인 피해자에게 다발골절 및 장간막 파열 등의 상해를 가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피해자가 입은 상해가 가볍지 않고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가 발생한 점 등에 비추면 죄질이 좋지 않다”면서 “다만 오랜 기간 홀로 생계를 책임지면서 간병한 점, 다소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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