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죽었는지는 상관없다, 자살방지 창살 하나면 끝이다..'아이폰을 위해 죽다'

백승찬 기자 2021. 10. 2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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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아이폰을 위해 죽다

재니 챈 등 지음·장규식 등 옮김 | 나름북스 | 410쪽 | 1만8000원

2010년 폭스콘 공장에서 잇단 자살 사건이 일어나자 폭스콘은 투신을 막기 위해 창문을 잠그고 창살을 설치했다. | 나름북스 제공


2010년 중국 도처의 폭스콘 공장에서 노동자 18명이 자살을 시도했다. 14명이 죽었다. 4명은 살아남았지만 심각한 상해를 입었다. 나이는 17~25세이며, 모두 농민공 출신이었다. 농민공이란 농촌을 떠나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온 이주노동자를 뜻한다.

애플의 아이폰은 대부분 폭스콘에서 제조된다. 애플은 디자인, 마케팅 등의 핵심 기능만 미국에 남겼다. 아이폰, 아이패드, 에어팟, 애플워치 등 대부분 제품은 애플의 해외 하청기업에서 생산된다.

<아이폰을 위해 죽다>는 폭스콘 공장의 자살 사건 이후 기획된 책이다. 폭스콘은 중국 내에서만 100만명에 가까운 노동자를 고용한 전자제품 기업이다. 폭스콘 경영자에게 100만명 중 14명이라는 자살 인원은 큰 숫자가 아닐 수도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젊은 중국 노동자들이 죽음으로 전하고자 한 의미가 있으며, 그 의미를 규명하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책에는 1970년 11월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사망한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 이야기도 나온다. “그의 자살은 후속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영감을 주었고, 한국 시민사회의 변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서술된다. 저자들은 폭스콘 노동자들이 21세기 중국의 전태일이라고 본다. 2010년 저자들은 중국, 대만, 홍콩의 연구원들과 협력해 선전, 상하이, 쿤산, 항저우 등 9개 도시 폭스콘 제조 현장에서 잠입 연구했다. 자살자의 유족 혹은 산재로 병원에 입원한 이와 만나기도 하고, 휴식일에 유흥가로 나온 노동자와 인터뷰하기도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취재도 있었다.

폭스콘은 ‘세계에서 가장 큰 전자제품 제조기업’이다. 대만 출생의 궈타이밍이 설립했다. 궈타이밍은 2020년 대만 총통선거에 나설 정도의 거물이다. 궈타이밍은 1980년대 세계 기업들의 중국, 동남아시아 투자 붐을 타고 1988년 중국 선전에 폭스콘을 세웠다. 중국 노동자들은 임금 수준은 낮지만 교육과 훈련 수준은 높아, 숙련된 저임금 노동자를 찾는 기업이 진출하기 좋았다.


폭스콘은 급속히 성장했다. 중국 진출 3년 만인 1991년 대만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정직원 수는 1996년 9000명에서 2003년 10만명, 2012년 130만명까지 늘어났다. 2018년에는 86만명대로 줄었는데, 이는 노동력 상당 부분을 하청, 용역 노동자로 채웠기 때문이다. 중국 연해의 선전에 처음 생긴 폭스콘 공장은 청두, 충칭, 창춘 등 내륙으로 진출했다. 이렇게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기업은 지역에서 큰 환영을 받는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모두 폭스콘에 기반시설을 지원하고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폭스콘 노동자가 정신적으로 의지하도록 요구되는 책이 있다. <궈타이밍 어록>이다. “성장, 너의 이름은 고통이다. 가혹한 환경은 좋은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지 않으면, 태양은 떠오르지 않는다. 매분, 매초 효율성을 소중히 여겨라.” 이 어록은 궈타이밍 초상화와 함께 폭스콘 공장 벽을 장식하곤 한다. 스마트폰 나사를 조이다가 실수를 한 노동자는 그 벌로 궈타이밍 어록의 한 구절을 300번 외쳤다고 한다.

궈타이밍은 “리더십은 의로운 독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는 노무관리의 어려움에 대해 “인간도 동물인 만큼 100만마리의 동물을 관리한다는 것은 내게 골칫거리다”라고 말했다. 2010년 잇단 자살 사건이 일어났을 때 폭스콘은 자살 원인을 규명하거나 노동조건을 개선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투신을 막기 위해 창문을 창살로 막고 자살 방지 그물을 설치했다. 악령을 물리친다며 승려를 데려온 적도 있다. 이후 고용계약을 작성할 때 ‘자살 금지 서약서’를 받기도 했다. 서약서에 따르면 노동자의 자살에 따른 폭스콘의 법적 책임은 대부분 회피된다.

자살의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확실한 것은 폭스콘 공장의 노동환경이 무척이나 가혹하다는 사실이다. 급하게 공장을 만들고 생산을 시작하느라 화장실, 구내식당 등 부대시설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것은 흔한 일이다. 근무 중 대화는 당연히 금지된다. 여러 명이 교대근무를 하며 기숙사 한 방을 공유한다. 덕분에 공장은 24시간 돌아간다. 휴식일은 한 달에 1~2일 정도다. 갑작스러운 연장 근무도 다반사다. 제대로 된 보호 장비를 지급받지도 못한다. 미세 알루미늄 입자가 날아다니는데 천 마스크 하나가 전부다. 4m 높이 사다리 위에서 안전모, 안전벨트 없이 작업하다가 떨어져 좌뇌 절반을 절제한 노동자도 있다.

2011년 3월 폭스콘 청두 아이패드 공장에 직업학교 학생들이 도착하고 있다. 폭스콘은 인턴으로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려 했다. | 나름북스 제공


공장의 생산 계획에 따라 직원들의 근무지를 배치하는데도 제약이 없다. 한 노동자는 선전에서 일하다가 옌타이로 전근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두 도시는 1805㎞ 떨어져있다. 새 근무지는 월급도 더 적었다. 현재 동거인, 친구들과 떨어져 살기 싫었던 노동자가 전근에 반발하자 폭스콘은 “전근이냐, 퇴직이냐” 택일을 요구했다. 궈타이밍은 노동자를 ‘동물’에 비유했지만, 동물도 그렇게 쉽게 거주지를 옮기지 않는다. 폭스콘의 인력 재배치는 차라리 상품의 이동에 가깝다.

폭스콘은 성장하면서 노동력 부족을 절감했다. 지역 공무원들까지 나서 폭스콘 채용을 도왔다. 미숙련 학생 인턴의 유입은 이 같은 상황에서 당연한 결과였다. 10대 중후반 학생들은 전공과 상관없이 폭스콘에 배치됐다. 학생들은 기술훈련을 받기는커녕 조립라인에 배치돼 단순 작업을 반복해야 했다. 성인 노동자에 비해 임금이 적고 퇴직금을 줄 필요도 없는 학생 인턴은 폭스콘의 ‘새로운 피’였다.

원청기업인 애플은 이 모든 아수라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있다. 2015년 당시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이었던 존 루이스는 애플의 팀 쿡이 “상상도 못할 수익성과 더 큰 사회적 책임”을 보였다고 타임에 썼다. ‘상상 못할 수익’은 사실이지만, ‘사회적 책임’에서 중국 노동자는 제외돼 있다. 폭스콘의 가혹한 노동환경은 오직 애플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팀 쿡은 “상한 우유를 사려는 사람은 없다” “재고는 기업에 근본적인 악이다”라고 말했다. 소비자의 변심과 애플의 요구에 폭스콘은 모든 생산 계획을 맞춰야 했고, 이는 무리한 노동시간, 노동력의 급격한 전환배치로 이어졌다. 2009년 아이폰 총판매량은 2073만대였고, 이듬해 총판매량은 93% 증가한 3998만대였다. 이를 맞추기 위해 폭스콘 노동자들은 영혼과 육체를 갈아넣었다. 그러면서도 돈은 얼마 벌지 못했다. 2010년 아이폰의 가치 분배를 보면, 애플은 58.5%의 수익을 가져간다. 부품 조립 관련 중국 노동자 인건비는 1.8%에 불과했다.

2010년 11월 6일자 폭스콘 데일리는 임금 인상으로 노동자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도했다. 폭스콘은 자살 사건에 대해 이 같은 홍보로 대응했다. | 나름북스 제공


음식의 원산지에 관심을 기울이듯, 손 안의 상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신경 쓰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폭스콘 노동자들의 자살을 계기로 곳곳에서 ‘글로벌 반노동착취 공장’ 캠페인이 벌어졌다. 아이폰 출시 10주년인 2017년에는 더 이상 아이폰의 노예로 살지 않겠다는 ‘No More iSlave’ 캠페인도 벌어졌다. 중국의 노동자들도 더 이상 참지 않는다. 중국 정부는 파업에 관한 집계를 공개하지 않지만, 저자들은 중국 노동자들의 쟁의와 시위가 전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전한다. 노동자들은 어떻게 하면 사업주들에게 더 강한 타격을 주는지, 자신들의 협상력을 높이는지 알게 됐다.

이 책은 매끈하고 아름다운 아이폰의 이면에 이국 노동자들의 보이지 않는 피가 묻어있다고 알린다. 아이폰뿐 아니다. 글로벌 협업 체제로 생산되는 많은 제품이 마찬가지다. 다행히 이 책의 저자들과 같은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오늘도 제품의 이면을 파헤치고 있다. 소비자에게 필요한 것은 약간의 자각이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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