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사극에도 출연 욕심.. 이방인 한계 넘어 다양한 캐릭터 도전"

김인구 기자 2021. 10. 22. 10: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누팜 트리파티의 SNS에는 다양한 사진이 들어 있다. 위부터 ‘오징어게임’ 속 알리, 한복 착용, 어머니와 함께, 턱수염을 말끔히 깎은 프로필 등이다.

■ M 인터뷰 - ‘오징어게임’ 알리役 배우 아누팜 트리파티

2010년부터 11년째 韓거주

印서 5년 연기뒤 한예종 입학

“부모님도 엄청 기뻐해주셨죠”

2014년 ‘국제시장’서 데뷔

그 뒤 수많은 연극·영화 출연

‘오징어게임’ 대본 받고 ‘압도’

모국어 아닌 말 연기 쉽지않아

촬영 끝까지 ‘알리 생각’ 뿐

연기자로 알려진게 가장 기뻐

연기에 대한 열망이 원동력

韓이든 할리우드든 발리우드든

전세계 관객들과 만나고싶어

넷플릭스 콘텐츠 세계 1위의 ‘오징어게임’은 폭발적인 인기만큼이나 수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주인공 성기훈 역의 이정재는 물론 박해수, 정호연, 위하준, 오영수, 김주령, 허성태 등 주·조연 할 것 없이 모두가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그런데 그중에서 한국말이 어눌했던 외국인 배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극 중 파키스탄 출신의 이주노동자 알리를 연기했던 아누팜 트리파티(33)다. 인도가 고향인 그는 2010년 한국으로 건너와 이미 11년째 거주 중인 연기자다. 연극과 영화에서 다양한 역할에 도전했던 그는 ‘오징어게임’으로 단박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최근 두 차례에 걸쳐 서면으로 그를 만났다.

―전 세계적인 인기를 실감하나.

“축복받은 기분이다. 알리가 이런 반응을 얻을지 예상하지 못했다. 정말 너무너무 기쁘다. 온 가족이 행복해하니까 좋다. 학교 선생님이나 친구들도 자기 일처럼 기뻐해 줘 더 힘이 난다.”

―인도에 있는 가족들의 반응은.

“어머니와 형제들 모두 자랑스럽다고 한다. ‘내가 하는 게 좋은 일이 맞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다만 2017년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도 봤다면 좋아하셨을 텐데 너무 아쉽다.”

트리파티는 어려서부터 연기자의 꿈을 꿨다. 인도의 국민배우 샤룩 칸과 이르판 칸, 말론 브랜도, 찰리 채플린 등을 보면서 롤모델로 삼았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인도 뉴델리에서 5년 정도 연기를 했다. 처음 한 연극이 2006년 ‘스파르타쿠스’였다.

“사람들 앞에 서거나 무대에 오르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사람들이 제 공연을 보고 즐거워하고, 제가 캐릭터의 감정을 사람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 때 매우 좋았다. 관객과 무대 위의 인물로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때가 시작이었다.”

―그러다가 한국까지 오게 된 계기는.

“우리 집도 다른 집과 마찬가지로 부모님께서 연기를 직업으로 삼는 것에 대해 걱정이 많으셨다. 공부해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들어가라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그래서 집에서 나와 연기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한 친구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국가 장학생 제도 시험을 추천해줬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전심전력으로 노력해서 시험에 응시했다. 한예종에 합격하자 부모님도 굉장히 기뻐하고 응원해주셨다. 그 길로 바로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에 처음 온 건 언제인가. 그때의 첫 기억은.

“2010년 처음 한국에 왔다. 공항에 내렸을 때 모든 게 새로웠다. 그날 날씨도 너무 좋았다. 택시를 타고 한강을 건너가는데 그때 본 풍경들이 마치 영화 속에서 본 이미지 같았다. 연기를 배우기 위해 한국에 온 만큼 설렘도 있었고, 내가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과 긴장도 있었다.”

―한국어를 어떻게 공부했나.

“인도에선 한국어를 잘 몰랐다. 한국에 와서 본격적으로 배웠다. 경희대에서 3개월 보름 정도 어학원을 다녔다.”

―한예종에서의 생활은.

“2011년 입학했다. 하나를 꼽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수업이 재미있었다. 한국어를 잘하지 못해서 몸으로 연기하는 수업이 더 좋았다.”

―한국에서의 데뷔작은.

“2014년 개봉한 ‘국제시장’이다.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한예종 선배들에게 어설픈 사투리를 배워서 오디션 영상을 보냈다. 부산에서 촬영했는데 KTX를 타고 부산에 가는 동안 너무 신났다. 현장에 가는 동안에는 떨렸지만 연기할 때는 오히려 떨리지 않았다. 현장에서 감독님께 설명을 듣고 맡은 캐릭터에 진지하게 접근하려 했다.”

그 뒤로 트리파티는 수많은 연극과 영화 무대에 섰다. 자신을 원하는 곳이라면 배역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피부색 때문에 그가 맡은 역할의 대부분은 이주노동자였다.

―그럼 ‘오징어게임’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지난해 2월 말에 오디션을 봤다. 총 세 차례 정도 본 것 같다. 오디션 분위기는 좋았지만, 감독님이 알리는 덩치가 큰 인물이라고 해서 내심 걱정했다. 그리고 마지막 결과가 나왔던 순간 마음속으로 덩실덩실 춤을 췄다. 종일 춤을 추고 친구들에게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하느라 하루가 훅 지나갔던 기억이 있다. 정말 하늘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대본을 받아보고 작품에 압도됐다. 특히 한국의 전통놀이를 통해서 삶과 죽음의 경계가 갈리고, 인물 한 명 한 명의 면모가 드러나는 것이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알리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문제를 대변하는 인물이 아닐까.

“알리는 가족을 위해서 모든 걸 바치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정이 많고 따뜻한 인물이다. ‘오징어게임’에서 가장 선량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 캐릭터를 어떻게 관객들에게 통하게 할지를 연구했다. 인간적인 모습에 대해 고민했다. 최대한 덜 관습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저는 알리가 전형적인 캐릭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트리파티는 작은 역할을 맡더라도 그냥 넘기는 법이 없었다. 유사한 배역이라도 작품의 맥락 속에서 캐릭터의 개성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가 사진과 작품마다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이유다. 아마도 이런 점들이 감독들의 눈에 띄었던 것 같다.

―한국어 연기가 아직 부담스럽지는 않나.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연기하는 것은 분명 어렵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촬영을 시작한 날에 알리가 내 머릿속에 들어왔는데 끝날 때까지 빠져나간 날이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어려움이 있으니까 가능성이 더 많이 생겨나기도 한다. 사실 제 한국어는 지금도 완벽한 편은 아니다.”

―‘오징어게임’ 이후 가장 달라진 점은 뭘까.

트리파티는 2015년부터 SNS를 운영했다. 처음엔 게시물 당 조회 수가 1000건 안팎에 그쳤다. 그렇게 5∼6년을 유지했다. 그러나 ‘오징어게임’이 나가고 난 이후엔 큰 변화가 있었다. 요즘 게시물에는 평균 100만 건이 넘는 조회 수가 달린다. 누적 팔로어 수가 380만 명에 이른다.

“많은 사람에게 제가 연기자로서 알려진 게 기쁘다. 제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2011년부터 치면 한국생활도 이제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얻은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어로도 연기할 수 있으니까 다른 언어로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것을 깨달았고, 실패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이 사라졌다. 어디서든 버틸 수 있다는 튼튼한 마음을 얻었다.”

―10년을 견디게 한 원동력은.

“(10년 넘게 타지 생활이 가능했던 건) 정말 제가 해보고 싶은 일이었고, 원하는 일이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그렇게 쉽게 포기해도 되겠냐는 질문을 매일 던졌다. 그런 마음 때문에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배우로서의 꿈은 뭔가.

“계속 연기하고 싶다. 그게 한국이든, 할리우드든, 발리우드든… 연기하면서 다양한 인물과 만나고, 다양한 캐릭터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그리고 전 세계 관객들과도 만나고 싶다.”

트리파티는 “언젠가 외국인 배우 최초로 정통 사극에도 출연하고 싶다”면서 “이방인이라는 한계를 깨고 다양한 매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 문화닷컴 | 네이버 뉴스 채널 구독 | 모바일 웹 | 슬기로운 문화생활 ]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