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적게 버는.. M세대의 '번아웃'

나윤석 기자 2021. 10. 2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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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 요즘 애들│앤 헬렌 피터슨 지음│박다솜 옮김│RHK

베이비부머 기대 속 자란 세대

상당수는 박봉살이·계약직 전전

“징징대지마라”는 부모의 질타

탈진·무력감 극대화하는 원인

애당초 필패하도록 설계된 전투

개인이 아니라 환경 자체 문제

SNS에 정신팔린 현대인 일상

번아웃 상쇄할 기회조차 앗아가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적게 버는’ 밀레니얼에게 ‘번아웃’은 단순한 ‘일시적 병증’이 아닌 ‘상태’다.”

미국 칼럼니스트 앤 헬렌 피터슨이 쓴 ‘요즘 애들’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1990년대 중반 출생자)의 불안과 탈진에 관한 기록이다. 저자는 ‘MZ세대’를 묶는 광범위한 담론이 무리한 시도라는 듯 오직 밀레니얼에 집중해 이 세대를 절망으로 몰아넣은 사회 구조를 추적한다. 이론 연구와 사례 인터뷰를 바탕으로 ‘사적 이야기’를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한다. 30대 후반으로 밀레니얼의 연장자인 저자는 외친다. 밀레니얼을 망가뜨린 건 ‘우리의 게으름’이 아닌 ‘체제’라고. 밀레니얼의 위기는 ‘필패하도록 설계된 전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밀레니얼은 베이비부머의 ‘집중 양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1970∼1980년대 경제적 부흥기의 과실을 먹고 자란 베이비부머는 자식들이 ‘학벌’을 통해 ‘엘리트 중산층’ 지위를 확보하도록 ‘훌륭한 이력서를 만들어주는 데’ 전념했다. ‘좋은 대학에 가야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피아노·발레 같은 예체능 수업부터 교과목 과외까지 가리지 않고 시켰다. 아동기와 청소년기의 모든 일상이 ‘훗날 일터에 진입할 때를 대비한 최적화 과정’이었던 셈이다. “아이는 성년을 한참 앞둔 나이에 ‘작은 성인’이 되고, 그에 수반되는 기대와 불안을 끌어안는다.”

하지만 대공황 이후 최악의 침체기에 취업 시장에 들어온 밀레니얼의 대다수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어렵게 직장을 잡아도 인턴·계약직 등 불안한 고용으로 열정을 착취당했다. 자본주의 시대 ‘비용 절감’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 ‘시궁창 같은 일터’는 밀레니얼을 ‘잠을 자도, 휴가를 가도 털어버릴 수 없는 탈진의 감각’에 빠뜨렸다. 학력·지위·연봉과 상관없이 밀레니얼은 둘 중 하나다. 번아웃으로 주저앉거나, ‘적당한 월급으로 적당히 부려먹는’ 일자리를 꿈꾸거나. 저자는 밀레니얼이 “현대사를 통틀어 처음으로 부모보다 가난하게 살 것이 확실한 세대”라고 말한다. 베이비부머가 ‘가장 좋은 마음으로 키워낸 꿈’이었던 밀레니얼이 ‘제일 끔찍한 악몽’이 되고 만 것이다. ‘정신이 잿더미’가 된 자식들이 불평을 쏟아내면 부모들은 “극단적 빈곤이나 전쟁을 겪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만 좀 징징대라”고 구박한다.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 자신이 3루타를 쳤다”고 착각하면서.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것’이라는 서사는 이렇게 ‘공허한 환상’으로 전락했다.

계급 유지를 위한 악전고투 못지않게 SNS도 밀레니얼의 번아웃을 악화시킨다. SNS는 모든 현대인의 일상이지만, 밀레니얼과 디지털 기술의 관계는 특히 긴밀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밀레니얼은 휴대전화를 하루 평균 150번이나 확인한다. 인스타그램에 멋진 사진을 올리며 (힘든 내색 없이) ‘워라밸’을 추구하는 인상을 풍겨야 하고, 쏟아지는 ‘뉴스’를 확인하며 대화거리도 쌓아야 한다. 자유 시간을 ‘약탈’하는 SNS는 번아웃을 ‘상쇄’할 기회를 앗아간다. 저자는 삶을 식민화하는 디지털의 폐해를 꼬집으며 이렇게 자문자답한다. “마지막으로 지루했던 때가 언제인가? 스마트폰을 손에 넣은 이후로는 한 번도 없었다. SNS는 ‘온 세상’을 ‘일’로 만든다.” 성공을 향해 전진하도록 ‘세팅’된 밀레니얼은 어쩌다 주어지는 여가에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틈날 때마다 자기계발을 해야 불안이 줄어든다. 저자는 “북클럽이 유행하는 건 책을 더 많이 읽어서가 아니라 언제나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밀레니얼의 육아’에 대해선 여성주의 관점으로 접근한다. ‘양성평등’이 실현된 오늘에도 남성들은 전체 육아의 평균 30∼40%에만 참여할 뿐이며, 아빠가 주말에 보내는 여가는 엄마보다 2배가량 길다. ‘집중 양육’ 속에 자란 30∼40대 엄마들은 ‘워커홀릭’이되 ‘헌신적인 부모’여야 한다. “육아는 밀레니얼의 번아웃에 기름을 붓는다. 섹스를 덜 하고, 아이를 덜 낳는 건 우리가 ‘피곤’하기 때문이다.”

책이 출구 없는 암울한 환경을 일거에 혁신할 해결책을 제시하는 건 아니다. 저자 역시 “독자를 위한 구체적 행동 목록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적는다. 하지만 ‘부족한’ 대안이 흠결로 느껴지진 않는다. 저자의 목표대로 이 시대 젊은이들의 정신 상태와 결함투성이 체제를 바라보는 ‘창(窓)’을 그려준 덕분이다. 선언문의 결기와 시적 감수성을 겸비한 문장들은 밀레니얼 세대에겐 ‘위로’, 다른 세대에겐 ‘각성’의 언어가 된다. “당신의 피로를 직시해라. 피로를 덜어줄 앱이나 자기계발서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반드시 이렇게 살 필요는 없다.” 400쪽, 1만8000원.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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