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폭력·따돌림' 누구든 피해자도 가해자도 될 수 있다

기자 2021. 10. 2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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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물건을 슬쩍하는 '놀이'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같은 반의 누군가가 학기 초부터 지속적으로 자신을 못살게 군다고 동생은 말했다.

괴롭힘을 당한 아이들을 치료하는 일을 하며, 학교폭력을 감추기에 급급한 학교와 가해 학생들이 잘못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부모를 지근거리에서 목도한 작가 에이버리 비숍은 소설의 첫 장에 이렇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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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포 김사장의 요즘 소설 - 하피스 잔혹한 소녀들

같은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물건을 슬쩍하는 ‘놀이’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500원짜리 만화책부터 값비싼 화구까지 아이들의 행각은 점점 대담해졌다. 중학교 3학년이었으니 어린 나이도 아니다. 이대로는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나도 몇 번인가 ‘마음을 다잡고’ 문방구에 발을 들이긴 했지만 번번이 빈손으로 나왔다. 겁도 났거니와 무리에 끼기 위해 도둑질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동생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무척 화가 났다. 같은 반의 누군가가 학기 초부터 지속적으로 자신을 못살게 군다고 동생은 말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털어놓지 못한 까닭도 짐작이 갔다. 다음날, 나는 동생이 다니는 학교로 찾아갔다. 덩치가 크고 인상이 험악한 친구를 대동했다. 흠씬 패주고 싶은 걸 참으며 내가 아무개 형임을 밝혔다. 함께 간 친구는 내 옆에 서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눈을 좀 부라리긴 했지만.

괴롭힘을 당한 아이들을 치료하는 일을 하며, 학교폭력을 감추기에 급급한 학교와 가해 학생들이 잘못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부모를 지근거리에서 목도한 작가 에이버리 비숍은 소설의 첫 장에 이렇게 적었다. “누군가로부터 폭력을 당한 적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하피스, 잔혹한 소녀들’(하빌리스)을 썼다”고.

유능한 상담사인 에밀리는 헤이븐 정신 건강 센터에서 청소년을 치료하는 일을 한다. 따돌림과 괴롭힘으로 고통받는 학생들은 그녀를 신뢰했다. 어느 날 에밀리에게 중학 시절 친구들의 연이은 자살 소식이 날아든다. 절친한 사이였지만 졸업 이후로 연락이 끊겼던 그들의 죽음에 14년 전 기억이 소환되는데 이 대목에서 에밀리를 포함한 친구들이 ‘하피스’라는 모임을 결성해 온갖 비행을 저질렀음이 밝혀진다. 가장 악질적이었던 건 전학생 그레이스를 괴롭히기 위해 남학생 무리와 짜고 집단 성폭행을 당하도록 한 뒤에 추문을 퍼뜨렸던 일이다.

몇 가지 단서를 따라가던 에밀리가 친구들의 석연치 않은 자살에 의구심을 가지면서 이야기는 폭풍전야와도 같은 섬뜩함을 띠기 시작한다. 관전 포인트는 ‘스물여덟 살의 하피스 멤버들을 자살로 몰고 간 사람은 그레이스인가’지만, 이 소설의 뛰어난 점은 한때 피해자였던 가해자들이 어떤 식으로 폭력을 학습하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인간은 왜 타인의 행복을 질투하는가. 아니, 왜 타인의 행복을 훼방 놓으며 희열을 느끼는가.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한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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