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위드코로나 제주여행에서 만난 '지중해의 화가들'

칼럼니스트 김재원 입력 2021. 10. 22.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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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사람 제주살이 이야기] 19. 제주에서 모네, 르누와르 그리고 샤갈 전시를 만나는 법

해외여행을 가게 되면 빡빡한 일정에도 꼭 넣는 장소가 있습니다. 파리에 가면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을 런던에 가면 내셔널 갤러리, 피렌체에 가면 우피치 미술관을 뉴욕에 가면 현대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갑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으로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지면서 유명 미술관에서 명작을 감상하는 일들이 꿈처럼 아득한 추억이 되어버렸는데요.

15세기 중세 유럽에서 르네상스가 꽃을 피운 고장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우피치 미술관. ⓒ김재원

왜 여행지에 가면 우리는 미술관에 가는 것일까요? 일상생활에서 미술관에 자주 다니지 못하고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더라도 미술관에만 가면 공간이 주는 세련된 풍모와 위대한 작품을 마주할 수 있다는 흥분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는 점 때문 아닐까요. 또 미술관이라고 하는 문화적인 공간을 방문했다는 것만으로도 생겨나는 묘한 우월감과 미적 쾌감이 주는 특별한 행복이 우리로 하여금 미술관 여행을 꿈꾸게 하는 것 같습니다. 

'빛의 벙커'로 향하는 길의 초입부터 지중해 마을의 향기가 느껴진다. ⓒ김재원

그래서 오늘 칼럼은 코로나 시대 유일한 여행지로 사랑받고 있는 제주에서 만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미술 전시 소식을 전하려고 하는데요. 바로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 '모네, 르누아르... 샤갈 展'입니다. 모네(Monet), 르누아르(Renoir), 샤갈(Chagall)을 중심으로 피사로(Pissaro), 시냑(Signac), 드랭(Derain), 블라맹크(Vlaminck), 뒤피(Dufy) 등 인상주의부터 모더니즘 시기에 이르기까지 지중해 연안에서 활동했던 화가들의 작품들을 총 6개 시퀀스와 함께 총 500여 점의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는데요. 

'빛의 벙커'에서는 모네, 르누아르, 샤갈을 만나는 지중해 미술 여행을 즐길 수 있다. ⓒ김재원

빛의 벙커에 가는 방법을 잠시 소개해 드리면요. 제주공항에서 표선으로 향하는 '번영로'를 따라가다 보면 '대천교차로'가 나오는데 여기서 '안돌오름'과 '거슨새미오름' 방면으로 좌회전을 한 뒤 '비자림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금백조로'를 만나게 됩니다. 성산으로 향하는 금백조로를 따라 '백약이오름'을 지나 한참 달리다 보면 성산읍 '수산사거리'가 나오게 되는데요. 여기서 '성산포' 방향으로 조금만 가다보면 전시가 열리는 '빛의 벙커' 전시장과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언급한 제주 동쪽 지역 오름들은 빛의 벙커에 오고 가시는 길에 한 번씩 들러보면 좋을 만한 오름들입니다. '빛의 벙커'를 중심으로 제주여행 코스를 짜보시는 것도 좋아요.)  

기억 속에 잊혀졌던 오래된 비밀 벙커. 벙커는 1980년대 국가 통신시설로 사용되었고, 흙으로 덮고 나무를 심어 산등성이처럼 보이게 위장해 놓은 곳이었다. ⓒ김재원

빛의 벙커는 1980년대 한국과 일본, 육지와 제주도 사이에 구축한 해저 광케이블을 관리하는 국가 통신시설이었습니다. 실제로 900평 가까운 규모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을 세운 뒤 흙으로 덮고 나무를 심어 산등성이처럼 보이게 위장해놓은 곳이었어요. 2018년 오래된 비밀 벙커를 문화전시공간으로 복원하여 개관하게 된 것인데요. 개관 후 2018년 11월 「빛의 벙커 : 클림트」, 2019년 12월 「빛의 벙커 : 반 고흐」 전시를 연달아 진행하면서 개관 2년 만인 2020년 12월 기준 누적 관람객 10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제주를 찾는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빛의 벙커' 전시의 메인 무대. 가로 100m 벽면으로 르누아르의 작품들이 음악을 배경으로 강물처럼 흘러나온다. ⓒ김재원

이번 전시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인상파 작가들의 명작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인데요. 먼저 전시장에 입장하면 가로 100m, 세로 50m, 높이 5.5m 규모의 대형 전시시설과 함께 인상파 작가들의 그림들이 음악을 배경으로 강물처럼 흘러 다니는 모습에 압도당하게 됩니다. 한참을 멍하니 서서 홀린 듯 작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 순간 공연장 바닥에 앉아 그 상태 그대로 힐링을 받게 되는데요. 기대를 뛰어넘는 만족감은 역대급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한참을 지나 정신이 들 때쯤 관람객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감동의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열심히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촬영하게 되는데요. 연로하신 저희 어머님도 특별한 순간을 놓치지 않으시려는지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유럽의 어느 유명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처럼 말이죠. 

'빛의 벙커'의 '모네, 르누아르... 샤갈 展' 관람객들이 샤갈의 작품을 배경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있다. ⓒ김재원

인상주의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 말고도, 전시와 함께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조지 거슈윈(George Gershwin),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 등 20세기 재즈와 클래식을 대표하는 거장 아티스트들의 아름다운 음악 선율에 듬뿍 취하게 됩니다. 미술과 예술의 기운이 가득 담긴 바로 그 순간, 시공간을 초월해 마치 그림 속 주인공들과 함께 지중해를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데요. '빛의 벙커'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음악이 함께 할 때 만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매력은 새롭고 지적인 '제주 교양 여행' 코스로 꼭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몰입형 미디어아트 '빛의 벙커' 전시장. 클래식과 재즈 거장들의 음악이 지중해에서 활동한 화가들의 작품들과 함께 미디어아트로 구현되면서, 관람객들의 시각과 청각을 자극한다. ⓒ김재원
몰입형 미디어아트 '빛의 벙커' 전시장. 클래식과 재즈 거장들의 음악이 지중해에서 활동한 화가들의 작품들과 함께 미디어아트로 구현되면서, 관람객들의 시각과 청각을 자극한다. ⓒ김재원

이뿐만 아니라 모네, 르누아르, 샤갈 등 인상주의 거장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 역시 무척이나 흥미로운 시간인데요. 작가들의 작품 속 배경이 된 풍경 속을 산책하는 시간들과 유럽의 정통 와인을 음미하고 프로방스의 대표적인 음식들과 그 속에서 풍류를 즐기는 작품 속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미적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마치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프랑스 마을에서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고 대자연을 마음껏 누리는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전시를 보는 내내 일상 속 분주했던 마음들이 여유를 찾아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코로나 시대 제주에서 휴식과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하는 분들이 있다면 기꺼이 시간을 투자해 방문해 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빛의 벙커'에서는 인상주의에서 모더니즘까지 20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압도적인 스케일의 미디어아트로 관람할 수 있다. ⓒ김재원
'빛의 벙커'에서는 인상주의에서 모더니즘까지 20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압도적인 스케일의 미디어아트로 관람할 수 있다. ⓒ김재원

깊어가는 가을, 위드코로나 제주여행을 생각하고 있으시다면 또 제주 동쪽으로 일정을 잡으셨다면 기존 주류 미술에 대항해 시대를 앞선 새로운 미술을 제시했던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지중해로의 여행에 참여해 보시는 것 어떠실까요?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칼럼니스트 김재원은 작가이자 자유기고가다. 대학시절 세계 100여 국을 배낭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작가의 꿈을 키웠다.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에 사는 '이주민'이 되었다. 지금은 제주의 아름다움을 제주인의 시선으로 알리기 위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에세이 집필과 제주여행에 대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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